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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녹색’으로 물든 베네치아 운하… 환경단체 시위? [미드나잇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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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 지목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

“이번 사건은 우리 소행 아니다” 부인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대운하를 녹색으로 물들인 사건의 배후에 환경단체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배후로 지목된 환경단체는 “이번 사건은 우리 소행이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먹물 테러와 미술관 테러 등을 행해온 환경단체의 시위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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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대운하에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가 퍼져 있다. 당국은 이번 사건이 기후위기 활동가 시위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액체의 정체를 조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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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물이 된 베네치아 운하

30일 이탈리아 안사 통신에 따르면, 지난 28일(현지시간) 오전 9시 30분쯤 한 시민이 베네치아 운하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인 리알토 다리 주변의 물이 형광 녹색으로 물든 것을 발견하고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루카 자이아 베네토주(州) 주지사는 29일(현지시간) 오전 트위터에 운하의 물이 녹색으로 물들었다고 밝히며 “액체의 정체를 조사하기 위해 경찰과 긴급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액체의 정체는 플루오레세인으로 밝혀졌다. 플루오레세인은 형광염료로 인체엔 무해하다. 주로 수질검사 등을 할 때 시약으로 사용한다.

액체의 정체를 확인한 경찰은 누가 플루오레세인을 베네치아 물에 풀었는지 조사 중이다. 곤돌라 뱃사공과 보트 운전사 등을 상대로 탐문조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은 이번 사건이 기후위기 활동가들의 시위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목된 단체는 이탈리아어로 ‘마지막 세대’라는 뜻을 가진 ‘울티마 제네라치오네’다. 다만 울티마 제네라치오네는 CNN에 “이번 사건은 우리 소행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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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마지막 세대) 활동가들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명물 트레비분수를 검게 물들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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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제네라치오네가 의심받는 이유는 이들이 지난 6일(현지시간) 로마 나보나 광장 중심부에 있는 피우미 분수에 들어가 검은 액체를 투척하는 ‘먹물 테러’를 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검게 물든 분수대 위에서 “우리의 미래는 이 물처럼 어둡다”며 “우리는 정부에 온실가스의 원인인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와 보조금 지급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달에도 로마 스페인광장의 스페인 계단 입구 중앙에 위치한 바르카치아 분수를 검게 물들인 바 있다.

◆명화에 케이크 던지고, 도로에 손 붙이고

기후위기 활동가들의 과격한 시위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은 미술관이다. 첫 시작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모나리자’였다. 지난해 5월 할머니로 분장한 한 30대 남성은 휠체어를 타고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와 모나리자에 케이크 조각을 던졌다. 그는 보안요원에 의해 끌려 나가며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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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지난해 5월 29일(현지시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 보호 유리에 케이크 크림이 묻은 모습을 관람객들이 촬영하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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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이 테러 대상이 됐다. 영국의 환경단체 ‘멸종저항’ 회원 2명은 해당 작품 위에 순간접착제를 바른 손을 붙였다. 이들은 “기후위기=전쟁+기근‘이라고 적힌 검은색 플래카드를 발밑에 두고 이 같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그림 속 묘사된 고통을 현대 사회가 겪을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활동가들은 모나리자와 한국에서의 학살 외에도 반 고흐의 해바라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 유명 작품에 테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엔 독일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가 독일 베를린 시내 주요 도로 30여 곳에서 손 등을 접착하는 형태로 도로 점거 시위를 벌여 논란이 됐다. 이로 인해 베를린 도시고속도로 A100 등 주요 도로의 통행이 잠시 마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30년까지 독일이 모든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운송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고속도로 운행 시 최고 속도를 100㎞로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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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 소속 활동가 2명이 지난해 10월 23일(현지시간) 독일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뿌리고 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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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관심 필요” VS “완전히 미친 짓”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이처럼 과격한 방식을 택한 건 이를 통해 대중의 즉각적인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인데, 온건한 방식의 시위로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2일 “그림이나 거리에 자신을 붙이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도 지난해 11월 “기후운동의 목적은 기후 그 자체가 아니라 지구에서의 품위 있는 삶이어야 한다”며 “시위가 생명을 위협하면, 시위 명분이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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