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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벚나무, 왕벚나무, 일본 왕벚나무…이것만 알면 구분할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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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제주 왕벚나무는 자연잡종, 일본 왕벚나무는 재배종

유전연구로 다른 부계 확인돼…논쟁은 안 끝나

100년 넘게 이어온 원산지 논란…국립수목원 추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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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화사하게 일제히 피어나는 왕벚나무는 종간 잡종으로 탄생했다. 한국과 일본의 왕벚나무는 모계는 같지만 부계는 다른 나무가 잡종을 이뤄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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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벚꽃을 피우는 나무를 뭉뚱그려 벚나무라 부른다. 그러나 꽃은 비슷해도 다 같은 벚나무가 아니다.

산에는 ‘벚나무’란 이름의 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의 야생 벚나무가 산다. 길거리와 공원에서 꽃구경의 대상인 벚나무도 ‘왕벚나무’ ‘일본 왕벚나무’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다르게 부르고, 한라산에 자생하는 벚나무 이름도 ‘왕벚나무’와 ‘제주왕벚나무’로 제각각이다. 헷갈리는 벚나무 이름의 배경에는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이 깔려 있다.

산에 사는 진짜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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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사는 벚나무. 야생종이다. 유태철,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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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보다 늦지만 산을 희끗희끗 물들이며 야생 벚나무도 곧 핀다. 낮은 산지에서 만나는 야생 벚나무는 주로 잔털벚나무와 벚나무이다. 산에서 만나는 벚나무를 보통 ‘산벚나무’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의 주인공은 정작 백두대간의 높은 산에만 산다. 꽃과 잎이 함께 나기 때문에 공원에서 보는 벚나무처럼 화사하지는 않다. 올벚나무는 남해안이나 제주도 산지에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벚나무 속에는 20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14종이 자생한다. 자생지 말고 제주 왕벚나무는 제주의 일부 가로수로 심은 것과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일본 왕벚나무와 맨눈으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본 왕벚나무는 겨울눈에 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데 견줘 제주 왕벚나무에는 털이 거의 없고 성기며 꽃받침 통이 항아리 모양으로 부풀지 않는 게 특징이다.

헷갈리는 ‘왕벚나무’



요즘 길거리와 공원을 장식하는 벚나무는 ‘왕벚나무’이다. 나무 이름을 안내하는 팻말에 대개 그렇게 적혀 있다. 나무를 좀 아는 이에게 물으면 ‘일본에서 개량한 소메이요시노 품종이며 그 기원은 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도의 우리나라 특산 벚나무 자생지에는 ‘왕벚나무 자생지’란 팻말이 서 있다. 그러나 산림청 국가표준 식물목록에는 일본산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의 국명을 ‘왕벚나무’로 자생 왕벚나무의 이름을 ‘제주왕벚나무’로 적고 있다.

장인이 만든 소메이요시노벚나무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이하 일본 왕벚나무)가 왕벚나무가 되기까지에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이 놓여있다. 먼저 일본 왕벚나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보자.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아직 모른다. 단지 에도시대(1603∼1868년)에 식목 장인들이 많이 살던 소메이 촌(현 도쿄도)에서 빨리 자라고 꽃이 크고 화려한 품종을 개발했고 이것이 전국에 퍼졌다. 현재 가장 오랜 일본 왕벚나무는 도쿄 코이시가와 식물원에 1877년 심은 개체로 150살로 추정된다. ‘소메이요시노벚나무’란 이름은 1900년 ‘일본원예학회지’에 처음 실렸다. 이듬해 국제학회지에 신종으로 발표했지만 원산지도 모르고 그저 야생 벚나무의 하나로 추정했다.

그러나 현재 정설은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오시마벚나무(왜벚나무)의 종간 잡종으로 만들어진 재배종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퍼졌지만 종자가 아니라 접붙이기 등으로 증식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클론이다.

한라산 왕벚나무와 ‘제주 기원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선교사였던 에밀 타케(1873~1952) 신부는 제주에서 다량의 식물과 씨앗을 채집해 유럽 등 여러 나라 식물원과 박물관에 보냈는데 1908년 한라산 관음사 일대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다. 이 표본을 받은 독일 베를린대 쾨네 교수는 1912년 이를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의 변종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타케 신부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포리 신부에게 제주 왕벚나무 표본을 일부 보냈는데 이를 본 일본 교토대 고이즈미 교수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와 같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일본에서 못 찾던 원산지가 조선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제주도를 현지조사해 1932년 제주에서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확인했다며 제주 왕벚나무의 변종 지위를 종으로 격상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의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제주에서 옮겨진 것이란 주장도 폈다. 왕벚나무의 ‘제주 기원설’은 일본이 학자가 먼저 제기했다. 고이즈미 교수는 일본 식물분류학계의 권위자이기도 했고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제주가 일본의 일부라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제주 기원설은 학계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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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처음 제주에서 왕벚나무 3그루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1962년 4월 19일 치 신문. 네이버 라이브러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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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전국에 심어진 벚나무는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져 수난을 당했지만 1960년대 들어 우리 손으로 제주에서 왕벚나무를 추가로 발견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동아일보’는 1962년 4월 19일 “왕벚나무 원산지는 제주도”란 제목의 기사에서 박만규 과학관장 등으로 이뤄진 식물자원조사대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3그루의 자생지 발견해 이런 결론 얻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발견은 이어져 현재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는 200여 그루에 이른다. 일제 유산이란 꺼림칙하던 느낌이 사라지면서 진해 등에는 베어냈던 벚나무를 다시 대대적으로 심기도 했다.

