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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너희들과 여기서 작별하고 싶지 않다”…대표팀 울린 양상문의 한마디 [BFA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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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여자야구 국가대표 양상문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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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람틴(홍콩)=황혜정기자] “나는 너희들과 여기서 작별하고 싶지 않다.”

사령탑의 결기(決起)가 느껴지는 진심에 선수단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일부는 울컥했고, 일부는 전투력을 다졌다.

결국 해냈다. 양상문 감독이 이끄는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28일(한국시간) 홍콩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안컵(BFA)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난적’ 필리핀을 9-5로 꺾고 세계야구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

이날 필리핀전은 정말 중요한 경기였다. 필리핀과 각각 1승1패를 나눠가진 상황에서 두 팀이 만났다. 승자만이 세계대회로 갈 수 있는 티켓을 얻는다. 한 경기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는 상황이었다.

양 감독은 전날 일본-필리핀전을 직접 관전하며 필리핀 선수들을 주의깊게 분석했다. 분석 결과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 양 감독은 그날 저녁 선수단 미팅을 가졌다.

양 감독은 상대를 분석한 내용을 들려주며 적극적인 도루와 번트로 ‘뛰는 야구’를 할 것임을 선언했다. 상대가 힘이 좋은 대신 내야의 세밀함이 떨어지니 쉴새 없이 뛰어다니며 흔들어 놓자는 것이었다.

전력 분석 내용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유능한 감독의 자질 중 하나인 ‘선수단 동기부여’도 양 감독이 해냈다.

양 감독은 선수단에 “나는 너희들과 여기 홍콩에서 작별하고 싶지 않다”고 진심을 전했다. 필리핀전에서 지게 된다면 대표팀은 오는 8~9월 일본/캐나다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야구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다. 세계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면 사실상 양 감독과 대표팀의 동행도 끝난다. 그렇기에 양 감독은 필리핀전에서 꼭 승리해 더 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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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야구 국가대표 양상문 감독이 28일 필리핀전에서 마운드에 올라 투수 박민성과 포수 최민희에 지시를 내리고 있다. 람틴(홍콩)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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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하다.”

자신의 어록도 읊었다. 양 감독은 대표팀에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며 “55대 45로 필리핀이 전력상 더 우세하지만,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강하기에 해보자”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27일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30년 만에 세계선수권 결승에 진출한 여자 탁구의 예도 들었다. 양 감독은 “신유빈-전지희도 세계랭킹 1위 중국 탁구를 이겼다. 우리라고 못 할 것이 무엇이냐”며 선수단에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는 후문이다.

양 감독의 선수단 미팅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선수들은 악으로 깡으로 쉴새없이 뛰어다녔고, 몸을 날려 베이스를 파고들었다. 대표팀 투수 박민성은 “감독님이 전날 미팅에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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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여자야구 대표팀 코칭스태프 양상문 감독, 허일상 코치, 이동현 코치, 정근우 코치가 경기 시작에 앞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람틴(홍콩)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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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감독은 지난해 12월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과 스포티비(SPOTV)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여자야구 선수들의 열정에 감동받아 대표팀 감독 자리를 흔쾌히 수락했다.

호화로운 코칭스태프를 모은 것도 양 감독이었다. 프로야구 스타 출신인 정근우와 이동현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함께 하자는 뜻을 모았다. 그렇게 여자야구 대표팀에 전례 없는 초호화 코치진이 완성됐다.

훈련을 이끄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여자야구를 물심양면 도왔다. 대표팀이 메인스폰서를 구하지 못하자, 직접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표팀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수시로 고기를 사주기도 했다. 양 감독의 아들도 훈련을 도와주러 종종 대표팀을 방문했다.

그러나 양 감독이 받는 월급은 0원이다. 여자야구 대표팀 감독 자리는 전일제 감독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주말만 훈련을 하기에 월급이 아닌 일당을 받는다. 일당은 교통비와 식비 정도다. 양 감독은 이 마저도 코칭스태프 4명과 나눠 가졌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사정상 2명의 코칭스태프 일당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 감독은 여자야구 대표팀에 진심이다. 필리핀전 후에도 그는 여자야구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여자 선수들이 열정을 갖고 뛰고 있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아직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남은 경기에서도 승리해 여자야구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양 감독은 세계대회 진출권을 확보했지만, 고삐를 늦추지 않고 메달에 도전한다.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경기를 해나가겠다. 준비를 잘 하겠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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