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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핵오염수 받는 윤 대통령 포스터 ‘심기 보호’ 표적수사는 위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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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받는 모습의 포스터들이 길거리에 붙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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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년 10월 주요 20개국(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박정수씨가 공공재물손괴죄로 기소된 뒤 유죄가 확정됐다. 공공재물손괴죄는 보통 공용 휴지통 등 물리적 시설물을 파괴해 재산상의 피해를 발생시킨 행위를 처벌하는 죄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찢거나 떼어낸 수천장의 포스터 가운데 오직 22장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린 박씨만 처벌한 것은 단순히 공공재물손괴가 아니라 대통령 모욕을 막기 위한 표적수사임을 보여준다. 박씨에게 내려진 벌금 300만원 역시 포스터의 재산적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어 이 처벌이 재산보호가 아니라 ‘심기’ 보호를 위해 이뤄졌음이 명백했다.

2012년에 5월에는 팝아티스트 이하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 풍자 그림을 붙인 혐의로 경범죄처벌법으로 기소돼 벌금 10만원의 유죄가 확정됐다. 29만원짜리 수표를 손에 든 전 대통령의 그림 55장을 전 대통령 자택 근처 담벼락에 붙였다. 경범죄처벌법 관련 조항은 규율 대상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광고물 무단부착 등)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집…에 함부로 광고물 등을 붙이거나 내걸거나 끼우거나 글씨 또는 그림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한 사람.’ 법원은 “피고인이 포스터를 부착한 곳은 … 타인의 소유물인바, 피고인의 포스터 부착행위로 인해 불특정 다수인의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택가 담벼락에 붙여지는 수많은 전단이나 포스터는 대부분 경고조치로 마무리했는데, 유독 이씨의 포스터만 곧바로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경범죄처벌법은 제2조에서 ‘이 법을 적용할 때는 국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이 법을 적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다른 목적’이 있는지 수많은 사람의 의심을 받았던 사건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수사가 2023년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받는 모습의 포스터(사진)들이 길거리에 붙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무단부착 신고가 없었던 곳에서 감시카메라(CCTV)까지 동원해 부착한 사람을 찾아냈다고 한다. 신고도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수사는 법의 목적인 재산권 보호와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경범죄처벌법뿐 아니라 옥외광고물법 수사도 하고 있다고 한다. 옥외광고물법(제8조)은 ‘표시·설치 기간이 30일 이내인 비영리 목적의 … 정치활동(등을 위한) 광고물에 대해서는 허가나 신고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제주4·3 혐오 왜곡 현수막에 대해서는 ‘통상적 정당활동’이라면서 수사는커녕 제거도 하지 않았던 경찰이 윤석열 비판 포스터는 수사하려는 것이다. ‘이 법을 적용할 때에는 국민의 정치활동의 자유 및 그 밖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는 옥외광고물법(제2조의2)이 무색하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과 지원사업 배제 지시에 관한 위헌소원 사건에서 “특정한 표현 행위에 대한 반응으로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 제한에 해당하고 이로 인해 앞으로 유사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중대한 제약을 초래하게 된다”고 판시하면서 “표현 행위자의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내용에 대한 제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고 봤다. 내용 제한 가운데서도 논쟁의 한쪽 편을 들어주는 차별은 더욱 심대한 차별이라서 통상적으로 국가의 재량이 널리 인정되는 시혜적 행정행위에서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형사처벌과 같은 ‘침익적’ 행정행위에서 이념적 차별을 하는 것은 더욱 위헌이다.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대통령 심기 보호를 위한 표적수사가 제주도에서 다시 이뤄지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이 역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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