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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찰나를 쌓는 KOVIS 기록원들 “더 풍부한 배구 만들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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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에 응한 안현혜(왼쪽), 최윤혜 KOVIS 기록원.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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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스포츠의 꽃이다. 치열했던 매 순간을 하나로 묶어 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배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5년 V리그 출범부터 모인 작은 기록들이 어느새 19년 역사가 됐다. 수많은 전설들의 업적과 가치는 찰나가 쌓인 기록 속에 살아 숨 쉰다. 그 숭고한 작업을 위해 최윤혜(45), 안현혜(41), 남지영(39) 기록원들은 언제나 매의 눈으로 코트를 바라본다.

◆코트 밖에서 펼쳐지는 전쟁

정확한 명칭은 코비스(KOVIS) 기록원이다. 코비스는 ‘Korea Volleyball Information System’의 약자로 리그 출범부터 구축해 온 체계적인 기록정보시스템을 의미한다.

총 28명 중 매 경기 7명이 배정된다. 개인 기록을 ‘호출’하는 3명과 그 ‘호출’을 전산에 입력하는 4명으로 분담해 코트를 둘러싸고 또 다른 전쟁을 펼친다.

남 기록원은 “호출은 누가 서브를 때렸고, 리시브를 받았고, 공격했는지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모두 담아 전하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그 ‘호출’을 전달받은 전산 기록원들이 곧바로 시스템에 입력한다. 그렇게 완성된 기록은 문자중계와 기록지에 차곡차곡 쌓인다.

매 랠리가 깨끗한 세팅 속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스피드도 엄청나다.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 전문지식도 필수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이 선수 출신이다. 인터뷰에 나선 3명 모두 고등학교까지 배구를 했다. 일부는 흥국생명, 한국도로공사에도 잠시 몸 담았다. 그러다 2005년 공식 기록원 모집 당시 은사, 선배들의 권유로 기록에 발을 들였다.

남 기록원은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배구에 대한 진심이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직업이다. 대부분 V리그 원년 혹은 2,3년 차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자 없이 꾸준했던 이유를 묻자 최 기록원은 “배구가 좋아서죠”라는 간결한 답변과 함께 웃었다.

◆순간포착의 고충, 기록원도 사람이다

네트를 두고 12명이 코트에 서 하나의 공을 바라본다. 어떤 상황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기록원들의 고충은 여기서 비롯된다. 특히 모두가 입을 모아 토로한 가장 높은 난도의 상황은 블로킹이었다.

최 기록원은 “블로킹이 되면 수비팀은 함께 환호한다. 실제로 두 명이 거의 동시에 맞을 때도 있다. 이러면 기록원 내 의견도 갈린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매뉴얼이 있지만 순간 결정이 힘들다. 특히 기록 시상이 걸리면 더욱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2020년 11월 18일 한국전력-KB손해보험전에서 나온 카일 러셀(당시 한전)의 트리플크라운을 잊을 수 없다. 기록 달성까지 블로킹 1개만 남은 5세트였다. 노우모리 케이타의 백어택이 러셀 팔을 맞고 높게 떴다. KB손보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공이었지만 서로 미루다가 공이 코트에 떨어졌다. 최 기록원은 “수비 범실에 가까운 걸 바로 블로킹 호출 해버렸다. 그러자 구장 전광판, 방송 중계에 트리플크라운이 다 떴다. 정정은 안 됐지만 이런 경우는 수비범실을 주자고 내부 피드백했다”고 실수 에피소드를 전했다.

경기가 끝나면 찾아오는 많은 선수들도 응대해야 한다. 대부분 ‘블로킹이나 리시브 정확(세터 1m 이내로 떨어지는 경우)을 왜 안 줬냐’는 불만이다. 안 기록원은 “선수들의 기록이 걸려있고 추후 연봉 협상에도 직결되는 문제다 보니 당연하다”며 “최대한 짜인 매뉴얼 속에서 선수들을 살리는 기록을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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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혜 KOVIS 기록원이 언급한 2020년 11월 18일, 카일 러셀(당시 한국전력)이 블로킹에 성공한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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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9년째,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이외에도 전산 및 통신 장비 고장, 경기 도중 선수들과의 충돌로 인한 외상 등 고충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 고된 마음을 달래주는 뿌듯함도 만만치 않다.

안 기록원은 “때때로 중·고등학교 경기나 대학 경기도 기록을 나간다. 그때 본 어린 선수들 혹은 수련 선수들이 프로에 온 걸 보면 내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대기록을 함께하는 순간도 이들에게 특별하다. 최 기록원은 “현대캐피탈 여오현 리베로와 동갑이고 같은 대전 출신인데, 올시즌 최초 600경기 금자탑을 쌓았다. 우리가 만들어온 기록이 쌓여 600경기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해 보니 정말 뿌듯하고 뭉클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가장 뿌듯한 때는 기록원으로서의 업무가 완벽하게 이뤄졌을 때다. 남 기록원은 “여자부는 메가 랠리가 나올 때가 한 번씩 있다. 그럴 때 정말 오차 없이 호출과 전산 입력이 이뤄져서 기록이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내 경기 실수 없이 마치는 게 최고”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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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혜(우측 첫 번째) KOVIS 기록원이 동료들과 함께 경기 기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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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의 진한 매력을 위해

새로운 기록 지표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많은 전술과 전략이 부딪히는 배구의 숨겨진 매력을 알리려면 눈에 보이는 기록으로 치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전산 입력 파트에 ‘위치’라 불리는 별개의 업무 분담자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경기 중 공격 및 서브가 이뤄지는 위치, 리시브 및 디그가 발생하는 위치를 체크한다. 그로 인해 각 팀의 주 공격 루트나 취약한 수비 위치 등을 수치로 분석하는 게 가능해진다. 팬들에겐 새로운 경기를 보는 새로운 시각도 제공한다.

디그, 세트에 엑셀런트(정확) 지표가 추가된 이유도 같다. 안 기록원은 “세터의 경우 좋은 공격수를 만나면 지표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디그도 일단 공을 건지면 모두 성공이다. 상대적으로 난도가 높은 디그를 성공했을 때를 별도로 기록해야 선수의 수비 능력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며 “이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엑셀런트라고 따로 부르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 모든 작업들에는 “팬들이 기록을 통해 배구의 풍부한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세 기록원은 입을 모아 “기록도 많이 찾아봐 주시고 배구장도 많이 찾아와 주시면 좋겠다. 앞으로도 배구를 많이 사랑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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