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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꿀 같은 커피를 좋다고 하는 이유는 [박영순의 커피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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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커피에서는 꿀맛이 난다고 말한다. 맛있음을 은유하는 게 아니라 커피에서 진짜 꿀이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커피 열매의 씨앗을 볶은 데에서 왜 살아 있는 꽃에나 깃들어 있는 꿀의 향미가 감지되는 것일까? 또 그런 커피를 품질이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일보

꽃 주변에 몰려든 곤충들은 초기 인류에게 요긴한 단백질이 돼주었다. 긴 세월 속에 꿀은 우리의 긍정적인 정서와 연결되면서 커피에서 꿀 같은 느낌이 나면 품질이 좋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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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1억3000만년 전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이 탄생한 이후 존재했다. 꽃이 꽃가루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 곤충을 불러들이는 데 사용한 일종의 장치이다. 꽃에 있는 수분이 꿀로 농축되는 과정에 다양한 성분들이 녹아들었다. 그래서 꿀은 단지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루어진 설탕물과 달리 복합적인 맛을 낸다.

꿀에는 꽃향도 들어 있어 설탕물과는 차원이 다른 기능을 수행했다. 인류는 사탕수수나 과일 등 식물체에서 비롯되는 달달함보다 꿀의 맛과 향에 더 빠져들었다. 진화론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호미닌(hominin)에게 꽃은 좋은 단백질 공급원을 불러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꽃에 몰려든 곤충들이 호미닌에게 요긴한 먹이가 돼주었다. 꽃에 달려들기를 거듭하면서 인류는 꽃 속에서 꿀을 발견했고, 그것을 더 농축된 상태로 대량 확보하기 위해선 벌집을 쑤셔야 한다는 지혜도 얻게 됐다.

이 과정을 통해 꽃은 인류의 긍정적인 정서와 연결됐다. 이런 추상의 능력을 DNA에 새겨 계승한 호모사피엔스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화려한 색과 모양에 앞서 그 효용성을 탐하도록 우리의 본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고백할 때 꽃을 선물하는 것은 그 순간 상대의 정서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매우 지적이며 본능적인 전략이겠다.

게다가 꿀은 고대부터 항균 및 항염증 효능 때문에 상처를 치료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테르펜, 폴리페놀, 케톤을 포함한 다양한 휘발성 화합물이 들어 있는 덕분이다. 초기 인류에게 처음 보는 먹을거리에서 꿀의 기운이 비친다는 것은 귀중한 영양소와 약용 능력을 가늠하는 단서가 됐다. 꿀이 귀하게 쓰이면서 종교적인 의식에 등장했고, 점차 정서적 안정을 주는 문화적 장치가 되어주었다.

이럴진대, 꿀의 향과 맛이 느껴지는 커피를 인류라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커피 생두를 볶으면 화학성분의 구조가 바뀌면서 실제 꿀에 들어 있는 푸르푸랄(furfural) 계통의 성분들이 만들어진다. 벌레 먹은 생두나 묵은 생두에는 로스팅을 통해 자극적인 향과 거친 질감을 주는 성분들이 생성되기 때문에 꿀 성분이 있다고 해도 잘 감지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꿀과 같은 느낌을 주는지는 커피의 품질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물론 꽃향과 과일향도 같은 원리에서 품질을 가늠하는 감각으로 활용되는데, 우리에게는 꿀의 향미가 더 쉽다.

커피를 테이스팅할 때 몽글몽글 감미로움을 주는 커피가 상대적으로 더 달게 느껴지는 것은 꿀에 대한 경험 덕분이다. 한잔의 커피에는 인간의 혀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의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그럼에도 좋은 커피에서 단맛과 단 향이 감지되는 것은 오랜 세월의 경험이 정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드러우면, 그로 인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게 되면서 우리는 더욱 달다고 느끼도록 진화했다. 같은 커피라도 식어가면서 살집이 감각될 정도로 질감이 우세해지면 묘하게도 단 향이 풍기고 단맛이 흐르는 듯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커피에게 속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감각보다는 추상적인 정서가 커피를 즐기는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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