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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배터리 방열 소재 日 앞질러 상용화… “반도체에도 적용 가능”[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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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방열 소재’ 세계시장 노리는 소울머티리얼

50여 년 쓰인 알루미나 대체할 방열 성능 좋은 마그네시아 개발

세계 첫 ‘저온 소결’ 양산 체제 갖춰… 한국재료硏 기술에 양산기술 더해

국내외 유명 기업 성능시험 통과… 전기차-통신기기 등에 필수 소재

동아일보

정인철 소울머티리얼 대표는 지난달 27일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적으로 1970년대 초반부터 쓰여 오던 대표적인 방열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새 소재를 올해부터 우리가 본격 양산한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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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의 급속 충전 성능을 높이거나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배터리 열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수다. 급속 충전을 하면 배터리에서 열이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빨리 배출하는 것이 관건이다. 주행거리 연장에도 배터리 온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배터리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전기차에 쓰이는 여러 소재와 부품 중에서 배터리 열 관리 부문의 개발 경쟁이 뜨거운 배경이다.

경북 경산시에 있는 소울머티리얼(대표이사 정인철)은 높은 열전도성을 갖는 첨단 방열(放熱) 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좀 더 정확히는 방열 성능이 좋은 분말 형태의 방열 필러(충전재)다. 방열 소재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열이 나는 전자 부품 어디에든 쓰인다. 세계 산업계는 지난 50여 년간 알루미나(산화알루미늄)를 주원료로 한 방열 필러를 써 왔는데, 소울머티리얼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마그네시아(산화마그네슘)를 활용한 방열 소재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마그네시아는 알루미나보다 열전도성이 2배가량 높고, 무게는 더 가벼워 전기차에 쓰기에 좋다. 마그네시아는 습기에 취약해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일본의 화학·소재 기업들이 앞서 개발에 나섰지만 결승선에는 소울머티리얼이 먼저 들어서고 있다. 제품은 평균 지름이 각각 100, 60, 20, 3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인 하얀 세라믹 입자들이다. 이 작은 입자의 양산을 위해 지금 10명의 임직원이 뛰고 있다.

●첨단 ‘마이크로 세라믹’

소재는 전체 상품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상품 전체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자국 첨단 소재의 수출 금지를 외교적인 카드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소울머티리얼이 만든 방열 소재는 전기차의 배터리 모듈과 하부 냉각 모듈 사이에 들어가는 재료다. 배터리에서 난 열을 냉각 장치로 제대로 전달하려면 열전도성이 좋은 물질을 주원료로 한 ‘열계면소재’로 빈틈없이 채워 줘야 한다. 소울머티리얼의 마그네시아는 묽은 치약 같은 점성을 가진 열계면소재의 주원료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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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머티리얼의 마그네시아 제품들에는 엑시알(ExiA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존 알루미나를 대체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제품 이름의 숫자는 분말 지름을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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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머티리얼은 자사 마그네시아 제품에 ‘엑시알(ExiAl)’이라는 이름을 붙여 시리즈로 내놨다. ‘엑시트 알루미나(Exit Alumina)’라는 의미로 기존 알루미나를 대체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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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경쟁사가 개발 중인 마그네시아의 전자현미경 사진. 표면이 거친 것은 수분과 반응했기 때문이다. 모양도 구형이 아닌 타원형에 가깝다. 모두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② 소울머티리얼의 엑시알 사진. 표면이 습기와 반응하지 않아 매끈하고, 모양은 구형에 가깝다. 소울머티리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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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알의 열전도율은 55W/m·K로 기존 알루미나보다 2배가량 높다. 무엇보다 엑시알은 습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그네시아는 열전도성이 알루미나보다 좋다는 점은 알려져 있었지만 습기에 약하다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알갱이들의 표면이 습기로 인해 변질되면 열전도성이 크게 떨어져 방열 소재로서 기능을 못 한다. 정인철 대표이사(49)는 “일본 기업들은 아직 습기에 취약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엑시알은 또 제조공정에서 필요한 최고 온도가 기존 마그네시아 제조 때에 비해 300도나 낮다(저온 소결 기술). 그만큼 제조비용을 낮출 수 있다.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지름을 가진 알갱이들이 얼마나 공처럼 둥근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도 중요한데, 엑시알은 단위 부피당 98% 이상의 알갱이들이 구형을 갖추고 있다. 정 대표는 “작은 알갱이 입자들이 구형을 띠지 않으면 이 알갱이들을 주원료로 만드는 열계면소재의 점성이 안정적으로 나오지 않고, 이는 배터리를 만들 때 열계면소재를 주입하는 공정을 방해하게 된다”고 했다.

