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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광주 5·18 묘지 찾은 전우원, 방명록에 ‘‘민주주의 진정한 父는 여기 묻힌 모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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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추모연대 "할아버지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면 오늘의 행보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전두환이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만행에도 관심 갖고 진정성 있는 행보 이어나길 정중히 부탁" 당부

눈물로 손잡아준 5·18 유족

세계일보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맨 앞줄 왼쪽)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 고 문재학 열사 묘역을 참배한 뒤 문 열사 어머니 김길자 여사(〃 〃 오른쪽)에게 사과하며 포옹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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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27)씨가 31일 5·18 유가족과 피해자를 만나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할아버지를 대신한 그의 사죄에 5·18 유가족들은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자주 오라'고 화답했다.

우원씨는 이날 오전 첫 공식 일정으로 광주 서구 5·18 기념 문화 센터 리셉션 홀에서 5·18 유족·피해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가 5·18 학살의 주범"이라며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군부독재에 맞서다 고통을 당한 광주 시민께 가족을 대신해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머리 숙였다.

그는 5월 항쟁으로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 큰절을 하며 사죄의 마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이후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 우원씨는 희생자 묘역 앞에서 또 무릎을 꿇었다.

안내받은 희생자들의 묘비를 하나하나 겉옷으로 닦으며 한 힌 영령의 넋을 위로했다.

그는 참배 직전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이십니다’라고 적었다.

참배를 마친 우원 씨는 5·18 유족인 어머니들이 모여있는 옛 전남도청 별관을 찾아 다시 큰절을 올렸고, 5월 항쟁 당시 헬기 사격의 흔적이 남아있는 '전일빌딩245' 현장도 찾았다.

그는 "너무 늦게 와 죄송하고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우원 씨의 사과는 5·18 유가족과 피해 당사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5·18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활약하다 숨진 고(故)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우원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가슴이 아프다"고 그를 위로했다.

우원씨를 안아준 김 여사는 "이제는 광주를 제2의 고항처럼 생각하고 자주 오라"며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5·18 진실을 밝히자"고 말했다.

또 다른 오월 어머니들도 "우리는 항상 열려있으니 배고프면 언제든지 와서 '어머니 밥 주세요' 이야기하라"며 "광주를 외가라 생각하고 자주 오가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이명자 전 5월어머니집 관장 역시 "우리는 전두환의 '전'자만 들어도 사지가 떨리던 사람들인데 진정어린 사과를 해주니 마음이 풀린다"며 "진정성을 끝까지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또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도 다른 이들의 사죄와 양심고백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원 씨는 "저한테 돌을 던져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인데 오히려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셔서 더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오늘 하루만 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우원 씨의 사죄를 지켜본 사람들은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5·18 기념재단 조진태 상임이사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대단한 용기를 낸 것"이라며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우원 씨가 순수한 마음으로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원 씨 사죄가 용서와 화해, 상생으로 가는 하나의 계기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5·18 민주묘지관리사무소 김범태 소장은 우원 씨의 참배를 지켜보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수많은 집례 중 눈물을 글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김 소장은 "본인 외투를 벗어 묘비를 닦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정성이 느껴져 감정이 복받쳤다"며 "(사죄)하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사죄를) 결단하고 찾아온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도 "전두환 일가 중 한명이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진상규명과 전두환 책임을 확인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진정성을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왔다.

광주전남추모연대는 "할아버지가 저지른 죄들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면 오늘의 행보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전두환이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와 만행에도 관심 갖고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나길 정중히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우원 씨는 이날 5·18 관계자들을 만나는 공식 일정 이외에도 주말까지 비공식 만남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마약 투약 혐의로 우원 씨를 조사 중인 경찰은 이날 출국 금지 조처하고 추가 조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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