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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ET시론]관세청 무역데이터 개방:데이터 선순환 바퀴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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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윤태식 관세청장


챗GPT 열풍이 뜨겁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이후 올해 1월 기준 이용자가 1억명을 돌파했다. 일각에서는 세상을 바꿀 '특이점'(Singularity)으로 주목하고 있다.

지난 300년을 돌이켜보면 세계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기술혁신이었고, 증기·내연기관과 같은 일반목적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이 성장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오늘날 대표적 일반목적기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우리 경제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세계 6대 무역 대국에 진입한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AI 기술에 대한 반응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AI 기술 핵심 요소로 데이터를 꼽으면서 데이터를 디지털 경제의 원유(Oil)라고 부른다. 내연기관을 작동하려면 원유가 필요한 것처럼 AI 작동을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기술 발전의 연료라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골고루 신속하게 선순환되도록 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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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학습용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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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은 기업과 개인의 수출입 신고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방대한 양의 무역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무역데이터는 국세청이 보유한 납세자 정보와 더불어 과세정보로 분류돼 개방 및 활용에 엄격한 조건이 적용된다. 다만 무역데이터는 국세청 정보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용될 여지가 큰 '공공재적 성격'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유망 수출시장 개척, 국내 물류산업 발전, 글로벌 공급망 위기 예방, 물가안정 등 목적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역데이터 개방과 활용에 가장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해상 무역 거래에서 기업 동의를 전제로 해외 판매처 등 상세한 정보를 일반 국민에게까지 공개하고 있다. 이렇게 공개된 세부 무역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역, 물류 등 분야에서 민간의 다양한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관세청은 최근 대내외 경제환경 변화, 민간부문 수요 등을 감안해 기업의 영업비밀 등 민감한 정보는 보호하면서도 '공공재적 성격'의 무역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자 한다. 관세청의 전략은 지난 3월 2일 발표한 무역데이터 개방·활용 확대 방안에 잘 나타나 있다. 기본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역데이터 개방을 통해 정부의 주요 정책목표 달성을 지원하고, 국내 AI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한편 무역·물류 분야 등에서 민간의 혁신적 비즈니스 창출을 촉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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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수출 확대, 물가안정, 글로벌 공급망 위기 대응 등 정책적 목적을 위해 관련 부처 등과 무역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과 무역데이터를 공유하고 해외 역직구(전자상거래를 통한 수출) 통계를 발표해 유망 수출시장 개척, 해외 바이어 발굴, 중소기업들의 해외 원부자재 공동구매 등 분야에서 수출기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예정이다. 안정적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관련해서는 관세청 자체 조기경보시스템을 고도화해서 국가안보 핵심 품목 등의 수입 가격이나 물량 이상 징후를 실시간 포착하고자 한다. 공급망 위기 징후를 조기에 포착해 제2의 요소수 사태, 제2의 마스크 대란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또한 물가안정을 위해서도 국내 물가에 중요한 변수인 수입 원재료의 가격 공개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수입가격과 관련된 수입업체-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

둘째 무역데이터가 국내 AI 기술혁명에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AI 산업 발전의 핵심은 많은 양의 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또 AI 경제에서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데이터가 AI 기술 선도자에 몰리면서 선도자와 추격자 간 격차는 계속 벌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AI 산업의 특징을 감안해 관세청은 '데이터센터'를 통해 국내 연구기관 및 스타트업 기업에 AI 학습용 마이크로 무역데이터 개방을 확대할 예정이다. 대표적 예로서 민간부문의 AI 기반 엑스레이(X-ray) 개발과 챗 GPT 방식의 AI 무역컨설팅 서비스를 들 수 있다. 이를 위해 관세청은 수출입 통관 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양의 엑스레이 영상이미지 자료와 관세청 콜센터 등에 누적된 수출입 상담 관련 말뭉치 자료 등을 적극 개방할 예정이다.

셋째 무역데이터로 혁신적 민간 비즈니스 창출을 촉진하고자 한다. 데이터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데이터는 생산요소(Input)로 작용하면서 경험 기반 학습(Learning by Doing)을 통해 기업 혁신과 효율성 향상을 끌어낸다. 관세청은 무역 빅데이터 공개, 오픈API 방식의 개방 확대, 무역 My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으로 민간의 무역·물류·금융 등 분야의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지원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무역·물류 분야 컨설팅 업체의 경우 관세청이 제공하는 상세한 무역데이터 분석, 무역 My데이터 플랫폼 등을 활용해 유망 수출시장 발굴,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최적 수출입 경로 선정, 신뢰할 수 있는 해외 수입처 파악 등의 컨설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금융 분야의 경우에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AI 기술을 활용해 최근 수출실적이 호조인 기업과 품목, 분야 등을 분석한 후 투자자 대상으로 유망 투자 분야나 기업을 추천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경제의 디지털 경제, AI 경제 전환을 위한 핵심은 결국 데이터의 개방과 활용 확대다.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데이터 선순환의 바퀴를 돌리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관세청도 무역데이터의 '보호' 및 '활용'이라는 2개 가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윤태식 관세청장 tsyoon2@korea.kr

〈필자〉윤태식 관세청장은 1969년생 서울 출신으로, 서울 영동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재정부 국제기구과장·통상정책과장·외화자금과장·국제금융과장과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직 등을 맡았다. 국제금융 전문가로도 불리며 대내외 핵심 업무를 두루 경험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조직 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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