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택배 못 받아” 거짓말 신고했더니…생수 240㎏ 배달시킨 고객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2월 8일 서울 강남구 한 빌라 4층에 생수 4팩을 배송 중인 택배기사의 CCTV 화면. /엠빅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생수 배달을 받지 못했다는 거짓말로 환불받은 고객이 CCTV 증거를 찾아낸 택배기사를 상대로 240㎏의 생수를 주문한 후 바로 반품하는 일이 발생했다.

1일 물류배송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새벽 4시 50분쯤 택배기사 조모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에 생수 4박스를 배송했다. 조씨는 40㎏ 정도 무게의 생수를 손에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 빌라 계단을 올라 배송을 완료했다.

그런데, 며칠 후 업체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고객이 물건을 받지 못했다며 생숫값 3만6400원을 환불받았다는 것이다. 업체는 “상품이라도 찾아야 페널티를 면할 수 있다”며 조씨에게 소명을 요구했다.

조씨는 바로 고객에게 연락했다. 고객은 “2월 7일에 주문해서 다음 날 물건이 도착했다는 문자는 받았던 것 같은데, 그다음 날인가 다음다음 날에 귀가해보니 상품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배달사고로 처리돼 해당 환불액은 조씨가 물어내야 했다.

조씨는 뭔가 미심쩍었다고 한다. 보통 물건이 없어지면 택배기사에게 연락해 우선 물건을 찾으려고 하는데, 이 고객은 연락도 없이 바로 환불처리를 받았던 것이다. 또, 잃어버린 물건이 생수라는 점도 이상했다. 보통 무겁고 부피가 큰 생수는 누군가 가져가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택배기사의 배달 몇시간 뒤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앞에 놓인 생수를 집으로 가져가는 CCTV 장면. /MB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씨는 고객의 빌라에 찾아가 CCTV를 확인했다. CCTV에는 조씨가 생수를 배달한 지 2시간 반 뒤, 한 여성이 나와 생수 4박스를 집으로 가져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고객은 계속 “생수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이분은 다른 택배기사에게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 그제야 고객은 “착각한 것 같다”고 인정했다. 환불받았던 돈은 생수를 가져간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조씨에게 돌려줬다. 조씨는 “제가 CCTV를 봤다고 얘기해도 아니라고 우기다가, 경찰이 오니까 환불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당 고객은 이후 생수 20박스를 주문했다. 한 박스에 12㎏, 총 240㎏의 생수를 주문한 것이다. 평소 3~4박스 주문하던 것보다 5배는 많은 양이었다. 조씨는 생수 4박스를 들고 4층 계단을 5번이나 오르내리며 배송을 마쳤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씨가 배송 완료 문자를 보내자 바로 ‘8박스는 반품 처리했으니 도로 가져가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조씨는 “고객이 저를 일부러 고생시키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정신적 피해와 시간 낭비로 인한 위자료 100만원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걸겠다고 알렸다고 한다. 3만5000원짜리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한 고객 때문에 열흘간 증거를 찾으며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택배기사에게 위자료 100만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과거 판결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러자 고객은 갑자기 “제가 지금 일을 못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라며 형편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단 어느 정도 생각하는 게 있다면, 제가 그 돈을 구하는데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고객이 택배기사에게 협박받고 있다며 업체에 민원을 넣은 내용. /엠빅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씨는 이후 업체로부터 또다시 연락을 받았다. 그가 고객을 협박했다는 내용이었다. 고객은 업체 상담사에게 “다른 생수 주문과 혼동해 분실 접수 후 환불 처리를 받았다. 이후 택배기사에게 경찰 신고되어 합의금 100만원 협박을 받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민사소송 진행 협박 문자도 받고 있다”는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고객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송할 건데, 소송당하기 싫으면 돈 달라는 게 저는 당연히 그렇게(협박으로) 느낀다”며 “저는 그것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무서워서 한동안 밖에 출입도 잘 못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해당 고객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그는 “이런 한 분 때문에 저희가 고객을 불신하게 되는 게 심적으로 제일 힘들었다”며 “끝까지 법적인 처벌을 받게끔 하고 싶다”고 했다.

[이가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