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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마지막 여성 일자리도 씨 말린 탈레반 "유엔 근무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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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유엔 여성 근무 금지" 통보
이혼한 여성 '강제 재결합' 시도까지
여성들 "성차별도 아파르트헤이트"
한국일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새 학기 첫날인 지난달 25일 등교한 여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다. 탈레반은 여전히 여성의 중등 이상 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카불=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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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었던 '마지막 일자리'가 사라졌다. 탈레반 정권은 유엔이 아프간에서 벌이는 구호 활동에 여성 참여를 금지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모든 선택권을 박탈당했다. 교육과 경제 활동이 금지됐고, 폭력으로 이혼한 남편과 재결합까지 강요당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AFP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아프간에 파견된 유엔 관리들이 '아프간 여성의 근무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구두로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주(州) 유엔 사무실에서 아프간 여성 직원들의 출입이 제지당했다고 보도했는데, 조치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탈레반은 지난해 아프간 여성이 국내외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유엔 기구는 허용했다. 그러나 유엔마저 예외가 아니게 됐다.

여성의 NGO 참여 금지는 아프간 여성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프간은 국민 3,800만 명 중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며, 이 중 상당수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다.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명분으로 남성과 여성을 엄격히 분리하는 아프간에선 빈곤층 여성을 돕는 것이 여성에게만 허용된다. NGO에 여성이 배제되면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가족은 경제적 원조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사립학교에서 언어를 가르치며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려온 세 딸의 엄마 아니사는 "우리 가족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됐다"고 WSJ에 말했다. 아니사 가족은 하루에 점심 한 끼만 먹으며 모아둔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여성의 노동·교육 이어 이혼도 '금지'

한국일보

지난달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열린 대규모 합동결혼식에 참석자들이 앉아 있다. 카불=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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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테러와의 전쟁', '아프간의 민주화'를 내걸고 아프간을 접수했던 미국은 끝내 승전하지 못한 채 2021년 철수했다. 같은 해 8월 재집권한 탈레반은 아프간 원상 복구를 천명하며 여성에게 노동 금지령을 내렸다. 지난해엔 교육도 금지했다. 지난달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13세 이상의 여성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프간 여성 교육 관련 NGO '펜 패스(Pen Path)'의 대표인 마티울라 웨사가 최근 체포되면서 여성 교육의 문은 더 굳게 닫혔다. 웨사 대표는 "여학교를 다시 열어달라"고 탈레반 정부에 요구하면서 3,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아 여성들을 가르친 인물이다.

일부 여성들은 이혼마저 강제 취소당했다. 마르와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했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결혼생활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또 재혼한 여성을 간음죄로 처벌하거나, 이혼 전 부부의 합의를 의무화해 이혼을 금지하려는 시도도 있다. 이전에는 배우자가 폭력을 휘두르거나 마약중독인 경우 여성의 요구만으로 이혼이 가능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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