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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이들이 사라진다, 학교는 작아진다[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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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 줄면서 더 개별화된 수업

전교생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 등

큰 학교에선 어려운 활동도 가능

단가 안 나와 체험 학습 비용 증가

방과후 학교 개설 인원 모자라

선택할 수 있는 수업 줄기도

시골 학교는 친구와 ‘9년 같은 반’

사회성 발달에 안 좋은 영향 걱정

학교폭력 발생 때 격리도 어려워

서울 노원구 하계동 중현초등학교의 북쪽 담장은 영구임대아파트인 시영5단지 아파트와 맞닿아 있다. 지난 23일 찾은 학교 주변 풍경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초여름처럼 햇볕이 따갑던 오후, 30년 넘게 자라 울창해진 단지 조경수 그늘에는 드문드문 앉아 손부채질하는 노인들만 눈에 띄었다. 운동장 건너편, 오래전 경춘선이 다녔고 지금은 공원이 된 경춘선 숲길에서는 백발의 할머니가 그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천천히 밀고 있었다. 교문 맞은편에는 태권도학원과 방문요양센터 간판이 나란히 걸렸다. “여기 공원도 예쁘고 환경이 참 좋은데 애들이 없는 것만 좀 문제예요.” 김병영 중현초 교장이 말했다.
중현초는 1989년 문을 열었다. 중계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된 인근 아파트단지의 입주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중현국민학교’는 24학급 규모의 보통 크기 학교로 출발했다. 도시계획사업으로 만들어진 신시가지에 새로 이사 온 아이들로 동네도 학교도 북적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떠난 학교에는 새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영구임대아파트는 주민들이 들고 나는 일이 드물다. 초기에 입주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늙어갔다. ‘임대 학군’이라 주변 유명 학군지로 빠져나간 아이들도 있었다. 중현초 학생 수는 2005년 845명에서 올해 137명으로 줄었다.
중현초의 오늘은 저출생을 맞은 한국 학교 대부분이 조만간 맞닥트릴 미래다. 학교 규모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266만4278명인 초등학생 수는 2033년에는 145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33년은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초등학교 6163개교 중 1362개교(22.1%)가 전교생 60명 이하였다. 앞으로 이런 작은 학교가 새로운 표준이 될 수밖에 없다. 학교 규모의 축소가 불러올 교육 현장의 변화에 지금 당장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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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현초등학교에서 3~4학년 학생들이 플루트 수업을 받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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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학생 간 끈끈해 좋지만··· 친구들 적어서 수련회는 못 간대요”


낮 12시50분,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악기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오케스트라 시간이다. 중현초는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형 작은 학교’ 사업에 참여해 예산 2500만원을 지원받는다. 전교생이 악기를 하나씩 배워 연말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기로 하고 음악·창체 시간을 활용해 4월부터 일주일에 2시간씩 연습한다. 3~6학년은 바이올린과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중 하나를 골라 배운다. 악기는 학교가 대여해서 아이들에게 각자 빌려줬다. 학생이 많지 않아서 가능한 방식의 수업이다.

