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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역전세난·깡통전세·전세사기…전세, 네가 문제다![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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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란에 이어 역전세가 골치를 썩이더니 이젠 전세사기가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입니다. 영어로도 ‘Jeonse’라고 표기한다는 전세(傳貰). 10여 년 전부터 소멸론이 제기됐건만, 여전히 번성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 중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꽤 오래 살아남을 듯합니다. 손보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또다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위험이 있죠. 그래서 오늘 딥다이브는 전세제도를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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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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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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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전에도 있었던 전세사기

전세라는 독특한 임대차계약 제도는 도대체 언제 생겨났을까요. 고려시대 ‘전당(典當)’제도, 즉 물건을 맡겨놓고 돈을 빌리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하나 있고요(윤대성 창원대 명예교수 ‘한국전세권법연구’).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지(부산·인천·원산)에 인구가 급속도로 유입되면서 집값이 치솟자 일부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아 집 살 돈을 충당한 게 진짜 시발점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주택전세제도의 기원과 전세시장 전망’ 보고서).

즉, 전세는 누군가 만든 게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 우리나라에 자리잡은 제도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실체는 이겁니다. 사금융. 은행 문턱이 높았던 시절,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운 개인이 임차인 돈(전세보증금)을 빌려서 집을 마련하고 이자와 월세를 퉁친 것이 바로 전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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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동아일보에 실린 전세사기 사건 기사. 월세로 얻은 집이 자기 집인 것처럼 속여서 전세를 내주는 방식으로 보증금을 10여 차례 편취한 사건이다.  지금은 ‘傳貰’라고 한자로 표기하지만 당시엔 ‘全貰’라고 쓴 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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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과거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오래 전 전세제도의 흔적이 발견되는데요. 99년 전인 1924년 기사에선 ‘재동엔 3000원짜리 전세집이 있으나 돈턱이 아득하고, 인사동에도 상당한 집이 있으나 이것도 50원의 월세로 두달치는 먼저 주어야 한다’면서 만만찮은 전셋값 부담을 다룹니다. 1939년엔 ‘주택난을 기화 삼아 전세사기가 횡행한다’는 기사도 나왔죠. 그 시절에도 자신이 얻은 월세집이 자기 집인 것처럼 속여서 10여 명에게 전세금을 가로챈 사기범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전세는 꽤 위험할 수 있는 계약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 없는 전세 보증금을 계약서 한장만 믿고 신용도도 확인되지 않은 집주인에게 덜컥 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셋값이 계속 오르기만 한다면 보증금을 떼일 염려는 적은 편이죠. 새로 들어올 세입자로부터 받아 나가면 되니까요. 동시에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긴 합니다. 1981년 제정된 임대차보호법인데요. 최소 전세기간을 정하고 있죠(당시엔 1년). 아울러 ‘월세는 매달 돈을 까먹지만 전세는 원금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전세를 선호하는 임차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전세제도가 유지될 수 있던 이유입니다.

서민 울린 전세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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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대도시,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전세 비중은 꾸준히 커졌는데요. 전세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건 198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전세대란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데요.

당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저환율·저유가·저금리)으로 주식시장에 이어 부동산시장까지 투기 바람이 붑니다. 동시에 근로자 소득수준이 높아지자 ‘나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전세 수요를 부추겼죠. 이에 ‘주택 200만호 건설’을 공약한 노태우 정부는 1989년 4월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엄청난 물량 공급이 예고되면서 일시적으로 집값 상승세는 주춤하는 듯했는데요.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집 구매를 미루고 전세살이를 택하면서 전세 수요가 되레 폭발합니다. 전셋값 오름세는 더 빨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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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동아일보 기사. 전세값 폭등으로 세입자 자살이 이어지면서 전세값 잡기가 가장 큰 사회 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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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정부가 나섰습니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며 1989년 12월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전세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죠.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요.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집주인들이 2년치 전세금을 한꺼번에 올려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락같이 오른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길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1990년 초반 두달 남짓한 기간 17명의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왠지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2020년 임대차 3법 통과 뒤 ‘2년+2년’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자, 전셋값이 무섭게 치솟아 난리를 겪은 지 얼마 안 됐는데요. 바로 그와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있었던 겁니다.

