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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마오·시진핑 모두 만난 유일한 미국인 "美中 충돌 가능성은…" [차이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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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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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사진=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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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중국 1~5세대 최고 지도자를 모두 만난 유일한 외국인이 있다. 바로 헨리 키신저(100) 전 미국 국무장관이다.

키신저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 같은 대학 정치학교수로 재직했다. 키신저는 1971년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닉슨과 마오쩌둥의 미중 정상회담을 막후 조율하는 등 중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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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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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외교관으로 불리는 키신저는 19세기 유럽사를 전공한 학자로도 유명하다. 1994년 키신저가 쓴 '디플로머시(Diplomacy)'는 국제정치학계에서 지금도 바이블로 통한다. 912페이지 분량의 책에서 키신저는 17세기 유럽사에서 시작해서 냉전종식까지 다루면서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과 '현실정치(Realpolitik)'를 설명하고 있다. 자국 이익이라는 실리에 기반한 현실주의 외교가 바로 키신저의 외교철학이다.

중국에도 키신저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1971년 처음 중국을 방문한 이래, 키신저가 80회 이상 중국을 방문할 정도로 중국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키신저가 출판한 '중국 이야기(On China)'는 같은 해 중국에서 '중국을 논하다(論中國)'로 번역 출판되자마자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이 책에서는 특히 키신저가 바둑과 체스를 통해 중국과 미국의 외교문화를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키신저는 체스가 '결정적인 전투'의 게임이라면 바둑은 '쉽사리 끝나지 않는 작전'의 게임이라고 강조한다. 체스의 목표가 상대방의 모든 말을 보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전투를 통해 완벽한 승리(total victory)를 추구하는 반면, 바둑을 두는 사람은 눈 앞의 돌뿐 아니라 상대방이 전개하려는 증강계획까지 끊임없이 분석하면서 상대적 우위(relative advantage)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고 베트남전쟁을 결정한 것도 너무 많은 '돌'이 중국을 에워쌀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키신저는 1972년 마오쩌둥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중국 최고 지도자를 모두 만나며 중국 지도자에 대한 이해를 쌓아 나갔다. 미중 경쟁에 대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키신저가 말하는 중국을 더욱 더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미중 충돌을 막을 시간은 5~10년밖에 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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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중국을 방문한 키신저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는 장면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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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자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헨리 키신저를 8시간 인터뷰한 기사를 '헨리 키신저가 설명하는 3차 세계대전을 피하는 방법'(Henry Kissinger explains how to avoid world war three)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이날 대담은 미중 갈등이 전쟁으로 전이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먼저, 키신저는 "미중 양국은 상대방이 전략적 위협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고 있다"면서 "미중이 강대국간의 충돌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기술적·경제적 우월성을 추구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격화에 주목하면서 인공지능(AI)이 미중 경쟁을 부추기는 요소가 될 것으로 염려했는데, "AI의 빠른 발전으로 인해 미중 충돌을 막을 방법을 찾을 시간이 5~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중국 지도자들은 서구의 정치 지도자들이 말하는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사실은 미국의 규칙이며 미국의 질서라는 점에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키신저는 서구가 중국의 야망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경고했는데, "(워싱턴은) 중국이 세계 지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중국은 강력한 국가가 되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즉 아돌프 히틀러 방식으로의 세계 지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서 키신저는 "그것은 중국이 생각하거나 생각했던 세계질서에 대한 방식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히틀러가 전쟁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나치 독일과의 전쟁은 불가피했지만, 중국은 다르다는 의미다. 마오쩌둥을 다섯 번이나 만나고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심지어 시진핑과도 여러 번 만난 키신저는 중국 지도자들의 이념적 헌신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는 항상 중국의 이익과 능력에 대한 명민한 분석과 결합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법은 뭘까? 키신저는 첫째, 두 강대국 사이의 균형(equilibrium)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둘째, 미중간에 영구적인 대화채널을 형성하는 걸 제안했다.

"중국과 미국이 전면적인 전쟁의 위협 없이 공존할 수 있을까?"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해 키신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변했지만,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라며 "미국은 실패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강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100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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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좌측부터 헨리 키신저, 저우언라이, 마오쩌둥/사진=중국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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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에 당장 당면한 과제는 대만 문제다. 키신저가 풀어놓은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 방중 때의 에피소드도 재밌다. 당시 대만 문제를 협상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은 마오쩌둥밖에 없었다며 "닉슨이 구체적인 주제를 꺼낼 때마다 마오는 '나는 철학자라서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저우언라이(당시 중국 총리)와 키신저가 이 문제를 의논하게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만에 대해서는 마오가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고 키신저는 밝혔다.

마오는 대만에 대해, "그들은 반혁명 세력입니다. 우리는 당장 그들(대만)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100년을 기다릴 수 있으며 언젠가 대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한참 많이 남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기본적인 스탠스를 담고 있는 발언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키신저는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이 발생할 경우 대만이 완전히 파괴되고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겠지만, 중국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특히 중국 지도부는 내부 격변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키신저는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키신저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오히려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문제는 미·중 양국이 양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국 지도자들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연관성을 강조해왔으며, 상황이 지금처럼 진행됐는데 미국 역시 '다른 곳에서의 영향력 약화 없이 대만을 버리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키신저의 냉혹한 실리주의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키신저는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 같은 두 강대국이 서로 맞닥뜨릴 경우 일반적인 결과는 군사적 충돌이지만, 지금은 상호확정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와 AI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인터뷰 말미에 키신저는 특유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저는 (미중 경쟁이) 어떤 방항으로 진행되든 그것을 볼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27일 만 100살을 채운 자신의 많이 나이를 농담 삼아 가리킨 것이다. 키신저와 달리 우리는 미중 경쟁의 결과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미중 양국이 극한 대결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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