아직 일정한 음정을 연습하는 단계인데 아이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악기를 다루기에 어린 1~2학년은 뮤지컬과 합창을 배운다. 다목적실 거울을 보면서 율동을 연습하던 2학년 이윤서양(8)은 “춤을 추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웠어요. 빨리 엄마한테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교장 이하 교사들과 실무사들도 악기를 하나씩 골라 함께 수업을 듣는다. 김 교장은 플루트를 배우고 있다. 교장실 한쪽에 악보를 올려놓은 보면대와 플루트 가방이 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김 교장을 마주친 아이들이 익숙한 듯 “교장 쌤, 오늘은 플루트 오실 거예요?”라고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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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노원구 중현초등학교에서 1~2학년 학생들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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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쌤’의 짝꿍은 6학년 윤예림양(12)이다. 예림이는 “교장 선생님이 박자 놓치면 제가 알려드려요!”라며 활짝 웃었다. 예림이는 청량하고 예쁜 소리에 반해 플루트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제법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학교에서 플루트를 배울 수 있게 된 것은 ‘작은 학교’에 다녀서 좋은 점 중 하나다.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큰 초등학교는 방과후학교 오케스트라 반에 들어가기 어렵대요.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이런 활동도 다 같이 할 수 있고, 코딩 수업 같은 것도 다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방과후학교에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2명 정도밖에 신청을 안 해서 개설되지 않았어요. 큰 학교였으면 선택할 수 있는 수업이 더 많았을 것 같아서 그런 점은 아쉬워요.” 같은 반 정민서양(12)은 “학생이 적어서 수련회를 못 간 게 아쉬웠다”고 했다. 학생 수가 적으면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어 수련회나 체험학습을 하러 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강낭콩 싹을 땅속에 묻어주고 있어요!”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초등학교의 점심시간. 교실에서 키우던 강낭콩 화분을 들고나와 학교 옆 화단에 우르르 몰려 있던 한 무리의 4학년 아이들이 지금 뭘 하느냐는 질문에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이 학교 4학년 학생은 9명이다. 모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년째 같은 반이다. 미원초 아이들은 대부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미원중학교로 진학한다. 미원중도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이들은 9년 동안 같은 반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미원초는 농촌의 전형적인 소규모 학교다. 청주시 동쪽 끝에 있는 미원면은 쌀농사를 많이 지어 ‘쌀안’이라고 불리던 고장이다. 농산어촌 학교의 학생 수는 저출생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줄었다. 수십 년 전부터 이촌 향도 현상으로 인구가 유출되기 시작했다. 1989년 457명이던 미원초 학생 수는 지금 7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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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전 충북 청주 미원초등학교 복도가 텅 비어 있다. 남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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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에 시집을 왔는데 그때는 이 학교에 4반, 5반까지 있었어. 우리 세대는 다들 애를 세 명씩은 낳았으니까. 지금은 한 학년이 10명도 안 된다고 하대. 옛날에는 여기가 물건으로 꽉 찼고 가게를 두세 명이 보고 그랬어요.”

미원초 앞 ‘문화문구사’ 주인 할머니 이분이씨(75)는 지금은 적막해진 읍내에 아이들이 북적이던 1970년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역시 자녀 셋을 모두 미원초와 미원중에 보냈다. “요새는 어른들이 가끔 와서 볼펜이나 살까 애들은 잘 안 와요. 지금 하루에 5000원어치도 못 팔아요. 우리 살림집이랑 붙어 있으니까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 아무튼 애들이 없어서 큰일이야. 어른들은 오래 살고 애들은 없고.” 매대에 놓인 철 지난 캐릭터가 그려진 공책에는 ‘2011년 제조’ 표기가 선명했다.

그나마 이 학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주변의 다른 초등학교들이 읍내의 미원초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미원면에는 원래 초등학교가 7곳 있었는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미원초뿐이다. 5곳은 1991년부터 2000년 사이 미원초와 통합돼 사라졌고, 나머지 1곳은 2001년 분교(미원초 금관분교장)가 됐다. 경기 수원시(121㎢)와 면적이 비슷한 미원면(129㎢)에 초등학교 1곳, 분교 1곳만 남았다. 통학버스 3대가 매일 등하교 시간마다 시골길을 달려 아이들을 실어나른다. 넓은 지역에 아이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살다 보니 학교 주변에는 도시 아이들이 흔하게 누리는 학원 같은 인프라도 부족하다. 미원초 주변 사교육 기관은 음악학원 1곳과 공부방 1곳뿐이다.

미원초 6학년 권우준군(12)은 학생이 적어서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1학년 때 분교에 다니다가 2학년 때 미원초로 왔으니까 지금 친구들과 5년째 같은 반이에요. 반이 바뀌면 친구 사이가 멀어질 것 같은데 바뀌지 않아서 좋아요.” 작은 학교의 장점 중 하나는 가족적인 분위기다. 학생들이 적으니 같은 학년 친구들이 끈끈한 것은 당연하고, 다른 학년들끼리도 벽 없이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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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충북 청주 미원초 2학년 학생들이 컴퓨터실에서 코딩 수업을 듣고 있다. 남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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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오히려 이 점을 걱정한다.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정석 미원초 교감은 “이런 친구 저런 친구를 만나서 갈등을 겪고 화해해보기도 해야 하는데 이 학교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적다”고 말했다.

