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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경제난 누른 민족주의"…에르도안 재선, 푸틴 웃고 리라화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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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 결과…최장 30년 집권 가능성

튀르키예 대통령선거가 결국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악의 경제난과 대지진의 여파 속에서도 결선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얻으며 정치 인생 최대 고비를 넘겼다. 이번 승리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30년 종신 집권' 문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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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지지자들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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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은 국제 정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이끄는 튀르키예는 독자적 외교 정책을 펼치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이단아'로 불려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묘한 중립을 지키는 외교 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거머쥔 승리…최대 2033년까지 집권 가능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인 최고선거위원회(YSK)는 개표가 99% 이상 완료된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52.14%의 득표율로 경쟁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47.86%)를 제치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아흐멧 예네르 YSK 위원장은 두 후보의 득표 차가 200만표를 넘어 추가 개표 결과와 상관없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장 10년 더 권좌에 머물 수 있게 됐다. 2003년 총리로 실권을 잡은 그는 2014년 직선제로 대통령이 됐으며, 이후 2017년 개헌을 통해 의회제에서 대통령제로 통치 구조를 전환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며,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되면 추가 5년 재임이 가능하다. 최장 2033년까지 집권을 연장할 수 있다는 건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현재 69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한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선투표 개표 막바지 지지자들에게 승리를 선언하면서 "결선투표의 진정한 승자는 튀르키예 국민과 민주주의"라며 "앞으로 5년간 튀르키예를 통치할 책임을 다시 맡겨준 모든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은 지난 20년간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대 심판대였다. 그를 시험에 들게 한 건 극심한 경제난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높은 금리가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며 저금리 정책을 고수해왔다. 지난해 11월까지 4회 연속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지난 2월에도 한 차례 추가 인하하면서 14%였던 튀르키예의 금리는 8.5%까지 낮아졌다. 그 결과 튀르키예 물가는 급등했고, 리라화 가치는 폭락했다.

지난 2월 튀르키예를 덮친 대지진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악재였다. 이 지진으로 5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590만여명이 터전을 잃었다.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을 향해 재난 대처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정권 심판론이 급부상했다. 투표일 직전 실시된 두 번의 여론조사에서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지지율이 50%를 넘으면서 1차 투표에서 승부가 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표심은 에르도안 대통령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지난 14일 1차 투표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49.51% 득표율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44.88%)를 따돌리며 1위에 올랐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까지 갔지만, 같은 날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 연합이 의석 절반 이상을 가져가며 에르도안 대통령 재선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 1차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시난 오안 후보가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힘을 보탰다.

외신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민족주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쿠르드족 분리독립 시도를 쟁점화하며 경제난 속 국민 불만을 외부 세력으로 돌렸다. 영국 왕립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담당 갈립 달레이 부연구원은 AFP에 "에르도안은 민족주의 카드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했다"며 "튀르키예가 최악의 경제난에 빠져있었지만, 야당은 (에르도안의) 내러티브를 가릴 수 있는 대안적인 의제를 내놓지 못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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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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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독자 외교' 에르도안…우군 확보한 푸틴, 골치 아픈 서방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동안 구축한 확고한 통치 기반을 토대로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7월 자신을 축출하려던 군사쿠데타가 실패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군부 세력 척결은 물론 정부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야권 유력 정치인, 언론인 등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했다. 앙카라 정책센터의 셀린 나시는 BBC에 "에르도안의 승리는 정치범들이 감옥에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경제난을 부른 '역주행 통화정책'도 이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선거 이후 내 말을 확인해보라. 금리와 함께 물가가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자신감이 무색하게도 금융시장은 벌써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29일 오전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20리라 안팎에서 움직이며 사상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 월가 투자은행(IB) 웰스파고의 브렌던 맥케나 전략가는 "에르도안 재선으로 리라화에 대한 전망은 상당히 비관적"이라며 2분기 말까지 달러당 23리라, 내년 초에는 25리라까지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튀르키예 대선 결과를 놓고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희비도 엇갈리게 됐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립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오히려 대러시아 교역량을 늘리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러시아 편에 서고 있다. NYT는 "에르도안은 국제사회에서 서방의 우위가 당연시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러시아, 중국과 같은 미국의 라이벌과 관계를 맺으면서 서방과의 관계를 통해 이익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시되자 곧바로 축전을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그를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이번 승리는 사심 없는 노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립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축하를 건네면서도 "공동의 글로벌 과제에 대해 튀르키예가 나토 동맹국으로서 계속 협력하기를 바란다"며 협력을 강조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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