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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동성애 조장”···혐오가 주도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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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제정 7곳 중 4곳에서 폐지 및 개정 움직임

폐지 사유 대부분 설득력 없고 인과관계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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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일 서울특별시 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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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학폭)’을 소재로 삼았다. 방영 이후 일반 시민의 학폭 피해 폭로가 이어지는 등 아직도 큰 반향을 낳고 있다. 학폭 가해자로는 동급생들이 주목받았지만, 드라마는 분명 또 다른 ‘가해자’를 가리킨다. 주인공이 자퇴서를 제출하며 학폭 피해를 자퇴 사유로 들자 이를 못마땅해하던 담임 교사가 무자비하게 주인공을 폭행하는 장면에서다.

요즘 세상엔 학생을 폭행하는 교사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 글로리>의 이 장면이 낯설다면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에서 담임이 주인공을 폭행한 시점은 2004년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학생에 대한 교사의 ‘직접 체벌’을 금지한 게 2011년 3월이다. 사실 아득히 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는 교사의 폭행이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개정 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해당돼 정당화될 수도 있었다.

국내에서 ‘학생인권’이라는 용어가 본격 등장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다. 한창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두발자유화운동’, ‘학교체벌금지운동’ 등이 일었지만 당장 교육현장이 달라지진 않았다. 2007년에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학생의 인권보장)에 “학교의 설립자 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지만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0년대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학생인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제정 13년째를 맞은 학생인권조례가 올들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7개 지자체 중 4곳에서 조례의 폐지 내지는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폐지를 요구하는 측은 학생인권조례가 위헌 소지가 있고, 교권침해와 동성애 조장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학생인권단체 등은 폐지 요구 자체가 성소수자 등에 대한 또 다른 혐오와 차별이라고 맞서고 있다.

서울은 이미 폐지안 발의, 경기도 “연내 개정”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제정 순으로 경기(2010년), 광주(2011년), 서울(2012년), 전북(2013년), 충남(2020년), 제주·인천(2021년) 등 7곳이다. 조례 제정은 교육감 직선제가 처음 시행된 2009년 이후 급물살을 탔다. 제주·인천의 경우 보수단체 등이 문제 제기하는 조항 등을 빼거나 조례명을 변경했다. 나머지 5곳의 조례는 지역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두발 등 신체 자유 보장 및 체벌 금지, 종교와 정치 성향·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 학습권 및 휴식권 보장,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보장, 학교 운영 참여권 보장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조례는 내내 순탄치 못한 길을 걸었다. 2010년대 초반 조례가 생긴 지역은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이다. 태생부터 좌우 진영 논란에 시달렸다. 제정 이후 끊임없이 위법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폐기 요구가 이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조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교육부는 서울과 전북 학생인권조례 등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조례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판단이 나왔지만, 조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지자체로 조례가 확산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한 지자체에서는 조례 제정 반대 집회에서 혈서가 등장하기도 했다. 전북 이후 충남에서 다섯 번째 조례가 제정될 때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다.

문재인 정부에서 잠시 확산 조짐을 보이던 학생인권조례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폐지 또는 개정 추세로 돌아섰다. 폐지까지 거론되는 지자체는 서울다. 서울은 만 18세 이상 시민 2만5000명 이상의 서명이 있으면 조례 발의가 가능하다. 조례 폐지 서명에 모두 6만4347명이 참여했고, 이중 4만4856명이 유효서명으로 확인돼 조례 발의 요건을 충족했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청구안을 받아들여 지난 3월 13일 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조례 폐지안은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다”는 한 줄로 돼 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당시에도 주민발의 과정을 거쳤다. 당시에는 9만7702명이 유효서명으로 확인돼 발의 요건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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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담임 교사가 주인공(학생)을 과격하게 폭행하는 장면. 드라마에서 담임 교사는 학교 폭력의 주요 ‘가해자’로 묘사된다.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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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은 조례 폐지안에 대해 수차례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회에서 폐지안이 통과되면 서울시교육감이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규정상 주민청구조례안은 1년 이내 심의를 마쳐야 하고, 본회의 의결 시 추가로 심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야권의 한 서울시 의원은 “발의는 됐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폐지안 심의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며 “폐지를 반대하는 여론 등을 감안해 시간을 충분히 두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5월 3일 브리핑을 통해 “연말까지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도교육청은 “자율 속에서 책임을 배우는 균형 잡힌 생활교육”을 개정 목표로 제시했다. 구체적인 개정 방향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청소년인권단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도교육청의 조례 개정 방침을 사실상 조례를 없애기 위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임태희 도교육감은 “교권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그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학생인권만을 과도하게 강조한 학생인권조례도 교권침해의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히는 등 조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쳐왔기 때문이다.

전북에선 지난 4월 기존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를 위한 교육활동보호조례를 통합해 ‘교육인권증진 기본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전북도교육청은 “교권과 학생인권을 폭넓게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기존 조례에 있던 학생인권 보장기구 관련 조항이 일부 삭제돼 “학생인권조례 무력화”(전교조) 등의 비판이 나온다. 조례가 생긴 지 3년도 채 안 된 충남에서도 현재 조례 폐지청구안이 주민발의를 통해 접수돼 유효서명 검증에 착수하는 등 전국적으로 조례 폐지 내지는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수단체들 “조례가 동성애와 성전환 조장”, 인권단체 “혐오와 편견”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아무래도 서울이다. 폐지안이 발의되기도 했고, 주요 학군과 대학이 몰려 있어 타 지자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조례 폐지를 주도하는 단체는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가칭)’라는 곳이다.

