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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르포] "사복 입고 학교 가요"…중·고교 '사복데이'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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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북원중의 교복 입어도 되는 자율 복장의 날
학생회 제안, 교사·부모 동의 받고 실시
학생, 학부모 모두 긍정·부정 반응으로 엇갈려
한국일보

강원 원주시 북원중 학생들이 4일 교복을 입은 모습(왼쪽)과 지난달 28일 '자율 복장의 날'을 맞아 편안한 옷차림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오른쪽)을 비교했다. 북원중 제공·원주=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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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교복을 입고 밝게 인사하는 중학생 김지민(가명)군. "오늘 교복 입었네?"라는 교사의 질문에 김군은 "아침에 옷 고르기가 귀찮았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 의문을 갖는 이 상황, 어찌된 영문일까.

지난달 28일은 강원 원주시 북원중의 '자율 복장의 날'이었다. 학생들은 이를 '사복데이'라고도 했다. 북원중 말고도 최근 사복데이를 운영하는 중·고등학교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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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강원 원주시 북원중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주=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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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교문에 들어서자 운동장에선 체육 수업 중이었다. 둘씩 짝 지어 원반을 던지는 학생들. 바로 옆 화단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붉은 철쭉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교 체육복부터 캐릭터 후드티, 맨투맨, 짧은 트레이닝 바지, 청바지까지. 옷차림이 각양각색이었다.

북원중이 자율 복장의 날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복데이라는 말이 마치 사복만 착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새 옷 구입을 부추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학생들은 교복, 체육복, 사복 중 입고 싶은 옷을 자유롭게 고른다. 면바지에 맨투맨을 입은 2학년 김모(14)양은 "무채색 옷을 입는 친구들이 많다"며 "여학생들은 딱 붙는 바지와 펑퍼짐한 상의, 남학생들은 후드 집업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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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시 북원중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사복을 입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원주=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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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와 함께 3학년 2반의 4교시 도덕 시간이 시작했다. "자, 칠판 보세요. 중재와 조정의 차이를 설명할게요. 중재는…" 학생들은 김모(40) 교사의 설명에 집중했다. 26명 중 교복을 입은 학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옆 교실도 마찬가지. 3학년 1반 담임교사 장모(32)씨는 학생들과 학급 토의를 하고 있었다. 총 29명 중 교복을 입은 학생은 한 명뿐이었다. 우측 창가 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은 캐릭터 '헬로키티'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활동성이 아쉬운 교복을 입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했다. 다만 3학년 조모(15)양은 "옷이 편해서 좋지만 반대로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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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시 북원중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자율 복장의 날'을 맞아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달달 버스킹' 무대를 관람하고 있다. 원주=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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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날은 '달달 버스킹' 행사가 열렸다. 오디션에 합격한 학생들이 점심시간 조회대에서 버스킹 공연을 했다. 4월처럼 버스킹 행사와 사복데이가 겹치는 날이면 학생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았다. 3학년 김모(15)군과 노모(15)양은 그룹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Next Level)' 노래에 맞춰 칼군무를 선보였다. 노양은 "교복은 재미가 없다"며 "사복데이 날 버스킹 공연을 하면 의상을 맞춰 입고 무대를 더 즐길 수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북원중 사복데이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학생자치회다. 지난해 학생회 공약으로 처음 운영을 시작했다. 회장 이모(15)양과 부회장 전모(15)양은 "학교에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 많다"며 "옷으로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크게 호응한다"고 전했다. 학생안전부장교사 김모(55)씨는 "학생회에서 낸 의견이 실질적 운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사들도 열린 마음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복데이'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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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강원 원주시 북원중에서 학생들이 자율 복장으로 급식실을 들어서고 있다. 원주=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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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까지. 사복데이 운영 주기는 학교마다 다르다. 고교 2학년 A(17)양은 격달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교복 아닌 옷을 입고 등교한다. A양은 "전교생 중 약 90%가 사복을 입는다"며 "한껏 꾸미고 오거나, 트레이닝복, 농부 콘셉트 셔츠를 입는 등 다채롭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두가 사복데이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 학부모 모두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학생들의 개성을 드러낼 기회임을 강조한다. 반면 부정적 입장에서는 자율성을 너무 많이 주다보니 학생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착용하거나 학생들 사이에 빈부 격차가 부각된다고 말한다.

A양은 "치마, 부츠 같은 아이템으로 꾸미고 가는 편"이라며 "교복만 입으면 따분한데 즐거운 기분으로 학교를 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B(14)양도 매달 한 번 있는 사복데이를 기다린다. 주로 입는 옷은 맨투맨과 청바지. B양은 "하교 후 바로 학원에 가서 사복 입을 일이 없었는데 이제 옷장에 쌓여 있던 옷을 자주 입는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옷으로 내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일부 학부모 역시 사복데이를 긍정 평가했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C(42)씨는 "아이들의 단조로운 학교 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이라며 "더불어 자녀의 패션 취향을 알아가며 모녀 사이가 더 가까워질 기회"라고 설명했다.

노출 심한 옷, 값비싼 옷 금지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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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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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사복데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들도 있다. 중학교 2학년 D(14)양이 다니는 학교는 최근 사복데이를 없앴다. 시작한 지 1년 만이다. 학교는 사복데이에 노출이 심한 옷 입는 것을 금지했지만 규정은 무용지물이었다. D양은 "평범한 옷을 입고 교문을 통과해 학교 안에서 노출이 있는 옷으로 갈아입는 친구들이 있었다"며 "파인 상의나 딱 붙는 옷, 돌핀 팬츠(아주 짧은 반바지의 한 종류) 등이었다"고 전했다. 유행하는 디자인의 옷이 아니면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D양은 "사복 디자인이 별로일 때 시장에서 산 것 같다고 놀리거나 교복을 입고 온 친구에게 눈치 없다고 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생 사이 빈부 격차를 도드라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교 1학년 E(16)양은 중학생 때 사복데이를 경험했다. 그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톰브라운, 무스너클, 버버리 등 고가 브랜드 옷을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상대적으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교복으로 나온 후드 집업을 입곤 했다"고 설명했다. 톰브라운 카디건은 150만~300만 원대, 무스너클 패딩은 기본 100만 원이 넘는다. 버버리의 경우 기본 티셔츠 가격이 60만~70만 원대다. 매달 사복을 두 차례 입고 학교를 가는 고교 2학년 F(17)양은 "친구들과의 시밀러 룩(옷의 소재, 색상 등을 비슷하게 맞춰 입는 것)이 유행이라 입을 옷이 없으면 사서라도 입게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실질적 부담을 토로했다. 학부모 G(46)씨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사복데이마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위해 옷을 산다. 그는 "늘 비슷한 차림이지만 아이만의 기준이 있어 매월 쇼핑을 해야 한다"며 "한 번 입었던 옷은 절대 학교에 다시 입고 가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H(52)씨는 "지금 주기(격달에 한 번)보다 잦아지면 충분히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3, 4개월 주기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대다수 학교도 이 같은 문제를 우려해 '노출 심한 옷 금지', '고가의 옷 금지' 등 다양한 사복데이 규정을 함께 공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원주= 양윤선 인턴기자 qorfh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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