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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文정부, 개성 무단가동 알고도 침묵"…尹정부 조사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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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가동 사실을 여러 차례 보고 받고도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밝혔다. 북한의 남측 자산 불법 사용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현 정부는 전 정부 때 어떤 경위로 이러한 의사 결정이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중앙일보

지난 9일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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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정보 소식통은 29일 중앙일보에 "정보당국 등이 2020년 하반기부터 개성공단 내 인력과 차량의 움직임을 포착해 당시 청와대뿐 아니라 통일부 등 유관 부처 수뇌부에 친전(親展) 형태로 수차례 전달했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이어 "정보 기관이 생산한 정보가 여러 차례 전달됐음에도 청와대나 정부 차원의 대응이 나오지 않았던 경위를 의아해 하는 기류가 강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정보당국 등이 작성해 보고한 친전 등에는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측 소유의 설비 10여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본지에 "친전 등 다양한 형태의 보고가 이뤄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NSC에서도 관련 사안이 직·간접적으로 다뤄졌지만 결국 대북 항의 등은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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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20년 6월 조선중앙TV를 통해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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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당국은 2016년 남측 기업들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직후부터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왔다. 업계 소식통은 "당시 정보당국이 중국에서 유통되는 전기밥솥 바코드 등을 입수해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이 맞는지 확인을 요청하는 등의 정보수집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무단으로 가동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로 북·미 대화가 사실상 종료되고, 전 정부가 시도했던 대화 재개 시도가 완전히 무산되면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2020년 6월 이후로 파악된다. 2018년 6월부터 2020년 1월까지만해도 남측 인력 50여 명이 공단 내 연락사무소에 상주하기도 했다.

정부 소식통은 "연락사무소 개·보수를 위해 2018년 6월 개성공단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공단 내 시설이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며 "그러다 대화 재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한 이후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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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지난해 7월 4일 개성 지역의 폭염 상황을 보도하며 파란색 버스가 운행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 버스는 과거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이 북측 근로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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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2020년 11월부터는 개성공단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북한이 개성공단을 무단으로 가동하는 정황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정부 소식통은 "2020년 6월 이후 정보기관이 휴민트(HUMINT·인적 정보)까지 총동원해 확보한 개성공단 무단 사용 사실이 집중적으로 '윗선'에 보고됐다"며 "NSC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론은 언제나 '불법 가동에 대한 확실한 스모킹건(증거)이 없다'는 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실제 전임 정부는 임기 말까지 북한의 개성공단 불법 사용에 대해 공개적인 항의를 하지 않았다. 개성공단의 불법 사용과 관련한 전 정부의 공식 메시지는 지난해 5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이 돼서야 사실상 처음으로 나왔다.

당시 중앙일보는 "4월 21일 개성공단에서 북한이 10여 개의 공장을 무단으로 가동하다가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보도(2022년 5월 9일자 2면)했고, 통일부는 대변인 직무대행 브리핑을 통해 "개성공단 내 차량의 움직임과 관련된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아직 북측에서 구체적인 반응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북한의 무단가동에 대한 항의보다는 문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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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 통신선 및 개성공단 무단가동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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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사 결정 과정은 후임 정부 인사들에게 제대로 인수·인계도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새 정부 들어 사실상 2년 넘게 북한의 불법 행위를 용인해온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보고나 업무 인계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정부가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에서 더 나아가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정황을 파악한 직후 통일부 장관이 직접 대북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이미 대응 시기가 너무 늦어진 상태였다"고 토로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전임 정부가 끝까지 종전선언 등에 대한 미련 때문에 북한의 불법 행위를 조장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며 "이제라도 당시 어떠한 경위로 의사 결정이 이뤄졌는지 진상을 파악해 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 기대감을 계속 표시했던 개성공단 재가동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무단가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적기인 '골든 타임'을 놓쳤다"며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했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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