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기간제·정규 교사 지위는 같다”던 법원, 2심서 왜 판단 뒤집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게티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간제 교사도 정규직 교사와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지난해 1심에선 기간제 교사도 정규직 교사와 같은 일을 하는 만큼 임금 지급에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최근 2심 재판부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이다. 법원이 기간제 교사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1·2심 결론이 180도 바뀐 셈이다.

“동일 노동·임금 차별” 주장한 기간제 교사들 손 들어준 1심


사건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기간제 교사 25명은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를 상대로 임금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정규직 교사와 똑같이 아이를 가르치고, 행정업무를 보는 등 동일한 노동을 했는데 임금은 적게 받아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매년 호봉이 오르는 정규직 교사들과 달리 기간제 교사들은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라 고정된 봉급을 지급받는다. 근속연수에 따라 매년 1월과 7월에 지급되는 정근수당도 일부 기간제 교사들은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정규직 교사는 학교를 옮기더라도 계속 근무 경력이 인정되지만, 경기도에서 기간제 교사는 현재 근무 중인 학교에서의 경력만 정근수당 지급에 산정되는 등 근무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성과상여금도 애초에 차등 지급된다. 기간제 교사는 교육 활동 평가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S등급을 받아도 정규직 교사의 최하 등급인 B등급보다 36만원 적은 성과상여금을 받게 돼 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 기간제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도 정규직 교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인 교육공무원에 속한다”고 봤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정규직 교사만 교육공무원이라고 명시한 규정이 없을뿐더러, 정규직과 기간제 교사의 교과 지식·학생지도 능력·담당 업무 등에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동일한 노동을 하는 정규직 교사에 비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면 이는 위헌·위법한 차별”이라며 호봉승급 제한규정, 정근수당·퇴직금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성과상여금과 관련해선 “정부가 재량적으로 차등을 둘 수 있다”고 보고 차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항소심 “기간제·정규 교사는 법적 지위 달라 처우도 달라질 수 있어”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들의 법적 지위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기간제 교사는 임용 요건, 기간, 책임, 신분 등이 정규 교사와는 다른 ‘특수한 지위에 있는 교사’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본질적으로 같지 않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에는 차별 자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 기간제와 정규 교사의 법적 지위 자체가 다르므로 처우를 달리 해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간제와 정규직 교사는 동일한 집단’이라는 전제가 뒤집히면서 1심에서 인용됐던 원고 측 청구도 대부분 배제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호봉제는 교원의 장기재직에 따른 정기적인 승급을 전제로 한 제도인데 기간제 교사는 그 지위가 연속적이지 않고, 임용계약 체결 시마다 새로 획정된 보수를 받는 지위에 있다”며 지금처럼 별도 규정에 따라 봉급을 지급해도 된다고 봤다. 정근수당에 대해서도 “단기간 근무가 예정된 기간제 교사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산정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서울시와 경기도가 기간제 교사들이 퇴직할 때 가족수당을 평균임금에 포함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퇴직금을 재산정하라”고 판결했다.

“처우 차이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아” 논의 여지 남겨둔 재판부


항소심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들의 청구를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고심의 흔적’을 판결문에 남겨놓았다. ‘추가 논의의 필요성’이란 대목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하지만, 위와 같은 처우의 차이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다른 견해를 밝혀둔” 것이다.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가 원칙적으론 정규 교사의 일시적인 결원을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예외적인 제도지만, 일선 학교에선 기간제 교사가 차지하는 역할의 비중이 커 제도가 취지에 맞게 운용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또 “기간제와 정규직 교사의 교과 지식, 업무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기간제 교사들이 담임·학생부·학교폭력 등 정규 교사가 기피하는 업무를 떠안는 일도 있다”면서 “국가와 지자체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연구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