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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구단주 어머니 그림자 넘어 佛오픈 정상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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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테니스 세계3위 제시카 페굴라

일곱 살에 테니스를 시작한 제시카 페굴라(29·미국)는 어린 시절 내내 취미로 한다는 질시에 시달려야 했다. 부상으로 신음할 땐 “다른 일 하면 되잖아” 같은 비아냥도 들었다. 테니스에 인생을 건 다른 선수들과 달리 간절하지 않을 것이란 편견도 그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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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페굴라가 29일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 대니얼 콜린스를 상대로 서브를 넣고 있다. 여자 단식 세계 3위인 한국계 페굴라는 이번 대회에서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린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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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부(巨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테리(72)는 천연가스 개발 등으로 돈을 모아 67억달러(약 8조9000억원)에 달하는 재산 가치를 지녀 미 경제지 포브스(Forbes) 선정 미국 갑부 128위에 오른 인물이다.

어머니 킴(54)은 한국계 입양아로 1993년 테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킴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살이었던 1974년 미국으로 입양돼 뉴욕에서 자랐다. 킴의 부모는 전 아내와 사이에 아이가 둘 있는 테리와의 결혼을 만류했지만, 킴은 테리의 자상함과 헌신에 반해 부모를 설득했다 한다. 제시카는 두 사람이 낳은 장녀이며 동생 켈리(27)와 매슈(2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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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굴라 가족. 왼쪽부터 아들 매튜, 어머니 킴, 아버지 테리, 딸 켈리와 로라(의붓딸), 제시카.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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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굴라 부부는 스포츠를 사랑한다. 2011년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버펄로 세이버스를 1억8900만달러에 사들인 데 이어 2014년 9월 NFL(미 프로풋볼) 버펄로 빌스를 14억달러에 인수했다. 가족 사이에 흐르는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제시카에게 투영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런 풍족한 배경은 제시카에게 지원군인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 같았다. “부모 명성에 상관없이 스스로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프로 생활 초기 2014년 무릎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뒤 내리막길을 걸어 단식 세계 랭킹이 775위까지 곤두박질쳤다. 자포자기한 채 라켓을 던지려 했다.

그때 오기가 생겼다. “(배경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아 보겠다”는 집념으로 무장하고 코트로 돌아왔다. 2015년 US오픈에 와일드카드로 출전, 본선에서 첫 메이저 대회 본선 승리를 신고했다. 2019년 여자 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에선 단식 생애 첫 우승, 그리고 그해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오픈에도 “하프 코리안(half-Korean)”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어머니 나라 땅을 밟았다. 2022년부턴 본격적으로 복식도 병행하며 작년 프랑스오픈 복식 결승 무대까지 맛봤다.

점차 실력을 끌어올려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호주오픈(2021~23년)과 지난해 프랑스오픈·US오픈서 한 차례씩 모두 5번 8강까지 오르며 세계 랭킹이 단식 3위, 복식 2위까지 올랐다. 20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탄탄한 체격(170㎝·68㎏)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교한 백핸드 스트로크가 일품이란 분석. 미 CNN은 “독특한 배경 때문에 언제든 테니스 코트를 떠날 수 있지만 끈기(steadiness) 있게 싸워가고 있다”고 주목했다.

이번 프랑스오픈에서 그는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을 노린다. 우승 후보로는 부족하지만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다크호스라는 평가다. 트로피는 어머니에게 바치고 싶다 했다. 든든한 후원자인 어머니는 작년 6월 제시카가 프랑스오픈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심정지로 쓰러진 뒤 몸이 불편하다. 아직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제시카는 “꿈같은 현실에 살 수 있는 건 다 부모 덕분”이라면서 “어머니를 위해 트로피를 꼭 들어 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단 29일 1회전에서 대니얼 콜린스(30·미국·46위)를 2대0(6-4 6-2)으로 꺾고 2회전(64강)에 안착했다. 31일에 카밀라 조르지(32·이탈리아·37위)와 맞붙는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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