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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유사동맹’에 말려든 한국의 안보, 한미동맹이 지켜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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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한미동맹 ‘올인’ 위험

한미일 동맹 하위파트너 자처

군비경쟁·진영화 등 딜레마 심화

미국에 기댄 ‘힘에 의한 평화’

핵전쟁 공멸 위험성은 커져


한겨레

올해 3월1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77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한·미 해병대원이 함께 탑승한 상륙돌격장갑차와 차륜형장갑차가 상륙작전을 시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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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란 가능한 두가지 선택지 중 어느 것을 취해도 곤란하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안보 딜레마란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려는 정책이 오히려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적대국가 사이의 상승적 군비경쟁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다. 안보 개념이 경제, 환경, 사이버공간 등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군비경쟁 이외 다른 분야에서도 유사한 딜레마가 나타날 수 있다.

우호국과 군사·경제 동맹을 확대하면 경쟁 상대국 역시 같은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일대일 대결보다 더 복잡한 연루의 위험성이 생기고 위기나 분쟁의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이를 ‘진영화 딜레마’라 부를 수 있겠다. 양차 세계대전은 물론이고 냉전 시기에도 진영화 딜레마가 나타났다.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군사동맹에서 흔히 제기되는 비대칭 동맹의 딜레마도 난제로 인식되고 있다. 약소국 쪽은 강대국 쪽의 안보 원조를 받는 대가로 정책의 자율성을 일정 정도 포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의 분쟁에 원치 않게 연루되거나 그것을 거부할 경우 파트너로부터 동맹을 파기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경제파트너 중국과 ‘단절’ 감수


안보 딜레마는 국방의 딜레마로 연결된다.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대개는 과도한) 국방비를 지출할 경우 한정된 국가 자원의 배분이 왜곡되어 경제가 어렵게 되고 이는 다시 국방비 지출 여력을 저하시키고 결국 국방이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이다. 또 하나는 적대 쌍방의 군사력을 구성하는 무기의 파괴력이 과도할 경우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상호 수용할 수 없는 파괴가 발생함으로써 원래의 목적인 국가 ‘방위’가 무의미해지는 경우다. 이는 미-소 간 핵무기 경쟁에서 제기된 소위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개념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과잉파괴의 딜레마’라 칭할 수 있겠다.

한국의 안보와 국방에서는 앞에서 논의한 딜레마들이 모두 나타난다. 다른 나라들과 다른 역사와 전략적 환경이 만든 ‘구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랜 분단체제와 정전체제(법적 전쟁 상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립된 한-미 동맹 체제는 여러 딜레마들이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기본 여건을 구성한다. 남북한의 재래식 군비 경쟁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서 가속되었다. 한-미 동맹 체제에서 핵군비는 미국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핵무기를 배치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공약’은 강화되었고 남한은 핵 대응을 위한 첨단 재래식 전력을 증강했다. 북한은 다시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그사이 핵전쟁의 위험성은 계속 커진다.

한편, 한국은 비대칭 동맹의 약한 파트너로서 정책 자율성을 제한받고 강한 파트너의 세계 전략에 협력할 것을 강요받는다. 한국은 이미 진영화 딜레마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일본과 한국을 한 덩어리로 묶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사실상의 3자동맹을 결성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은 중·러의 결합과 그에 대한 북한의 참여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한·미·일 ‘유사 동맹’의 최하위 파트너인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이익에 복무하면서 군사적으로는 핵보유국들을 상대하고 경제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무역파트너인 중국과의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

국방비 딜레마는 한국의 경제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평가되며 2023년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3%(57조원)를 차지한다. 2021년 국방비 비중은 2.55%로 같은 기간 일본(0.97%), 중국(1.23%), 독일(1.33%) 등 경제·기술 분야의 주요 경쟁국에 비해 거의 2배 수준이다.(‘2022 국방백서’) 그만큼 상대적으로 더 큰 기회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국방비 딜레마는 남한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판단된다.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은 경제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화폐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핵·경제 병진 노선’을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변경했다가 다시 ‘병진 2.0’이라 할 수 있는 국방력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2019년 이후의 상황은 국방비 딜레마를 필연적으로 동반할 것이다.

미국의 ‘약탈적 경제정책’도 당연시


과잉파괴의 딜레마는 핵군비 경쟁의 산물이다. 상대의 핵공격은 ‘모두 막지 못하면 전혀 막지 못하는 것’이다. 3월 한-미 연합훈련 기간 동안 미국의 전략자산은 북한에 대한 즉각적인 핵공격 능력을 과시했다. 한편 북한이 ‘운용훈련’을 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순항미사일, 핵무인수중공격정 등의 공격 무기들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뿐 아니라 국방 자체의 의미(딜레마)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북한 또는 그 정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인간의 본성이 위험한 것이기에 그렇다.

윤석열 행정부 출범 이후 첫 1년 동안 안보정책의 윤곽이 단순명료하게 드러났다. ‘힘에 의한 평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그 내용은 한-미 동맹으로 모든 안보국방의 문제들을 풀어간다는 것이다. 즉, ‘한-미 동맹에 의한, 한-미 동맹을 위한, 한-미 동맹의’ 해법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군비경쟁의 딜레마는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으로 해소된다. 진영화는 미국 주도의 동맹체에 확실히 편입해 미국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여 상대 진영의 ‘공격’을 막는 효과가 있다. 정책 자율성의 훼손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이익을 통해 보전한다. 국방비 딜레마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방비의 편익이 (기회)비용을 능가한다. 과잉파괴의 딜레마는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에 기초한 핵억제를 통해 피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신앙에 가까워 보이는 한-미 동맹 올인 전략은 딜레마를 더욱 심화시킨다. 핵군비경쟁의 가속화, 진영화의 균열 현상과 동맹을 향한 미국의 ‘약탈적’ 대외 경제정책, 국가 주권과 위신의 저하, 고가 무기 구매의 미국 편중, 핵전쟁으로 인한 민족 공멸 위험성의 증대 등이다.

한국 또는 한반도 공동체가 치러야 할 비용도 날로 커지고 있다. 안보와 경제는 심리적 측면이 강하다. 현 상황을 진지하게 지켜보면서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은 남북한의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남북한 각각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낳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의 사활적 이익을 앗아갈 수 있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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