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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직설] “문과는 대학원을 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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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다 한 대학의 졸업생 게시판에서 인문계 대학원생이 후배들에게 진학상담을 해주는 걸 보게 되었다. 문과는 학위를 가져도 취업에서 혜택을 받는 경우가 드물고, 진로상담은 성공적으로 취업한 졸업생의 나르시시즘을 원동력으로 삼는 만큼 인문계 대학원생이 선뜻 상담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흥미가 돋아 들어간 게시글엔 재미있는 댓글이 있었다.

경향신문

이융희 문화연구자


“문과는 연구실도 없는데 대학원을 왜 감?”

나도 모르게 그 댓글에 대신 답글을 남길 뻔했다. 아니, 대학원은 당연하게도 공부를 하는 곳인데 연구실이 없으면 공부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그 학생은 인문학 대학원의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과학의 업적은 깊고 위대하며, 개인의 힘으로는 쉽사리 들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최첨단 장비와 고급 인력이 갖춰진 연구실에서 공동연구돼야 하지만 인문학은 이런 연구실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 굳이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홀로 책을 읽거나 논문을 독파하는 등의 공부만으로 충분히 익힐 수 있다고 여긴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연구실도 없는 대학원을 굳이 가느냐 물어보는 걸 조금이나마 이해 가능하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대학원을 진학하는 건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연구를 위한 방법론을 배우고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지식의 체계를 더욱 엄밀하게 익히기 위해서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인문학은 답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하는 방법을 익히는 학문이고, 답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그러니 연구자가 대학원에서 배우는 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방법, 그 자체인 셈이다. 질문을 던지는 게 거창한 방법까지 필요한가 싶겠지만 질문과 답변에도 체계와 논리가 존재한다. 인문계 대학원에선 수많은 지성이 누적해온 질문과 답변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고 답변하는지를 가르친다. 각종 학문의 연구방법론의 기초부터 지금까지를 훑고, 최신의 이론을 독파한다. 혼자만의 공부로 부족할 경우 세미나를 구축하고 적극적으로 연구자끼리 교류한다.

이러한 체계를 배우지 않고 인문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인문학은 스스로 사유하고 사회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스스로 찾은 답을 맹신하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렵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처음 도출한 답에 매몰돼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거대한 인문학의 바다에서 작은 조약돌 하나를 줍곤 이게 진정한 조약돌이라 부르짖고, 자기가 선각자인 양 사이비 노릇까지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사이비들이 자신이 진정한 역사학자나 사회학자, 철학자인 양 학계의 연구자들을 공격하고, 인문학을 매도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인문계열 대학원에서 배우는 건 이런 ‘자뻑’에 매몰되지 않는 법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게시글을 들어갔다. 상담을 해주던 대학원생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달았고, 원질문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학문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학문으로조차 보지 않는 시선. 그것이 사회가 인문학을 바라보는 한 단면이 아닐까? 씁쓸하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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