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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집주인 사망해 무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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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서 보증금 반환 거절당한

은평구 임차인 A씨의 사연

경향신문

한 민원인이 서울 은평구청에 마련된 전세피해 상담센터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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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 2차례 바뀌며 연락 두절
계약 해지 위해 1·2차 내용증명
공시송달 보냈지만 주인 ‘사망’

HUG “상속포기서 받아오라”
감당하기 힘든 법률요건들 요구

임차인이 집주인을 상대로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임대차계약 해지통보를 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전세보증금 반환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생겼다.

30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A씨(42)는 2020년 11월 서울 은평구의 한 다세대주택을 보증금 2억2800만원에 임대차계약했다. 당시 집주인은 B씨였다. 그러나 거주한 지 한 달여 만에 임대인이 C씨로 바뀌었다는 HUG 알림톡을 받았다.

바뀐 두번째 집주인 C씨는 집을 넘겨받은 지 며칠 만에 A씨에게 연락해 “보증금을 2000만원만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A씨가 요구를 거절하자 C씨는 그 뒤로 A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가 세들어 산 지 6개월 만인 2021년 5월27일 집주인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도 HUG의 알림톡을 통해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A씨는 세 번째 집주인 D씨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집주인이 잠적하면서 바뀐 집주인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세 번째 집주인이 고령의 노인으로 당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A씨는 임대차계약이 종료되기 6개월 전 주택소유자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D씨에게 1차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하지만 내용증명은 나흘 만에 반송됐다. 2차 내용증명도 발송했지만 역시 하루 만에 반송됐다.

그에게 남은 방법은 공시송달밖에 없었다. 공시송달은 상대방에게 내용증명이 도달하지 않을 경우 법원이 통보할 내용을 대신 게시하고 상대방에게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법원은 임대차계약 만료를 열흘 정도 앞둔 2022년 11월2일 공시송달 처분을 내렸다. A씨로서는 얼굴조차 모르는 세 번째 임대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임대차계약 해지통보를 한 셈이다.

그러나 A씨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그가 첫 번째 내용증명을 보낼 때까지는 살아있던 D씨가 두 번째 내용증명을 보낼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에게 보낸 내용증명은 효력이 없다는 게 HUG가 내세운 보증금 반환 거부 사유였다. 법원의 공시송달 역시 이미 죽은 사람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봤다.

HUG는 A씨에게 “D씨의 유가족을 상대로 계약해지통보를 해보라”고 안내했다. 그러나 D씨의 유일한 가족인 딸은 이미 상속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사이 A씨의 임대차계약은 자동 연장됐다. 집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집의 세입자 신세가 된 셈이다.

HUG 측 관계자는 A씨에게 “D씨의 형제자매 및 자녀들에게 상속포기 확인서를 받아 법원으로부터 집에 대한 제3관리인 지정을 받아 제3관리인에게 계약해지 통보를 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 그 자녀들까지 찾아다니며 상속포기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김종보 휴먼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법률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은 HUG의 본래 기능을 망각한 것”이라며 “임대인에게 정상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했다면 보증금을 대위변제해주고, 공공기관인 HUG가 임대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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