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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칸 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 리뷰.. “배우도 대본의 결말 보지 못했다” [2023 칸영화제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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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번째 칸, 여성감독을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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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추락의 해부’를 연출한 저스틴 트리에 감독이 27일(현지시간) 시상대에서 트로피를 치켜들고 있다. 폐막식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선 한국 배우 송강호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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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한 남성의 사망사건을 통해 가까운 이들의 내면과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다룬 영화 ‘추락의 해부’에게 주어졌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에서 열린 칸영화제 시상식(폐막식)에서 심사위원회는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가 연출한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여성 감독이 수상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1993년 제인 캠피언의 ‘피아노’, 2021년 줄리아 뒤쿠르노의 ‘티탄’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황금종려상 수상이 확정되자 트리에 감독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번쩍 손을 치켜들어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안팎에선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이날 오전 칸 드뷔시극장에서 관람한 ‘추락의 해부’는 한 남성의 추락·사망사건 이후 아내를 기소하면서 진행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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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칸 드뷔시극장에서 열린 영화 ‘추락의 해부’ 상영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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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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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타살 기소된 아내 이야기
가까운 이의 내면 복잡성 다뤄
지대가 높은 외딴 산골마을에 세모꼴 오두막집에서 아내 산드라와 남편 사무엘, 그리고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들 다니엘이 평온하게 살아간다. 작가인 산드라는 자신을 찾아 먼곳까지 온 기자와 인터뷰를 나눈 뒤 방에 혼자 누워 있었고, 다니엘은 반려견에 목줄을 착용시키고 산책을 나간다. 다니엘이 귀가해보니 눈쌓인 집앞 마당에 사무엘이 머리를 크게 다친 채로 죽어 있다.

남편이자 아빠를 잃은 슬픔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아내 산드라를 둘러싼 조사가 진행된다. 아들 다니엘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다. 사무엘은 다락방 유리창으로 추락하면서 건물 아래 창고 지붕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뇌를 다쳐 사망했다. 사고사로 볼 여지는 없었다.

이제 사건은 사무엘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냐, 산드라의 살인인가의 문제로 치닫는다. 창고 지붕 모서리에선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 자, 자살인가 타살인가. 이름이 있던 작가였던 산드라의 사건이 타살로 비쳐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영화 ‘추락의 해부’는 150분이 넘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굉장히 높아 한국 개봉시에도 상당한 관심이 예상된다. 생전 사무엘이 작곡한 것으로 보이는 디스코풍 음악이 시끄럽게 반복되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영화는 스크린데일리 평점(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21편에 대한 세계 유명 비평가의 평점)을 3.0점을 받아 공동 2위에 올라, 이후 상영관 대기줄이 상당히 길었다.

영화는 단지 사망사건의 가해자가 아내 산드라인가 아닌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산드라와 남편 사무엘의 관계, 산드라와 아들 다니엘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가까운 이의 내면에 자리잡은 다른 욕망이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질문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관계의 단절성이 주요 주제로 거론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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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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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에 감독은 상영 전 주최 측과의 인터뷰에서 “내 개인적인 지옥이 모든 사람의 일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부부의 역사를 해부하는 재판에서 부모에 대해 알게 된 어린 소년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트리에 감독은 아들 역할을 한 소년배우 그래너에게 대본의 결말을 읽지 않도록 해 혼란스러워 하는 아들을 연기토록 했다. 트리에 감독은 1978년생 프랑스 감독이다. 영화 ‘시빌’로 2018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역대 3번째’로 여성감독 수상
일본은 본상만 2개 수상하기도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심사위원상은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폴른 리브스(Fallen Leaves), 감독상은 쩐이인훙 감독의 ’도당 부팽의 열정(The Passion of Dodin Bouffant)에게 돌아갔다.

특히 일본은 올해 2개의 본상을 수상했다. 이번 칸영화제 각본상은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몬스터’를 쓴 사카모토 유지가 받았고, 남우주연상은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에 출연한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받았다. 여우주연상은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의 ‘어바웃 드라이 글래시스(About Dry Grasses)’의 메르베 디즈다르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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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직후의 저스틴 트리에 감독.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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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는 티켓이 사실상 전석 매진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명감독과 명배우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빈 자리는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연출이 대신했다.

켄 로치 감독의 ‘디 올드 오크’,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키드냅’은 명성에 비해 영화평도 무난하다 혹은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대작 ‘메이 디셈버’에 출연한 나탈리 포트먼은 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였지만 빈손으로 돌아갔다.

韓영화 경쟁부문 진출 없지만
‘거미집’ ‘잠’ 가능성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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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저녁 10시께 칸영화제 시상식이 개최 중인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앞에서 영화팬들이 운집해 생중계 장면을 관람하고 있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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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는 경쟁부문 진출작이 없었기에 폐막식에서 수상자 호명은 없었다.

하지만 총 7편이 비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등에 초청된 가운데 경쟁부문 못지 않은 평가를 받은 작품도 있었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로부터 “어메이징하고 위대한 프리미어였다. 칸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12분이나 이어져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게 됐다.

특히 영화 ‘잠’을 연출한 1989년생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영화를 상기하는 장르적 융합이 돋보이는 연출을 보여줬다. 영화 ‘탈출’의 이선균, 영화 ‘화란’의 송중기도 칸에서 주목받는 배우로 기억되게 됐다. 황혜인 감독은 영화 ‘홀’로 칸영화제 학생영화 부문에서 2등상을 받았다. 그는 사실상 2023년 칸에 진출한 한국 감독 중 ‘유일한 수상자’가 됐다.

이날 시상식엔 반가운 얼굴도 등장했다. 바로 작년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배우가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참여했다.

송강호는 “배우나 예술가의 삶을 생각해보면 기쁨과 고통의 시간이 공존하는 것 같다. 이 무대 위의 기쁨을 위해서 그 긴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고 견디지 않나 생각한다”며 “오늘 수상하신 모든 분께 경의를 바친다”고 덧붙였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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