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朝鮮칼럼 The Column] 베트남·폴란드의 과거사에서 배우는 교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C 지도서 사라졌던 폴란드, 800만명 숨진 베트남… 현재 두 나라의 발전을 보라

가장 위대한 과거사 극복은 부국강병과 경제발전… 잊지 않되, 실력 키워야

극소수 강대국을 제외한 현존하는 국가 대부분은 외세 침략과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를 겪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제국주의 시대엔 더욱 그랬다.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중동에서 극동에 이르는 아시아 대륙 전체에 온전한 독립국은 일본과 태국 두 나라뿐이었다. 당시엔 국가의 무력행사가 합법적 주권행위로 간주되었고, 어떤 국제법도 무력을 통한 영토 합병이나 식민 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법화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조선일보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판 반 장 베트남 국방부 장관이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3.3.28/국방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시기 가장 처절한 고난의 역사를 겪은 나라는 단연 아시아의 베트남과 유럽의 폴란드였다. 베트남은 1883년 프랑스 식민 통치, 1940년 일본군 진주, 1950년 대프랑스 독립전쟁, 10년간의 대미 전쟁 등으로 전체 국민의 10%인 800만 명을 잃었다.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전 국토가 분할돼 123년간 지도에서 사라졌다가 1918년 독립을 회복했다. 그 후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에 의해 다시 분할 합병되었다가 1945년 회생했는데, 그 6년간 유대계 300만 포함, 560만 국민이 나치 독일 손에 목숨을 잃었고, 군장교, 경찰, 지식인 등 지도층 인사 2만2000명이 소련군에게 집단 학살되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는 “과거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는 유럽의 오랜 격언과도 일맥상통한다. 과거 역사를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 간 관계에 있어 그런 역사의 교훈은 주로 미래의 도전과 재앙에 대비한 부국강병, 즉 부유한 나라와 강력한 군사력의 건설을 의미한다. 과거의 역사적 원한을 잊지 말고 길이 기억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조선일보

폴란드, 독일 전차 우크라에 첫 인도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인 지난 24일(현지 시각) 데니스 슈미할(왼쪽에서 둘째) 우크라이나 총리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왼쪽에서 셋째·뒷모습) 폴란드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독일제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 앞에서 전차 운용 요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날 서방 국가 중 처음으로 레오파르트2 전차 4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며“가능한 한 빨리 러시아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과거의 모든 가해국을 향해 “과거를 덮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경제 발전을 통한 부국강병이 최우선 국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의혹’에 대한 공동 조사와 보상 용의를 전달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일체의 논의에 반대한다”며 이를 즉각 거부했다. 과거 두 차례 국가 소멸을 겪었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냉전 종식 후 가장 먼저 NATO에 가입해 민족의 오랜 숙적인 독일과 안보 협력을 강화해 왔고,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악몽으로 대대적 군비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

임진왜란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려던 영의정 류성룡의 징비록과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치욕적 역사를 덮으려던 조선에서 곧 잊혀졌지만, 일본은 수백년간 이들을 연구해 전쟁의 교훈을 되새겼다. 1905년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출전에 앞서 이순신에게 승전기원제를 올렸고, 승전 후 축하연에서 자신은 이순신에 비하면 하사관만도 못한 존재라 말한 것으로 일본 사료는 전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조선은 왜란을 겪은 후에도 아무 대책 없이 친명사대와 당파싸움에만 몰두하다 30년 만에 다시 정묘, 병자호란을 맞았고, 그러고도 다시 대책 없이 19세기 말 제국주의 침공을 맞아 무너졌다.

식민 지배 종식 후 80년이나 지난 현재도 한국에선 그 시절에 대한 추가 사과‧보상 요구가 큰 화두다. 그러나 우리보다 더 참혹한 과거사를 겪은 나라도 다들 미래를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만 홀로 과거사에 매몰돼 살 수는 없다. 케냐, 인도네시아, 나미비아 등도 식민 지배국에 사과‧보상을 요구했다 하나, 이는 특정 대량 학살 사건에 국한된 요구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굳이 과거사 논의를 계속하려면 남침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중국과의 과거사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 시대 역사로부터 배울 교훈은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게 부국강병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일제 36년의 기억은 지워질 수 없지만, 그것이 미래의 안보와 번영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양국이 과거사를 넘어 미래로 나갈 구체적 길을 제시한 용기 있는 정치적 결단이었다. 한일 관계가 가야 할 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명확하다. 단지 과거사의 강을 건너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