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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광화문에서/박희창]원전 10기 수출 차질 빚은 한수원의 ‘일관성 없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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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희창 경제부 기자


정부의 국정과제인 ‘2030년 원전(原電) 10기 수출’에 제동이 걸린 지 7개월이 넘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의 수출을 제한해 달라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에 수출하려는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쓰인 만큼 미국 에너지부(DOE)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최근 “결국엔 협상이 잘 될 것으로 본다. 합의 보는 걸로 끝이 날 것”이라고 했다.

양측의 협상은 한수원이 소송을 당하기 전에도 진행됐다. 웨스팅하우스는 고소장에서 소송에 이르게 된 경과를 설명하며 “사전 논의에서 한수원은 ‘일관성 없는 입장(inconsistent positions)’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이 한국형 원전의 기술 정보를 해외에 이전할 때 미국법에서 정하고 있는 의무를 따라야 하는지를 두고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한수원은 미국법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확약도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에서 드러난 둘 사이의 간극은 소송 가능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소송까지 감수했다고 볼 수 있을 법한 자세로 대응한 셈이다. 고소장에는 한국형 원전 수출이 왜 미국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지 설명하는 것 역시 한수원이 거부했다는 웨스팅하우스의 주장도 나온다. 한수원은 원전 개발 초기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을 받았지만 APR1400은 핵심 기술을 국산화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올 2월 한수원은 서로 입장을 논의할 준비가 됐고 상호 만족할 해법을 도출할 것으로 믿는다는 내용의 서한을 웨스팅하우스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피소 약 4개월 만에 대응 전략이 달라진 것이다. 지금은 사장까지 공식적으로 합의를 말하고 있다. 몇 개월 만에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다면 사전 논의에서 보인 한수원의 태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얽힌 법률적 문제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우려가 드는 지점은 또 있다. 한수원은 폴란드 원전 수주에 나서기로 최종 결정하면서도 웨스팅하우스와의 법적 다툼 가능성은 논의하지 않았다. 한수원이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2021년 5월 회의를 열고 폴란드 원전 수출 추진을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회의에선 재원 조달과 관련된 사항 등을 검토했을 뿐 미국의 원전 수출 통제에 따른 소송 리스크는 논의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제적 법률 분쟁은 한국형 원전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APR1400의 폴란드 수출만이 문제가 아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진 중인 원전 건설 입찰에 참여하며 원전 기술을 공유하는 것도 금지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수원은 한국형 원전 수출과 관련해 법률 자문을 받은 적이 있는지조차 “소송과 관련됐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리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뛰어도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한수원의 역량이 부족하면 원전 10기 수출은 공염불일 뿐이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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