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자녀는 기쁨”보다 “부담” 응답 높은 곳은 서울·도쿄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족과 행복’ 15국 1만500명 조사

조선일보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의 맞벌이 부부 홍모(37)씨와 김모(34)씨는 2년 전 결혼하면서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다. 둘이 버는 돈은 매달 680만원 정도로 고정인데, 집 대출 원리금(250만원)과 관리비 등 생활비(180만원), 적금(50만원)을 제외하면 남는 돈은 200만원 정도다. 홍씨는 “주변에서 애 한 명 키우는 데 월 200만~300만원씩 든다고 하더라”며 “‘애 하나는 선택, 둘은 불가능’이란 말이 정설”이라고 했다. 그는 “애 한 명 낳고 아등바등 살기보다 아내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29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15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 1만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81%가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긴다고 답했다. ‘인생의 기쁨’이라는 응답은 68.1%에 그쳤다. ‘부담’이 ‘기쁨’보다 13%포인트 높은 것이다. 서울, 도쿄를 제외한 13도시는 ‘자녀는 기쁨’이라는 답이 더 많았다. 자카르타의 경우 ‘기쁨’이 95.4%로 ‘부담’ 24.4%보다 71%포인트나 높았다. 베이징도 ‘기쁨’이 ‘부담’보다 47%포인트 앞질렀다. 연구팀은 “출산과 양육이 경제적 부담은 되지만 기쁨이 크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인데 서울은 ‘부담’이 ‘기쁨’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며 “저출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조선일보

◇1인당 사교육비 4년 만에 41% 증가

서울의 20대는 ‘자녀가 기쁨’이라는 응답이 54.6%에 그쳤다. 반면 ‘부담’이라는 답변은 83.2%였다. 젊은 세대일수록 급증한 사교육비와 주택 비용 등 때문에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느낀다고 분석됐다. 지난해 국내 사교육비 규모는 26조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8년 29만1000원에서 지난해 41만원으로 4년 만에 40.9% 올랐다. 최근 중국의 위와인구연구소는 한국에서 자녀를 만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GDP의 7.79배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그다음이 중국이었다. 박수진 아시아연구소장은 “좋은 학교, 직업이라는 사실상 단일한 목표를 향해 모두 달려가다 보니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거비 등 경제 부담이 커진 것도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번 조사에서 서울 시민의 54.4%가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불만족’이라고 답해 15도시 중 가장 불만도가 높았다. ‘경제 불만족’이 50%를 넘긴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고 그다음인 도쿄의 40.9%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반면 ‘성인이 된 자녀가 노후에 보탬이 되느냐’는 질문에 서울 시민의 35.4%만 동의해 15도시 중 가장 낮았다. 뉴델리·리야드·뉴욕·런던 등은 시민 70~80%가 ‘성인 자녀는 노후 보탬’이라고 답했다.

◇서울의 가정·직장 만족도 모두 ‘꼴찌’

서울 시민의 21.9%는 ‘현재 가족 생활에 불만족’이라고 답했다. ‘현재 직업에 불만족’이라고 답한 비율도 38.3%였다. 가족·직업 만족도 모두 서울이 15도시 중 최하위였다. 그렇다 보니 ‘현재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도 서울이 42.3%로 15도시 중 꼴찌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 1·2위인 베이징 84.9%와 뉴델리 80.3%의 절반 수준이었다. 뉴욕·런던의 삶의 만족도도 70%를 넘겼다.

유조안 서울대 교수는 “주요국 도시에선 직장 회의 도중 ‘아이가 아프다고 전화가 왔다.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 당연히 가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사회 분위기가 가족 친화적이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한국 특유의 ‘비교 문화’도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재산·지위·성적 등을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가 비교 문화를 응축한 단어다.

직업 만족도 하락은 경직적 노동시장과 군대식 문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고착화한 경직적 환경에선 직업이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상생임금위원장)는 “전체의 20% 정도인 안정적 직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내가 빨리 달려도 옆의 경쟁자가 더 빨리 달리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빠지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전 세계 15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의 18~59세 남녀 1만500명을 작년 11월 조사했다. 아시아 12개 도시(서울, 도쿄, 베이징, 타이베이, 하노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자카르타, 뉴델리, 리야드, 예루살렘, 앙카라)와 서구 3개 도시(뉴욕, 파리, 런던)에서 700명씩 뽑았다. 자국어 설문지를 온라인으로 보내 실시했다. 31일 학술 대회에서 결과를 발표한다.

[윤진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