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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탁탁 발로 바닥을 차야 쿵쿵 심장이 뛰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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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댄서 박지혜·손윤·김경민

내달 5일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 개막작 공연

‘여성만의 공연 만들자’…기획·연출·출연 맡아

“목소리 다 다르듯 발소리도 달라”

경향신문

여성 탭댄서 김경민, 손윤, 박지혜(왼쪽부터)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탭댄스를 연습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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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탭댄서 김경민, 손윤, 박지혜(왼쪽부터)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탭댄스 연습을 마친 뒤 웃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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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슈즈가 달그락거리며 쉼 없이 무대 위를 굴렀다. 앞굽과 뒷굽이 들썩이며 바닥을 차고, 쓸고, 두드렸다. 심장이 쿵쿵, 박동수를 서서히 높여갔다.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춤추는 세 여자의 이마에 땀이 방울져 흘렀다. 이들은 박자를 쉴 때면 힘껏 박수를 치거나 ‘헤이’ 소리를 질러 흥을 올렸다. 팔짱을 끼고 춤을 지켜보던 기자도 어느새 덩달아 발을 탁탁, 굴렀다. 무대에서 내려온 박지혜(33)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탭댄스는 가장 원초적인 춤이죠. 사람이 리듬에 반응해 발을 구르는 본능에서 나왔거든요.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어요.”

“여자만의 힘을 보여주자!”




탭댄서 박지혜, 손윤(31), 김경민(34)을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나 연습 무대를 지켜봤다. 이들은 다음달 5~9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5회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인 <더 셰이프 오브 심벌(The Shape of SYMBOL)>의 기획, 연출, 출연을 모두 맡았다. 지난해 겨울 “여성들만의 공연을 만들어 보자”고 도원결의를 맺었다. ‘탭신’에서 소수인 여성 탭댄서는 선배 남성 탭댄서들이 주도하는 공연에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경민은 동생들과 함께 “여자만의 힘을 보여주자!”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성 탭댄서라면 모두 여성들끼리 서는 무대 생각은 있었을 거예요. 지금까지는 주로 선배 오빠들과 비슷한 구성의 무대를 올려왔거든요. 이번에는 저희만의 이야기와 색깔을 보여주고 싶어요.”

세 여성 탭댄서는 스스로 ‘더 셰이프 오브 심벌’의 주인공이 됐다.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심벌인 페도라 모자(김경민), 한국 전통 문양(박지혜), 마이크(손윤)를 뽑았다. 공연은 1~3부로 구성해 세상에 태어나 현실에 좌절하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탭댄스로 표현한다. 재즈, 일렉트로닉, 국악, 뮤지컬 넘버, 클래식에 맞춰 춤춘다. 다른 여성 탭댄서뿐 아니라 비걸, 한국무용수, 왁킹댄서가 협연한다. 박지혜는 “탭댄스는 어떤 음악에 맞춰 춤추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탭댄스는 어떤 음악이든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도 ‘탭’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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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탭댄서 김경민, 손윤, 박지혜(왼쪽부터)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탭댄스를 연습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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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혜는 12년차, 손윤은 8년차, 김경민은 10년차 ‘프로 탭댄서’다. 경북 상주에 살던 김경민은 고교 3학년 때 서울 나들이를 왔다 우연히 탭댄스를 보고 푹 빠졌다. 곧바로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탭댄스 학원을 다녔다. 그로부터 10년, 어머니가 ‘연중무휴’로 운영해왔던 상주 롤러장을 하루 닫고 딸의 이번 공연을 보러 온다. “탭댄서라면 누구나 가족이 반대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4대 보험’이 되는 안정적인 직업이 부모님 바람이지 않을까요. 부모님께 ‘5년만 시간을 달라’ ‘10년만 시간을 달라’ ‘조금 더 달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죠. 그런데 제가 무대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시고선 되게 미안해하시더라고요. 그 미안함이 응원이 됐어요.”

2020년 갑자기 닥친 코로나19 대유행은 달력을 빽빽하게 채웠던 공연 일정을 모두 지워 버렸다. 많은 탭댄서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탭신을 떠났다. 박지혜도 2021년 한 골프용품회사에 사무직으로 취업했지만 탭댄스를 잊을 수 없었다. 우울감에 건강이 나빠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무대에 섰을 땐 비로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얘는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지금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좋아하세요.”

손윤은 약 3년을 여러 아르바이트로 버티며 공연할 날을 간절하게 기다려왔다. 그는 “그동안 친구들이 많이 응원하고 도움을 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공연을 못하니까 진짜 알겠더라고요. 나는 탭댄스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이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만두면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서 더욱 이를 악물었던 것 같아요.”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도 춤을 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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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탭댄서 김경민, 박지혜, 손윤(왼쪽부터)이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탭댄스를 연습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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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탭댄스 강사로 활동하는 수업에는 설거지를 끝내고 아침 탭댄스를 추는 ‘아줌마’ 수강생, 퇴근해 저녁 탭댄스를 추는 ‘아저씨’ 수강생이 많다. 박지혜가 2013년 한 마을 문화센터에서 처음 만나 10년 동안 가르친 ‘할아버지’ 수강생도 있다. 일흔아홉 나이의 수강생은 박지혜와 함께 다음달 8일 <오버텐 탭댄스 콘서트>에 사제지간 듀오로 출연할 예정이다. “제가 ‘아버지’라고 불러요. 제가 회사에 취업해 수업을 닫을 때도 ‘아버지’가 자긴 탭댄스를 그만둘 수 없다면서 말렸어요. 팔순 때 손녀와 탭댄스를 추는 것이 목표라고 하시죠.”

하지만 탭댄스는 아직도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춤이다. 다른 춤은 어디서든 출 수 있지만 탭댄스를 추려면 밑창에 징이 박힌 탭슈즈와 목재 플로어가 필수다. 방송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로 여성 댄서들이 큰 관심을 받을 때 탭댄서로서 아쉬움도 느꼈다. 손윤은 “탭댄스는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방송 연출이 어려워 아쉽다”며 “탭댄서에게도 ‘스우파’ 같은 기회가 있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경민은 “탭댄스의 매력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발소리도 다르다”고 말했다. “탭댄스는 가장 기본 스텝으로도 내 안의 리듬을 표현할 수 있어요. 음악과 탭과 내가 하나가 됐다고 느낄 때 몸이 아주 행복해하더라고요.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조금 더 명확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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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탭댄서 박지혜, 손윤, 김경민(왼쪽부터)이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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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 포스터.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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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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