전교생이 5명인 분교 아이들에 대해서는 걱정이 더 크다. 분교에는 교실에 담임과 학생 단 둘만 앉아서 공부하는 교실도 있다. 보통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만남과 헤어짐, 다툼과 화해, 협력 같은 사회화 과정을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본교와 분교 아이들이 교류하는 체육대회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하지만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아이들이 친해지기는 어렵다. 양 교감은 “분교의 특색과 장점이 많아 (본교와 통합하기보다는) 살려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여러 대안을 고민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단점 동시에 존재하는 작은 학교···지금 취약점 살펴 대안 만들어야


한 학년이 한 반인 것은 학교 현장에서 생각보다 많은 불편을 낳는다. “서로 부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서 떼어놓아야 할 아이들이 있거든요. 여러 학급이면 그냥 반을 갈라놓으면 되는데 한 학년에 한 학급이면 그런 게 어렵죠.” 김병영 중현초 교장의 설명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분리하기도 어렵다. 소규모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지더라도 가급적 학급을 나눌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배려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교사들의 의견이다. 현재 중현초 5학년은 24명으로 다른 학교의 한 학급 규모지만 서울시교육청에 요청해 2개 학급으로 분리했다.

학교 규모가 작아질수록 교사 업무가 가중된다는 점도 문제다. 행정업무나 학생 상담·지도 등 개별 교사들이 해야 할 업무의 양은 비슷하므로 소규모 학교에서는 교사 한 명이 2~3배의 일을 떠맡는 경우가 많다. 업무량 증가로 수업 준비 시간이 줄어들면서 교육의 질이 악화하기도 하고, 교사들이 소규모 학교 근무를 꺼리기도 한다.

학급이 작아지면 수업의 양상도 바뀐다. 더 개별화된 수업이 가능해지는 것은 장점인데 아이들이 협동해서 진행하는 모둠별 수업은 어려워질 수 있다. 미원초에서 영어·과학 과목 전담을 맡은 김현준 교사는 미원초에 부임하기 전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근처 혁신도시의 ‘과밀학교’에 근무했다. 한 반에 27명이던 이전 학교에서는 실험 준비로 시간을 다 보냈는데, 지금 학교에서는 2~3개 모둠의 실험만 준비하면 되니 과학 수업에서 실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다. “아무래도 실험을 하나씩 봐줄 수 있는 시간은 늘었다”고 김 교사는 말했다. 대신 모둠별 발표 등의 활동이 어려워졌다. 김 교사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3~4개 모둠을 만들 수 있는 12~16명 정도가 이상적인 학급 규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은 학교에 와서 보니 체육 시간에도 팀 경기는 불가능하고 개인 종목밖에 할 수 없더라고요. 학급 수가 너무 적으니 운동회를 하기도 어려워요. 청군 백군을 나눌 수 있는 규모도 안 되니까요. 저학년 시기 한글이나 연산 등을 교사가 일대일로 지도해 줄 수 있다는 점 등은 큰 학교 아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경험이고 기초학력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아요.”

정문화 중현초 수석교사도 “아이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는 돼야지 서로 협력도 일어나고 토의를 하면 좋은 의견도 많이 나와서 서로 배우게 되는데 작은 학교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 수석교사는 학생 수가 적을수록 교사의 역할과 관리자의 리더십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학생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학교 규모가 작으면 아이들이 서로를 보고 배우는 모방학습을 하기 어렵거든요. 그런 공백은 담임선생님이 (본보기를) 많이 제시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아이들 간 상호작용이 많다 보니 다툼도 많은데 그걸 중재하는 것도 선생님의 역할이고요.” 정 수석교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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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작아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를 동시에 수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학급당 학생 수는 줄어들겠지만 더는 운동회에서 반별 대항전을 벌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콩나물시루 교실’ 대신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지만, 체험학습이나 수련회 비용이 치솟을 수 있다. 멀리 떨어진 학교에 통학버스를 타고 가는 일이 일상이 될 수도, 일주일에 두 번만 학교를 찾아오는 선생님을 기다릴 수도 있다. 현재 소규모 학교와 학생들이 이미 겪고 있는 일들이다.

작은 학교의 강점을 살리고 취약점을 보완하려면 이런 문제들을 지금 살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학년과 상관없이 가족처럼 교류하고 주민들과 아이들이 함께 자라나는, 소규모라는 장점을 활용한 실험을 하는 학교에서 배울 부분도 있다. 폐교된 학교의 빈자리, 남는 학교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진행형이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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