이 단체는 조례 폐지 사유로 조례가 법률의 위임이 없는 등 위헌·위법이고, 교사와 부모의 교육권과 훈육권을 침해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조례가 중학생 제자의 교사 폭행 사건 등과 같은 교권침해를 일으키고, 기초학력 미달 등 학력저하 초래, 소지품 검사 등 금지로 인한 학교 안전 위협, 학생의 비행과 일탈 등을 조장한다고도 했다.

“조례가 동성애와 성전환 등을 조장한다”는 것도 폐지 청구 사유다. 지난 3월 열린 조례 폐지촉구 집회에서 이들은 “(조례가) 성인권과 사생활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10대들의 성해방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집회에는 “조례가 임신, 낙태, 동성애를 인권이라고 가르친다”, “성혁명(동성애·성전환·유아 및 청소년 성행위) 교육하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 등의 손팻말도 등장했다.

이 단체의 주장은 대부분 법원의 판단을 통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거나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사안들이다. 위헌 논란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2013년 “조례의 제정권자인 지방의회는 민주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고, 헌법에서 포괄적인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조례에 대한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할 필요가 없으며 포괄적인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도 과거 제기됐던 조례 무효확인 청구 소송 판결(2018년)에서 “조례는 전체적으로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학생의 권리를 열거해 학생인권 보호가 실현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내용 역시 이미 교육기본법 유엔(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규정된 인권 사항을 확인하는 범위 내에 있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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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폐지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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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가 “조례가 종교와 양심에 근거한 표현조차 혐오 표현으로 간주해 금지한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헌법재판소가 2019년 “학생이 민주시민으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권 의식을 함양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혐오 표현을 못 하도록 학내에서 규제하는 건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일축한 사안이다. 부모의 양육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최근 서울시의회가 조례 폐지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을 뿐 부모에 대해서는 별도의 제한이 없다”며 성립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학력저하, 교권침해 주장의 경우 인과관계 성립 여부가 불분명하다. 시의회는 검토보고서에서 2012~2016년 조례가 제정된 지역과 미제정 지역 간 기초학력 미달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례 제정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 지역에서 기초학력 미달률이 증가하는 등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토보고서는 다만 “추가로 객관적 분석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교권침해의 경우 교육부의 교육통계서비스 집계를 보면 조례가 본격 시행되기 직전인 2010년 당시 교권침해 건수는 전국 2226건이었다. 침해 건수는 조례 제정 시점인 2011년 4801건, 2012년 7971건까지 늘었다가 이후 다시 줄기 시작해 2016~2019년 2400~2600건대 수준을 유지해 제정 이전 시점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

조례 폐지 사유 중 판결이나 통계 등을 통해 검증이 가능한 사안을 제외하고 나면 “조례가 동성애, 성전환, 임신과 낙태, 일탈 등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남는다. 그러나 각 지자체 학생인권조례 어디에도 동성애 등을 “옳다”고 옹호하거나 장려하는 조항은 없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례가 의도하는 것은 성적 지향은 다르지만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중하자는 것이지, 동성애를 하라거나 동성애자가 되라고 가르친다는 건 완벽한 오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동성애·성전환 등을 이유로 타인을 비판하거나 조롱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동성애 등을 조장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취지다.

조례 폐지를 주도하는 단체에는 동성애·성전환 등 성적 지향에 대해 혐오와 차별 표현을 줄곧 제기해온 단체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청소년인권단체 등은 조례 폐지의 주된 사유도 결국은 ‘혐오와 차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교실붕괴나 교권침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제기된 것인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심화되자 원인을 학생인권 신장이라는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며 “동성애 조장 등의 주장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협하고 혐오적인 시각과 이들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인권과 교권 양립 가능한 개선안 찾아야


조례 폐지 요구가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함에도 매번 등장하는 데는 조례 제정 후 학생 인권의 전반적인 사회 인식과 지위가 향상된 것에 반해 교사들의 교권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교단의 심각한 현실도 자리 잡고 있다. 지방 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조례가 제정되고 직접 체벌이 금지된 뒤 학생이 교사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수업 방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도 교사가 학생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히 없기 때문에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교사들 사이에서 널리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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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일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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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를 위시한 일부 학부모·학생들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인권침해·아동학대 신고나 소송제기 등도 교권을 흔드는 주요 원인으로 교육계에서는 본다. 2021년 부산에서는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한 교사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규정한 학생인권옹호관의 직권조사 권한의 경우 조사범위나 법적 효력을 놓고 “과도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전북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교육인권증진 기본조례안’으로 통합 개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때문에 교육계는 교육 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아동피해 문제에 대해선 교사에게 ‘면책권’을 부여하는 방안이나 교원지위법 등을 개정해 무분별한 신고와 소송을 일삼는 학부모를 처벌하도록 하는 방안 등의 도입을 요구 중이다. 민천홍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실장은 “학생인권조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조례나 관련 인권보호 조항을 악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교사와 학생 모두가 학교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이에 필요한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민석 전교조 교권상담국장은 “인권침해나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 경우 모든 것을 교사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학내 아동학대 문제 등을 전담할 공무원과 기구를 각 시·도교육청에 설치해 교육의 틀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도 교원지위법에서 정하는 교권침해 행위 기준 마련과 예방 활동, 갈등분쟁조정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교권침해 학생에 대한 교육이나 상담 등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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