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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근로정신대 문제제기 14년 한길…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들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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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왼쪽)이 2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열린 제18회 들불상 시상식에서 들불상을 받은 뒤 임락평 들불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사진을 찍었다. 조계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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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3분만에 끝났습니다. (패소 후) 양금덕 할머니는 바닥에 앉아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이국언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이사장은 지난 2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열린 제18회 들불상 시상식에서 16년 전 일본 나고야 법정 풍경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시민모임은 올해의 들불상을 수상했다.

이 이사장은 “<조선일보>가 광주의 조그마한 시민단체를 피해자들의 돈이나 쫓는 (것으로 보도해), 마치 뒷골목의 ‘조폭’처럼 돼버렸다”고 말했다. 시민모임이 2012년 일본 전범 기업으로 끌려간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면서 승소할 경우 받는 배상금 중 20%를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원고들과 합의한 것을 ‘과거사 비즈니스’로 비틀어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팔을 붙잡아도, 다리를 걸어도, 얼굴을 향해 돌멩이가 날아오더라도 지지해주시는 국민을 위해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이 이사장의 수상 소감을 들은 뒤, “힘내라”며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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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과 시민들이 2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열린 제18회 들불상 시상식에서 들불상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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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상은 5·18민주화운동 전후로 민중운동의 불씨가 됐던 윤상원 열사 등 7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정채웅 제18회 들불상 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일제치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요구가 중요한 시대정신이 됐다”며 “시민모임이 14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관된 활동을 이어왔다”고 밝혔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일했던 이 이사장은 2003년부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조공장이 있었던 나고야의 시민들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동원한 한국인 피해 할머니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 지원단체 나고야 소송지원회는 1999년 3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5월 나고야 고등재판소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항소심 선고 현장을 동행 취재했던 이 이사장은 2008년 3월 기자를 그만뒀다. “기사 한 줄 보태는 힘으로는 안 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2008년 11월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소송은 최종 기각됐지만, ‘판’을 벌였다. 이 이사장은 2009년 시민 20여명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전신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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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944~1945년 조선의 여자 어린이들을 속여 전범 기업 군수공장으로 동원해 항공기 부품 페인트칠을 시키는 등 강제노동에 동원하고도 임금을 한 푼 주지 않았고,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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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임은 일제 강점기 때 여자 어린이들의 강제노동 등 인권침해 실태 문제를 제기했다. 일제는 1944~1945년 13~15살의 여자 어린이들에게 “여학교에 다니게 해주겠다”고 속여 일본 군수공장으로 동원해 일을 시키고도 임금 한 푼 주지 않았고,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광주·전남·충남 등지에서 여자 어린이 300여명을 동원했다. 시민모임은 2012년, 2014년, 2015년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도 수임료를 받지 않고 ‘공익소송’에 동행했다. 이 이사장은 “정부와 언론이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무관심할 때 시민모임의 투쟁을 뒷받침한 것은 다달이 5000원, 만원의 후원금을 낸 시민들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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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열린 제18회 들불상 시상식.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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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덕씨 등 5명이 참여한 소송은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냈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은 대법원의 배상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다. 시민모임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제3자 변제 지급 대상 15명 중 양금덕씨 등 생존자 3명과 사망한 피해자 2명의 유가족 등 5명이 정부안을 거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생존자 1명이 해법을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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