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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폴란드서 만들어 유럽전역에 판다"… K방산·배터리 거점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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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넷째)과 한국 정부 대표단이 지난 23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안제이 아담치크 폴란드 인프라부 장관과 만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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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개사와 54억2200만달러(약 7조2000억원)'.

1993년 대우전자가 '철의 장막'을 뚫은 이후 폴란드를 택한 한국 기업 숫자와 투자 누적액이다. 최근에는 전기차 배터리에 이어 방산·에너지 부문에서도 한국 기업이 잇달아 폴란드에 진출했다. 재계에선 "동·서유럽을 잇는 데다 인건비가 저렴하다"며 폴란드를 눈여겨보고 있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폴란드에 현지 법인과 생산거점을 마련하는 한국 기업이 늘고 있다. 우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올해 하반기 폴란드에 첫 유럽법인을 설립하고 폴란드를 유럽 생산거점으로 삼는다는 방침을 수립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고 있는 폴란드에서 직접 무기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하반기 폴란드와 K9 자주포, 다연장로켓 천무 등 8조2000억원 규모 무기를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정부와 군(軍)은 한국 방산 기업에 잇달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와 풍산에 탄약공장을 현지에 설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풍산은 "검토 중이며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에너지로 진출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2033년 원자력발전소 1기 운영을 시작으로 2043년까지 원전 6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은 폴란드 퐁트누프에 한국형 가압경수로(APR1400) 원전을 짓기 위해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퐁트누프 원전 사업 규모는 42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매일경제

최근 폴란드는 유럽연합(EU)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6년 폴란드는 유럽 전기차 배터리 10%만 생산했지만, 3년 만에 비중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자회사인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을 통해 올 하반기 폴란드에 전기차용 핵심 부품인 구동모터코어를 생산하는 공장 착공에 돌입한다. 유럽 공장 설립은 친환경차 부품사로 거듭나려는 포스코인터내셔널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고위 관계자는 "폴란드는 인건비가 저렴하면서도 독일어,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인재가 많다"며 공장 설립을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2018년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세웠다. 브로츠와프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능력(연 70GWh)을 갖춘 곳으로 유럽·미국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지난해 10월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직접 폴란드를 찾았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폴란드 실롱스크에서 배터리 분리막을 생산하고 있다. 2021년에는 1조1300억원을 투자해 실롱스크에 3·4공장을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양산에 돌입하면 SKIET는 유럽 최대 규모(15억4000만㎡)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잇달아 진출하자 신한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도 폴란드 사무소를 열며 금융 지원에 나섰다.

한국 기업이 폴란드를 찾는 배경에는 지정학적 위치와 저렴한 인건비가 있다. 우선 폴란드는 7개국(독일·러시아·우크라이나·체코·슬로바키아·벨라루스·리투아니아)과 접해 있다. 유럽 어디로든지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횡단철도(TCR) 관문이라 중국과도 쉽게 연결된다.

이정훈 KOTRA 바르샤바 무역관장은 "완성차 업체가 밀집한 독일과 가까우며 현대자동차·기아가 진출한 체코, 슬로바키아와 이웃하고 있어 안정적인 수요처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재건을 앞두고 폴란드를 거점으로 택한 기업도 늘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도 폴란드의 장점이다. 지난해 기준 폴란드 인구는 약 3800만명으로 EU에서도 다섯 번째로 꼽힌다. 특히 인구 중 25%가 25세 미만으로 젊은 노동력을 갖추고 있다. 매년 폴란드에선 공대생 6만명이 졸업하며 엔지니어 수급이 원활하다. 아울러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에도 주요 대학이 있어 인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KOTRA 바르샤바 무역관 측은 "폴란드는 유럽에서도 임금이 저렴한 고학력 전문인력이 풍부해 지속적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폴란드 정부도 친(親)기업 정책을 펼치며 한국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폴란드는 경제특구에선 투자금액 25~50%에 해당하는 법인세 면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내국인·외국인 투자 조건도 동등해 한국 기업에 대해 투자 방식, 투자액 제한을 두지 않는다. 또 내국인 의무 고용 비율에 대한 규정도 두지 않고 있어 한국 기업이 자유롭게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폴란드 내수 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폴란드가 중·동부 유럽에선 가장 큰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2004년 EU 가입 이후 2019년까지 한 번도 '플러스 성장'을 놓쳐본 적이 없기도 하다.

최근에는 폴란드가 EU 기금을 대거 받아오면서 한국 기업에도 사업 기회가 더욱 많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는 EU의 '다년도 재정운용계획 2021~2027'에서 760억유로(약 108조3000억원)를 받는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 기업도 폴란드 에너지·인프라·디지털 개발 사업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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