●한국재료연구원 특허기술 이전받아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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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2012년 영남대에서 무기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라믹 제조 전문 기업인 세라트랙에서 기술연구소장으로 세라믹 공정 기술을 10년 가까이 개발했다. 업무 파트너 중에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재료연구원이 있었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습기에 강한 새로운 마그네시아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대기업에 이 기술을 팔기 위해 마그네시아 샘플의 제조를 정 대표에게 의뢰했다. 이후 대기업으로의 기술 판매는 조건이 맞지 않아 차질을 빚었다. 한국재료연구원은 세라믹 공정 전문가인 정 대표에게 사업화를 제안했고, 정 대표가 고심 끝에 수락하면서 2021년 소울머티리얼이 설립됐다. 한국재료연구원은 특허 기술을 출자했다. 정 대표는 이 기술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갖고, 자본을 끌어들이고 양산을 위한 공정 기술을 개발하는 등 사업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마그네시아 제조 공정 중 알코올을 용매로 사용하던 과정을 물로 바꾸고, 과립화 공정을 최적화했다. 덕분에 마그네시아 분말을 거의 다 공처럼 둥글게 만들 수 있었다. 기존보다 공정을 하나 줄이고, 더 낮은 온도에서 제조함으로써 제조 단가를 낮추고 제조 과정의 친환경성도 높였다.

정 대표는 “세라믹을 오래 연구하고 제조한 경험으로 볼 때, 내습 문제를 해결한 한국재료연구원의 새 마그네시아를 경제적으로 생산한 기술을 개발해 1970년대 초부터 쓰여 온 알루미나의 제조단가만큼 낮추는 것은 도전해볼 만한 목표였다”며 “아직 제조 단가를 더 낮추기는 해야 하지만 자본을 투입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부품기업들 5곳의 성능 인증 시험을 통과했다”고 했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정 대표뿐만 아니라 한국재료연구원과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들에게도 수익이 배분된다. 정 대표는 “한국재료연구원을 비롯한 많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은 사업화가 가능한 보유 기술들을 소개하는 행사들을 많이 연다”며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창업을 하는 방안을 예비 창업자들이 생각해 볼 만하다”고 했다.

●“올해 하반기 추가 투자받아 설비 증설 계획”

소울머티리얼의 당면한 과제는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이다. 현재는 경북테크노파크에 있는 830m²(약 250평) 규모의 공장에 월 9t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작년 하반기 투자받은 재원을 활용해 연말에는 월 40t의 생산 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창업 1년 6개월 만에 양산 기술을 개발하고 소규모 양산 체제까지 갖추고 덩치를 키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울머티리얼의 능력을 믿고 57억 원을 투자한 기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재료연구원 10억 원(기술 출자), 기술보증기금이 20억 원을 투자한 것을 비롯해 배터리 전문 기업 그룹인 에코프로그룹의 창투사 아이스퀘어벤처스가 20억 원을 투자했다. 올해 하반기 추가 투자 유치도 계획 중이다.

소울머티리얼은 한국재료연구원과 협업해 마그네시아의 전도성은 높이고, 무게는 더 가볍게 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후속 연구개발에서도 연구원의 고급 인력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원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기업의 장점이다.

소울머티리얼은 2025년이면 전기차에 쓰일 열계면소재용 방열 소재 시장이 9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량을 바탕으로 한 추산이다. 정 대표는 “전기차 배터리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에도 쓰일 수 있는 소재여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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