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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수거한 현금, 보수로 받았는데… 보이스피싱 가담자, ‘국참’ 거쳐 ‘무죄’ [박진영의 뉴스 속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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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女, 2심도 무죄…檢, 상고 포기

“채권 추심 업무 말 믿어” 공모 부인

국참 배심원 7명 중 6명, 무죄 평결

1심, 무죄에 피해자 배상 신청 ‘각하’

“범행 고의 가담했다 보기 어려워”​

檢 “대졸, 4일간 160만원 받아” 항소

2심 “새로운 증거 제출 안 돼” 기각

“국참 1심 판단, 원칙적 존중돼야”

‘5438억원.’

지난 한 해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 범죄 피해액이다. 검찰은 올 초 가담자들을 엄벌해 ‘보이스피싱 범죄는 근처에만 가도 중형’이란 인식 확산으로 범죄를 억제하겠다고 천명했다. 당시 검찰은 “말단 현금 수거책일지라도 대부분 징역형을 선고받고 있으며 형량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지만, 국민참여재판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일보

서울고등법원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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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참여재판 중 보이스피싱 사건 무죄율이 두드러져 검찰이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수거책 역할을 한 50대 여성이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계일보 2023년 4월24일자 10면 참조>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는 지난 11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모(50·여)씨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이씨는 2021년 5월 성명 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공모해 서울과 인천에서 피해자 3명에게 4차례에 걸쳐 2850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은행이나 카드사 직원 등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대출을 해 주겠다”고 접근했다. 피해자들이 대출을 신청하자 돌연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라”며 이씨를 보냈다.

이씨는 한 달 전 구인 광고를 보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이력서와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과 얼굴 사진, 어머니 연락처까지 전달해 ‘수습사원’이 됐다. 업무 지시는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이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1심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이씨는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매입해 신용불량자들에게 채권을 추심하는 과정에서 현금을 받아 무통장 입금해야 한다는 말을 믿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배심원 7명 중 한 명만 공모 관계를 인정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나머지 6명은 무죄 평결했다.

지난해 11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의심해 볼 수 있다”면서도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인식한 채 고의로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과 양립하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수거한 현금을 세어 보지 않았고, 그중 일부를 보수로 받아 보수 지급 방법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피해자에게 받은 돈을 무통장 입금하며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화해 만날 장소를 정하는 등 신상 정보를 노출한 점이 범행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병가를 신청한 적이 있는 건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피해자 A씨가 이씨에 대해 낸 배상 신청을 각하했다. A씨는 가장 많은 1800만원을 뜯겼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배상 신청이 각하되면 신청인은 불복하거나 동일한 배상 신청을 다시 할 수 없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검사는 이씨가 대졸이고 30년간 보험·화장품 영업, 텔레마케팅 일을 했으며, 현금을 수거해 입금만 했는데도 4일간 160만원을 받은 점 등을 항소 이유로 들어 “1심 판단에 사실오인 또는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배심원들이 충분히 검토했던 사정들이고, 새로운 증거가 제출된 바도 없다”면서 2010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판단은 원칙적으로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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