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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권역별 마약중독 집중치료기관 필요…추적조사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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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취한 대한민국]②

[스페셜리포트]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3년이면 모두 재범…‘암수범죄’ 마약, 검거로 해결 못해”

“치료 위한 공중보건시스템 투자해야”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10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정확한 현실파악과 대책이 추진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의 마약 치료·보호 관련 예산은 전혀 증액되지 않았다. 또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마약류대책협의회는 얼마의 예산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 중인지 명확지 않다. 범부처 차원이라고 해도 실무책임자들의 비상설 협의체 수준이니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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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 사용자 실태조사 및 마약사범 재범률 현황(그래픽=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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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공중보건시스템 투자로 해결해야”

마약의 불법적 유통과 판매는 강력히 처벌해야 하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 그 자체는 치료와 보호의 대상이다. 이는 마약이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어 당사자와 가족에게 돌이길 수 없는 상처를 만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약이 일부 범죄자들만이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이 인생의 언제쯤 심리적 위기를 맞았을 때 잡을 수 있는 선택지가 돼가고 있다면 이는 더욱 단속과 처벌로만 해결할 수 없다. 고교생 수십 명이 학교 안에서 합성오피오이드 진통제 패치를 긁어 흡입하고, 여중생이 소위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구해 아파트 계단에서 급성중독 상태로 병원에 실려오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사회에서도 마약이 누군가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됐단 것이다.

2009년과 2021년 마약류 사용자 실태조사 결과의 차이는 마약중독 문제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파고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일단 여성의 비율이 6.9%에서 22.6%로 늘었고, 2030세대의 비율은 27.7%에서 52.7%로 2배가량 증가했다. 학력은 대졸과 대학원 이상이 0%에서 20% 수준까지 늘었다. 2009년 ‘저학력, 빈곤층 중년 남성 필로폰 중독자’로 대표되던 한국의 마약중독자가 이젠 ‘중산층 이상의 고학력자와 여성’ 등으로 그 범위가 다양화·일반화됐음을 말해준다.

처음 적발돼 검거된 뒤 다시 재범하는 마약류 사범의 비율은 2021년 기준 36.6%에 이른다. 3년이면 한 해 검거한 모든 사람이 다 재발하는 셈이다. 잡아들인다고 절대 마약중독자의 수는 줄지 않는다. 더구나 암수범죄의 특성상 노출되지 않는 수십 배의 마약중독자들이 존재한다. 일시적인 마약압수와 검거 증가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이제 마약사용자가 줄었겠구나’라는 착시효과를 불러와 정책투자를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낸다.

마약중독은 뇌질환이고, 만성질환이다. 일단 한 번 사용한 사람은 지속적이고 자발적으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건 ‘마약중독은 치명적인 질병이고, 그렇기에 공중보건의 위기이며, 공중보건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통해 마약중독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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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지난해 6월부터 이달까지 서울 강남 일대 클럽·유흥업소와 주거지 등지에서 검거한 마약류 판매·투약 사범들로부터 압수한 마약류 물품(사진=서울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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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 치료, 12배의 비용절감 효과”

2016~2022년 4월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마약사범 9892명 중 156명만이 치료감호법에 의한 치료명령이 내려졌다. 국가에서 전액치료비를 지원하는 치료보호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2021년 280명뿐이었고, 이 안에서도 검찰이 의뢰한 경우는 연평균 10명이 채 안 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프로그램과 집행유예 수강명령 등은 치료프로그램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와 교육으로 마약중독자들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건 난센스다.

조건부 교육은 마약사범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평가하고 치료 정보를 제공해, 포괄·연속적인 의무치료프로그램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원, 법무부, 보건복지부가 협력체계를 만들고 이를 조정·지원하는 컨트롤타워로 ‘사법(의무)치료지원센터’ 등을 설치해야 한다. 미국처럼 ‘약물법원’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법원에서 마약사범의 치료를 확인하는 제도의 검토도 필요하다.

다만 공공·민간의료기관은 모두 위험부담이 높고 중증도가 높아 일반 정신질환에 비해 10배의 노력이 소모되는 마약중독환자에 대한 진료를 꺼릴 수밖에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헌신적으로 마약중독자를 돌보는 극소수의 민간의료기관 역시 결코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이참에 주요 민간의료기관을 권역별 마약중독 집중치료기관으로 위탁 지정해 획기적으로 지원하고, 위험부담 수가를 신설해 일반 정신의료기관도 접근성 높게 외래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기반의 상담재활서비스 확대를 위해 표준화된 프로그램과 인력양성체계를 만들어, 기존의 상담기관과 재활시설을 마약중독자 케어에 참여시켜야 한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는 약물 오남용의 해결을 위해 한해 2조 400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한다. 순수하게 마약중독과 연관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8억원이다.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다. 치료 중인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평가 및 코호트 추적조사 체계부터 만들어야 한다. 환자 등록 플랫폼을 순차적으로 법무병원, 수강명령대상자 등으로 확대해 마약중독자가 언제, 어떻게 마약을 사용하고, 어떤 문제를 겪고, 왜 재발하는지에 체계적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신종마약의 중독성, 유해성에 대한 기초연구, 약물치료, 상담치료, 의료기기치료, 디지털치료 등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위한 범부처 연구개발도 필요하다. 마약중독은 그 폐해가 큰 만큼 치료의 효과도 크다. 소요된 치료비 대비 12배의 비용절감 효과가 보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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