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30년 집권 길 열렸다…대선 결선 투표 완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2.14% 득표율로 클르츠다로을루 제쳐

“‘튀르키예 세기’의 문이 열렸다” 강조

나토 내 독자 행보·권위주의 회귀 우려

경향신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 대통령궁 앞에서 당선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TASS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진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이겨내며 2033년까지 장기 집권에 도전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2003년부터 3차례나 총리직을 연임한 뒤 2014년 최초 직선 투표를 통해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이번 승리로 최대 30년간 권좌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반서방 구도로 재편된 국제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등 서방 단일대오에 어깃장을 놓았던 만큼 큰 진통이 예상된다.

국내적으론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비정통적 경제 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로의 회귀와 민주주의 후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YSK)는 이날 99.43%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52.14%의 지지를 얻어 승리했다고 밝혔다.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는 47.86% 득표율에 그쳤다. 아흐멧 예네르 선거관리위원장은 “두 후보의 득표 차가 200만표를 넘었다”며 “아직 개표하지 않은 표와 무관하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15분 이스탄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앞으로 5년간 튀르키예를 통치할 책임을 다시 맡겨준 모든 국민에게 감사하다”며 “여러분의 의지는 튀르키예의 굽히지 않는 불변의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승리로 ‘튀르키예 세기’의 문이 열렸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아무도 튀르키예의 이익을 넘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지자들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경향신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진행된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하자 지지자들이 이스탄불에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은 20년 장기 집권을 이어온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일생일대 위기였다. 25년 만에 인플레이션이 최대치를 찍는 등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고, 지난 2월엔 규모 7.8 대지진이 튀르키예를 뒤흔들면서 민심이 폭발했다. 여기에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번엔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일부 조사에선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지지율이 50%를 넘겨 1차 투표에서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상황은 180도 달랐다. 지난 14일 1차 투표에서 과반에 육박하는 49.52%의 득표율로 선전했고, 이후 5.17%로 3위를 차지한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가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승기를 잡았다. 1차 투표와 함께 진행된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 연합이 600석 가운데 323석을 차지하며 힘을 보탰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2003년 총리 시절부터 포함하면 최대 30년 통치다. 2017년 4월 그는 총 18개 항으로 이뤄진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승부수를 띄웠는데, 핵심은 내각제 폐지와 대통령중심제 도입에 있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한 차례 중임이 가능하고, 임기 종료 전 조기 대선을 치러 당선될 경우 5년 더 집권할 수 있도록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궁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은 나토에서 독자 목소리를 내온 에르도안 대통령의 귀환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러시아는 튀르키예와 경제 협력을 계속하며 서방의 제재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이번 승리는 사심 없는 노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립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는 양국 우호 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인적 기여를 높이 평가한다”며 “현안에 대한 건설적 대화를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또 권위주의 통치 체제가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7년 개헌으로 부통령 및 법관 임명권, 의회 해산권, 국가비상사태 선포권까지 막강한 권한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를 통제했고, 정적 숙청과 언론 탄압도 단행했다. 튀르키예 건국 이념인 세속주의 색채가 옅어지고, 이슬람 원리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제난을 부른 저금리 정책과 중앙은행에 대한 개입 등 비정통적 경제정책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선거 이후 내 말을 확인해보라. 금리와 함께 물가가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향신문

튀르키예 대선 야권 단일후보였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28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 당사에서 패배를 인정한 뒤 지지자들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패배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이번 선거는 최근 수년간 가장 불공평한 선거 중 하나였다”면서도 “권위주의 정부를 바꾸려는 국민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앞에 기다리는 어려움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나는 나의 투쟁을 계속하겠다. 여러분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달라”고 말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