전세대란이 사회 문제화 되면서 1990년엔 서민 주거난 해소를 위한 여러 정책이 나왔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다세대 주택, 즉 빌라를 많이 짓도록 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거였습니다. 아파트는 비싸니까 저소득층이 거주할 만한 빌라를 늘리자는 취지였는데요. 그 빌라가 지금은 전세사기로 서민을 울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으니, 아이러니입니다.

목돈 없이 전세 사는 시대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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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전세 매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서울 성북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돈암동 아파트의 우체통함에 전세급구 전단을 붙이고 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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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시장이 크게 흔들린 건 1998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았고 그해 전셋값은 무려 40%(수도권 기준) 폭락했습니다. 초유의 ‘역전세난’이 일어난 건데요. 실직∙감봉으로 더 싼 전셋집으로 옮기려던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아우성이었고요.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길 없어 집이 경매에 넘어간 집주인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죠.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도 이때 처음 등장합니다.(노무현 정부의 ‘실록 부동산정책 40년’ 참조)

하지만 경기가 빠르게 살아나면서 이듬해 전셋값은 다시 튀어올라 폭등세를 연출합니다. IMF 시기에 주택 공급이 줄어든 탓에 2000년대 들어 전셋값은 상승세를 탔는데요. 2000년대 중후반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이어지며 전세시장은 더 커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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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급구’는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성동구의 아파트에서 공인중개사가 전세를 구한다는 공지문을 붙이는 모습.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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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 2년마다 꼬박꼬박 오르는 전세금은 세입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보증금을 올려줄 길 없어 변두리로 밀려나야 하는 서민들이 많았죠. 정부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상당히 손쉬우면서도 파격적인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전세자금 대출, 즉 빚을 더 많이 내주기로 한 겁니다.

전세자금 대출은 꽤 오래 전부터 일부 은행에 있었지만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서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연대보증을 세워야 하는 식). 2008년 말 정부는 ‘서민 주거안정’을 명목으로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대출 보증 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확 올렸는데요. 이때부터 전세자금 대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립니다. 깐깐한 소득 기준 없이 전셋값의 70%(이후 80%로 상향)까지 빌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2015년엔 대출한도가 최대 5억원(서울보증보험 상품)까지로 더 늘었는데요. 덕분에 ‘목돈 없이 은행에 이자만 내고 전세 사는 시대’가 활짝 열립니다.

그래서 세입자들은 마음 편히 살던 집에서 전세를 계속 살 수 있어 그 후로 행복해졌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반대입니다. 전세자금 대출이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부동산 시장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폭탄으로 돌아온 전세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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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전세자금 대출이 이젠 모든 전세 관련 문제의 주범으로 거론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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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이 부동산 시장 거품을 일으키는 원흉 중 하나라는 건 사실 수년 전부터 부동산 전문가들이 공공연히 해왔던 이야기입니다. 다만 누구도 ‘그러니 이제 그만 전세대출을 조이자’라고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을 뿐이죠. ‘전세대출=서민 지원’인 상황에서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 겁니다.

그 사이 전세자금 대출금은 급격히 불어났습니다(2012년 23조원→2022년 171조원). 이는 불 붙은 부동산 시장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드는 땔감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요. 저금리 전세대출 덕에 전세수요가 넘치면서, 집주인들은 전셋값을 대폭 올리기 쉬워졌습니다. 임차인들이 더 싼 전셋집을 찾아 옮기는 대신 전세대출을 받아서 충당하면 되니까요. 앞에서 언급한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셋값이 치솟자 전세대출이 폭등한 게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전세대출은 갭투자의 도구로도 활용됐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을 지렛대로 삼아서 전세 끼고 주택을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무력화하는 수단이 된 겁니다. 전세대출이 전세뿐 아니라 매매가격까지 끌어올린 건데요.

지금의 전세사기를 초래한 ‘무자본 갭투자’ 역시 관대한 전세대출의 허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사기꾼들은 신축 빌라의 감정평가를 부풀려 전세금 바가지를 씌웠습니다. 세입자들은 전세금의 최대 80%를 대출받아 전셋집을 마련했지만, 알고 보니 그 집은 깡통전세였습니다.

