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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홍경한의 시시일각] 문화예술 불모지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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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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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미술관이 2027년 개관을 목표로 한 걸음씩 발을 내딛고 있다. 시립박물관은 확장 이전되지만 미술관은 미추홀구 인천뮤지엄파크에 신규로 들어선다. 이곳엔 4곳의 전시공간을 비롯해 세미나실과 수장고 등이 조성된다. 현재는 설계 단계에 있다.

도립미술관 건립도 이어지고 있다. 충청남도는 오는 12월 도립 충남미술관을 착공한다. 홍성군을 소재지로 2025년 개관 예정이다. 경상북도도 2018년 이후 5년 만에 도립미술관 조성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건립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미술관 건립 용역에도 착수한 상태다.

충청북도 또한 도립미술관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모습이다. 충북 지사는 지난 달 10일 열린 서울 '충북갤러리' 개관식에서 도립미술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충북도는 충북문화재단과 함께 도 내 하드웨어 구축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기반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모두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출범 10여년 남짓한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강원도만 도립미술관이 없게 된다. 하지만 강원도에서는 관련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6년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적은 있으나 17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2015년경 건립을 희망하는 춘천, 원주, 강릉 등 4개 시·군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마쳤음에도 더 이상의 진척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기초자치단체에서 세운 미술관조차 그리 많지 않다. 2022년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하면 강원도 내 등록된 기초단체미술관은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 강릉시립미술관, 인제 내설악예술인촌 공공미술관을 포함 총 5곳이다.

이는 강원도 인구(153만 여명)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67만 여명)임에도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김창열미술관 등 모두 7개의 공립미술관을 거느리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와 비교된다. 14개에 달하는 경기도와 11개의 공립미술관을 운영 중인 전라남도 등과는 수적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강원도의 문화예술 인프라 부족은 일반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발표한 '2022년 전시공간의 변화, 128개 개관'에 따르면 서울 64개를 비롯해 경기도 18개, 전북전남 5개, 제주도 3개 등 전국에서 전시 공간이 증가했으나 강원도는 0개를 기록했다. 2021년엔 5개의 공간이 새롭게 문을 열었고,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인 2019년엔 8개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갈수록 쪼그라드는 모양새다.

문제는 전시 공간 조성을 포함한 여러 문화예술 육성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여타 지방자치단체들과 달리 강원도는 그나마 있던 것마저 하나둘씩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강원도는 도 내 유일의 국제시각예술행사인 '강원트리엔날레'(舊 강원비엔날레)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해 사실상 식물행사로 전락시켰다. 주관 기관인 강원문화재단은 예산이 없어 예술감독조차 선임하지 못할 처지다. 이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2019년 시작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도 올해부터 도 내 개최가 중단됐다. 강원도와 고성·인제 등 5개 군이 함께 주최해온 'PLZ 페스티벌' 역시 축소되거나 외부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2016년 이후 매년 겨울 선보여 온 평창대관령음악제 '겨울음악제'도 예산 항목 자체가 사라지면서 폐지됐다. 여태껏 별 탈 없이 잘 운영되던 것들이다.

지역 언론은 지난해 6월 국민의힘 김진태 지사 취임 후 혈세를 낭비하는 보조금 지원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런 사태가 본격화됐다고 지적한다. 몇 안 되는 문화자산마저 고사시키면서 강원도 예술인들은 '문화예술 불모지'로 변해가는 고향을 등지고 있다. 바깥에선 강원도가 원시적인 문화 생태로 회귀하는 것을 우려한다.

문화예술 진흥은 경제 성장과 사회적 결속을 촉진한다. 또 문화 활동에 대한 투자와 장려가 활발할 때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강원도는 관심 자체가 아예 없다는 인상이 짙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최문순 전 지사가 공들였던 행사를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진짜 그런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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