DNA 연구가 부른 새로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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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봉개동의 자생 왕벚나무. 국립수목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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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나무의 세부적인 형태뿐 아니라 디엔에이(DNA)를 분석하는 유전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소메이요시노벚나무가 올벚나무를 모계로 왜벚나무를 부계로 탄생한 잡종이란 사실도 이렇게 밝혀졌다. 2007년 미국 농무부의 한국인 연구자들은 한국과 일본 왕벚나무를 모두 채취해 연구한 결과 “두 종이 유전적으로 구별된 다”고 밝혔다. 김승철 성균관대 교수팀은 2014년 ‘미국 식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제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자연잡종으로 탄생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때 되면 한-일 원산지 논쟁, 벚꽃에게 물어봐!).

왕벚나무의 유전체를 처음으로 해독해 기원을 밝힌 연구도 나왔다. 국립수목원은 명지대·가천대 연구자와 함께 제주 왕벚나무는 물론 일본 도쿄대 부속 코이시가와 식물원의 왕벚나무 표본을 확보해 분석했다. 2018년 ‘게놈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완전한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란 결론을 내렸다(▶관련기사: 한·일 ‘벚꽃 원조’ 논란 끝? 제주 왕벚나무 ‘탄생의 비밀’ 확인). 이 연구에서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모계는 같은 올벚나무이지만 부계는 제주에서는 벚나무나 산벚나무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종인 왜벚나무로 밝혀졌다.

‘왕벚프로젝트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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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프로젝트 2050 회원들이 지난달 진해 군항제 예정지의 왕벚나무 수종을 조사하고 있다. 왕벚프로젝트 2050 제공.


일련의 연구 결과 한국과 일본의 왕벚나무가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자생종을 보급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지난해 결성된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 2050’(회장 신준환 동양대 교수)은 전국의 공원과 공공시설, 가로수 등에 일본 왕벚나무 대신 제주산 왕벚나무로 바꿔 심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신 회장은 “전국의 일본 왕벚나무를 당장 베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연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만큼 자생 왕벚나무로 교체해 나가자는 것”이라며 “국회, 현충원, 유적지, 군사시설 등에서부터 바꿔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가 지난달 진해 군항제를 앞두고 여좌천·경화역·중원서로 일대에서 조사한 결과 심어진 왕벚나무의 96%가 일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여의도의 벚나무 636그루를 모두 조사한 결과도 94%가 일본 왕벚나무였다. 왕벚프로젝트는 앞으로 군산, 경주, 구례, 부산, 영암, 제주, 하동 등 벚꽃 명소와 현충원, 왕릉, 유적지 등의 벚나무 수종을 연차적으로 조사해 나갈 예정이다.

끝나지 않은 원산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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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윤중로에는 해마다 많은 인파가 왕벚나무 꽃을 즐기러 모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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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립수목원의 연구가 논란을 종식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국정감사 등에서 ‘왕벚나무가 일본 원산이란 주장을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생물 주권을 넘겨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제주도의 반발도 컸다. 국립수목원의 연구에서 유전체를 분석한 제주 왕벚나무는 5그루였는데 그중 하나인 관음사 왕벚나무가 일본 왕벚나무와 유전체가 동일하다는 특이한 결과가 나온 것도 논란을 불렀다. 수령 130∼140년인 관음사 왕벚나무는 대표적인 제주 자생의 왕벚나무로 제주 향토유산 3호로 지정돼 있고 국립산림과학원이 후계목을 육성 보급하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학계 일부에서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제주가 유일하고, 일본 왕벚나무는 재배종이어서 다양한 요소가 섞여들어 갔을 것이기 때문에 제주 기원의 벚나무가 재료로 쓰였을 수도 있다’며 제주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국립수목원은 23일 “왕벚나무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3년 동안 추가로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와 제주도는 물론 한국산림과학회와 한국식물분류학회 등 학계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데 따른 조처이다. 최경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장은 “이번 연구에서는 제주는 물론 일본 현지조사와 인문·역사학적 연구도 할 예정”이라며 “제주 기원, 일본 기원, 제3국 기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왕벚나무의 기원을 둘러싼 의문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뿐 아니라 해남 등 전남의 왕벚나무 자생지도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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