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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러서 스파이 혐의로 20년형 위기…셰프 지망하던 美기자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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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당국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최고 20년형이 예상되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에반 게르시코바치 모스크바 특파원. 본인 홈페이지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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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랄 산맥 인근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식당. 지난달 30일 오후, 한 미국인이 들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모스크바 특파원, 에반 게르슈코비치. 31세인 그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BBC, 프랑스 AFP,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유수의 매체에 기사를 쓰며 경력을 쌓은 뒤 WSJ에 입사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관심 분야는 하나였다. 러시아.

그는 이날 취재를 위해 예카테린부르크에 당도한 뒤, 다소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마침 그의 동료가 "오늘, 건투를 빌어"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고마워 친구, 취재해보고 상황 보고할께"라고 답했다. 그 후, 그의 스마트폰은 울려도 받는 이가 없었고, 문자에도 답하는 이는 없었다고 WSJ는 지난달 31일자 기사에서 전했다.

러시아 정보당국이 그가 "러시아 군산 복합기업의 정보를 빼내 미국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로 그를 체포했기 때문이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우랄 산맥 인근에 있으며 군산 복합기업이 다수 소재해있다. 기자가 취재를 하는 일이 기자가 국적을 보유한 정부에게 정보 형태로 전달된다고 믿는 것은 언론 자유가 보장된 현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게르슈코비치가 미국 정부를 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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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게재한 게르시코바치 옹호 기사. [WSJ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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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는 즉각 스파이 혐의를 일체 부인하는 입장을 냈고, 이후에도 이 기사를 통해 게르슈코비치가 러시아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소상히 밝히며 스파이 혐의를 부인하는 목소리를 냈다. 기사의 제목은 "에반 게르슈코비치는 러시아를 사랑했고, 러시아는 그를 공격했다."

기사의 메인 사진은 게르슈코비치가 동료 특파원들과 함께 모스크바 시내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장면이다. 활짝 웃고 있다. WSJ뿐 아니라 타 미국 매체 역시 그를 위한 목소리를 적극 내고 있다. 뉴요커(the New Yorker)는 "친구가 모스크바에 구금됐다는, 상상도 하기 힘든 끔찍한 소식"이라는 기명 기사를 냈다.

뉴요커의 조슈아 야파 국제문제 전문기자는 이 기사에서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넘치고, 재미있으면서 친절하면서 요리까지 잘했던 에반이 차가운 창살 뒤에 있을 생각을 하니 괴롭다"고 적었다. NYT 역시 "WSJ 기자의 석방을 위한 미국 매체 연대 성명서"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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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되는 지난 2월 24일을 앞둔 21일(현지시간) 국정연설을 위해 걸어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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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슈코비치의 뿌리는 러시아다. WSJ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구 소비에트연방 시절 이민을 택한 유태인이다. 게르슈코비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러시아어를 배웠고, 러시아에 천착했다. 그의 홈페이지에도 스스로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구 소련 전문"이라고 간단히 표기해뒀다. 기사 목록도 죄다 러시아다. 러시아를 잘 아는 그가 다룬 기사 목록을 보면 러시아를 비판하거나, 알렉세이 나발니와 같은 반 체제 인사들 관련 내용이 많다.

뉴요커에 따르면 그는 20대 시절엔 기자 대신 셰프의 꿈을 꿨다고 한다. 야파 기자는 "뉴욕에서 살며 여러 레스토랑에서 셰프 수련을 했던 에반 덕에 모스크바에서 맛난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게르시코바치는 결국 요리 대신 취재를 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나서서 그의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가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신 러시아가 게르슈코비치를 포로 교환 등의 카드로 이용할 가능성 등이 점쳐진다. 지난해 12월에도 미국에 구금됐던 러시아의 무기상 빅토르 부트와 러시아가 구금했던 미국 기업인 폴 훨란이 맞교환 석방됐다. 훨란은 석방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에도 불구, 스파이 혐의로 16년형을 선고받고 3년 동안 복역하다 석방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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