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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동무는 왜 머리가 짧습니까, 축구 선수입니까” [나의북한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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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북한에서 받은 마지막 출국 비자. 사진=육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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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헤어스타일까지 규제한다는 것은 외부에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남자 이발소와 여자 미용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유학을 떠난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미용실에 찾아갔다.

방문한 미용실은 종합시설(상가) 내에 있었다. 지하 1층에 내려가면 왼쪽은 남자 이발소, 오른쪽은 여자 미용실이 있었다. 당연히 여자 미용실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당시 ‘투 블록 숏 컷’을 하고 있던 나는 중간에 서서 고민했다. 그래도 성별을 따라야 할 것 같아서 여자 미용실에 들어갔다.

거울 앞 테이블 위에 파마 롤, 가위 등은 있는데 유독 이발기가 안 보였다. 유학 초기라 말이 서툴러서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미용사에게 미리 준비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자 미용사는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여성 머리만 할 줄 안다.”, “사진 속 스타일은 맞은편 남성 이발소에 가서 해야 한다.”며 나를 이발소로 안내했다.

얼떨결에 남자 이발소에 앉았다. 머리를 감긴 후 수건으로 거침없이 물기를 털어줬다. 이곳이 이발소라는 게 실감 났다. 곧게 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때리듯 말리는 모습은 거리에서 보던 구두 닦기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내 머리통이 구두 한 켤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발사가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나에게 물었다. “동무는 왜 머리를 이렇게 짧게 했습니까? 축구 선수입니까?” 알고 보니 북한 여성들은 대부분 단발머리 스타일을 즐겼다. 그러다 결혼하거나 나이가 많아지면 머리카락을 길렀다. 그들의 기준에서 여성스럽지 않은 머리가 신기했던 이발사는 나에게 “중국에선 여자들이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해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이후로 나는 남성 이발소의 단골손님 됐고 덕분에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다. 지금은 내 머리카락도 많이 길어졌으니 다시 북한에 가게 된다면 여성 미용실로 안내받지 않을까 싶다.

왜 북한 유학을 했나요?

주조 중국 대사관 사이트에 따르면 매년 정부 장학생을 교환학생으로 유학이나 연수를 보낸다. 공비(公費) 교환 장학생은 연간 60명, 자비(自費) 유학생은 70명 정도다. 지금까지 북한에 유학을 간 중국인은 1700명이 넘는다.

공비 교환 장학생은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1학기 동안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 종합대학이나 김형직 사범대학에서 연수 과정을 갖는다. 자비 유학생은 북한에서 예비반이라고 하는 언어 학습을 1년간 익힌 후 시험의 성적에 따라 김일성 종합대학 혹은 김형직 사범대학에 입학, 4년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다. 즉, 자비 유학생은 북한 평양에서 총 5년간 공부해야 대학 졸업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유학은 유학 중개업체를 통해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중 북한 대사관 혹은 북한 교육부에 아는 ‘관계자’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소개인을 통해 관계자를 소개받거나 소개인에게 2만~10만 위안의 중개 비용을 주고 이를 보증인으로 세워 유학 보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북한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중국 동북 지역(북한 인접) 출신이거나, 북한과의 교역이 잦은 중국 단둥(丹东)지역 출신이다. 중국인 유학생 중 조선족 출신보다 한족 더 많은 이유는, 한족 출신 부모들이 북한과의 무역을 위해 자녀를 유학 보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학을 다녀온 자녀들은 무역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 역할을 맡는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부모님이 북한 유학을 권하셨다. 봉쇄된 나라이기에 여전히 순수한 조선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북한 유학생들이 중국 귀국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북한으로 유학을 갔느냐”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중국에서는 북한이 중국의 80년대와 비슷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왜 낙후된 나라로 유학을 갔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무시하기도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유학에 대한 질문을 회피했다. ‘차라리 중국에 있는 아무 대학이나 갈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한국 유학을 위해 한 어학당에 입학 신청을 했을 때는, “북한 대학 출신이면 신청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선생님과 동기들을 만나서 북한 유학을 즐겁게 보냈다는 나름의 성취감이 있었는데, 타인들이 함부로 내린 평가로 좌절감이 컸다. 북한 유학 경력이 마치 내 인생의 오점으로 여겨졌다.

한국에 와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고 지도 교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이런 좌절감을 안고 살았다. 유학 초창기에는 다른 중국 유학생처럼 중국과 한국에 대한 연구로 논문 주제를 정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나에게 북한에 관한 연구를 제안했다. 나의 독특한 유학 경험은 장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단순하고도 힘 있는 조언 덕분에 나는 좌절감에 빠져나올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교수님의 격려로 북한 유학 생활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다. 북한과 한국이 가진 멀고 먼 거리감이 중국인이라는 나의 시선을 통해 좁혀질 수 있지 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꿈꿔본다.

기고=육준우(陆俊羽)·중국인유학생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수료.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졸업. 북한 김형직사범대학교 학사졸업(조선어전공)

am529junw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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