전세 종말? 글쎄, 쉽지 않을 걸

요컨대 전세기간을 늘려주거나 전세대출을 쉽게 내주는 식의 정책은 전세라는 제도를 영속시키는 데는 기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민의 주거 안정을 가져다주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일단 한번 전셋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전세시장의 취약성 키웠는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전세제도 자체가 문제인데?

사실 ‘전세의 월세화’ 얘기는 1990년대부터 나왔고, 십여 년 전부턴 ‘전세 종말론’까지 나돌았습니다. 지금처럼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던 시기(좋은 말로는 ‘안정기’)였던 2013년에 특히 화두였죠. 집값이 계속 떨어질 판인데 누가 전세 끼고 집을 사겠냐는 논리였습니다. 전세란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2016년 초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전세시대는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라며 직접 종말론을 펴기까지 했는데요. 저금리가 심해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보단 월세 또는 반전세를 선호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은…)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부동산 전문가에게 전세의 운명을 물어봤습니다. 독립부동산리서치 광수네복덕방의 이광수 대표(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와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두 분과 통화했는데요. 두분의 톤은 살짝 다르지만 적어도 10년 안에 전세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게 공통된 의견입니다.

“전세 제도가 없어지기란 불가능합니다. 전세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고 확대됐기 때문에 이걸 인위적으로 없애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지금 전세 보증금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하는데요(참고로 한국경제연구원은 1058조원으로 추정). 이걸 누군가 충당해줘야 없어질 것 아닙니까. 그걸 누가 감당하겠어요. 정부가 정치적 언어를 사용해서 ‘전세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한다’고 얘기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얘기입니다.”(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

“장기적으로는 전세가 소멸할 수 있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로, 10년 안에 순수 월세로 넘어가진 않습니다. 집주인도 월세로 돌리려면 자금 준비 등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특히 해외 같은 ‘순수 월세’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아마 ‘반전세’가 대세를 이룰 거고요. 빌라는 전세공포 때문에 월세화가 빨리 진행되고, 아파트는 전세가 유지되는 식으로 차별화가 심해질 겁니다.”(박원갑 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

전세를 없애진 않더라도 제도는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 말고도 전세와 거의 비슷한 ‘안티크레티코’라는 제도가 볼리비아엔 있는데요. 다른 점은 볼리비아에선 전세를 내놓은 집은 아무런 저당이 없어야 하고요, 만약 경매가 진행되면 전세입자가 1순위가 됩니다. 전세권이 부동산등록부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했고요.(김진유 경기대 교수 ‘전세의 역사와 한국과 볼리비아의 전세제도 비교분석’)

한마디로 우리나라 전세제도보다 훨씬 투명성이 높습니다. 한국도 ‘깜깜이 계약’을 막기 위해 집주인에게 정보 공개 의무를 부여해야 합니다. 박원갑 위원은 “세입자가 많은 다세대 주택의 경우 세대별로 누가 언제 얼마의 월세 또는 전세 계약을 맺었는지, 담보대출은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모두 기록해 계약서에 첨부하도록 집주인에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적어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세 계약을 맺었다가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날벼락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By. 딥다이브

짧게 잡아도 100년 넘게 한국에서 생명을 이어온 전세제도. 그동안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역전세난, 깡통전세, 전세사기가 겹친 지금이 최악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더 이상 전세사기 피해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길게는 고려시대, 짧게는 강화도조약 이후부터 등장한 전세제도. 불안정한 사적계약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택임대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잡았습니다.
-전세대란이 사회를 휩쓸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놨는데요. 서민 주거안정을 명목으로 전세-기간을 늘려주고 전세대출을 확대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정책은 다시 전셋값 급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부풀었던 전세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진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결국 전세 제도 자체가 문제라면 이제 전세는 사라지려나요? 한때는 ‘전세 종말론’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완전한 멸종에 이르진 않을 거란 의견이 더 우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진화시켜서 더 쓸만하게 만들어야겠죠.

*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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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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