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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CCTV에 잡힌 유리창 속 실루엣…'매의 눈' 형사가 찾아낸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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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소속 이의용 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머니투데이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소속 이의용 경사./사진=이의용 경사



"수사는 문제 푸는 것과 비슷해요. 작은 단서를 시작으로 증거들을 쌓아가서 범행에 대한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과정이죠."

31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마수계) 소속 이의용 경사(41·이하 이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형사는 "범인을 잡아 진술을 들었을 때 내가 세운 가설과 일치하면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그 짜릿함 때문에 2014년 입직한 이후 2년여를 제외하고 줄곧 형사 생활만 고집하고 있다.

이 형사가 속한 경남청 마수계는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텔레그램을 이용해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을 유통한 18명과 매수범 82명 등 100명을 검거했다.

2021년 10월 수사에 착수한 이 형사는 지난해 2월 중간책 A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A씨는 해외 총책으로부터 건네받은 마약을 전국 곳곳에 소분해 숨겨놓는 이른바 '던지기' 방식으로 유통책들에게 공급했다. 유통책들은 A씨에게 전달받은 마약을 다시 구매장소에 '던지는' 방식으로 마약을 유통했다.

이 형사는 가장 먼저 체포한 A씨로부터 마약을 숨긴 장소에 대한 진술을 이끌어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유통책과 구매자를 한명, 한명 검거해나가기 시작했다. A씨의 진술만으로 유통책을 모두 검거할 수 없었던 이 형사는 구매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도 유통책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사는 지난해 4월쯤 난항에 부딪혔다. 울산 울주군의 한 장소에서 마약을 습득했다는 구매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일대 CCTV(폐쇄회로TV)를 모조리 수집해 분석에 들어갔다. CCTV를 아무리 뒤져봐도 구매자가 마약을 얻었다는 지점을 녹화하고 있는 CCTV가 없었다. 유통책이 주변 CCTV가 잡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범행을 벌인 것이다.

이 형사는 CCTV를 다시 돌려보면서 놓친 단서가 있는지 찾아봤다. 인근 카페의 모습이 담긴 한 영상이 눈에 띄었다. 카페 유리창에 반사된 실루엣이 비쳤다. 빨간 후드티에 체크무늬 잠옷바지를 입은 범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알아낸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동선을 다시 추적하기 시작한 이 형사는 광주의 한 모텔에서 해당 유통책을 검거했다. 유통책을 잡아 그에게서 마약을 구매한 구매자를 잡아내고 또 구매자에게서 던지기 장소를 특정해 다른 유통책을 잡아내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이 형사와 마수계는 마약사범 100명 검거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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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당시 8년간 경남 창원시 일대 전통시장에서 260여건, 1억원 상당의 금품을 상습 절도한 범인을 검거한 공로로 이의용 형사가 상인회로부터 받은 감사패의 모습./사진=이의용 경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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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디테일'에 있다…"시민들 가까이 있는 경찰관 되고파"

이 형사는 수사의 단서는 '디테일'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경남 창원서부경찰서 형사과 소속이었던 2015년 전통시장을 돌며 8년간 도둑질을 일삼던 강모씨(당시 49)를 검거했다. 당시 신고된 피해건수가 260건, 피해액수가 1억원에 달했다.

강씨는 주로 새벽시간대 전통시장 천막을 칼로 찢는 등의 수법으로 식자재 등을 훔쳤다. 또 모자, 마스크, 장갑 등을 착용하는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여 검거가 쉽지 않았다.

이 형사는 이 사건에서도 특유의 눈썰미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 형사는 강씨가 범행 현장에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강씨의 동선이 아니라 오토바이에 주목해 수사를 이어나갔다.

이 형사는 오토바이가 마지막으로 포착된 곳 인근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강씨의 것과 유사한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점주를 만나 조사한 결과 강씨가 최근 수리를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리점 주인에게서 강씨의 인적사항을 알아낸 이 형사는 2015년 9월 자택에서 강씨를 검거했다. 강씨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장식용으로 사용한 훔친 골동품 등 100여점의 장물을 압수했다.

이 형사는 상습절도범 강씨를 잡아낸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창원시 시장상인연합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목사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 경찰이 됐다는 그에게 경찰 생활 중 가장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형사는 "위험에 처한 시민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얼굴은 경찰일 것"이라며 "앞으로도 그런 기대에 부응해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관이 되겠다"고 밝혔다.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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