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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비정규군 5형제·부부 첩보원…6·25전쟁의 ‘군번없는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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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P]
국방부, 6·25전쟁 비정규군 보상 시행 1년
‘이름없는 영웅들’ 1792명 발굴해 공로금


매일경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등장한 6.25전쟁때 켈로부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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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참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5형제와 부부, 어머니와 아들 등 한국 현대사의 갈피에서 잠들어 있던 ‘군번없는 영웅’들의 사연이 30일 새롭게 조명됐다.

이날 국방부는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가 지난 1년 간 조사·발굴한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앞서 정부는 6·25전쟁 당시 켈로부대(KLO·미 극동군사령부 한국연락처)와 미 8240부대(주한 유엔군 유격부대) 등에 소속돼 적 지역에 침투, 첩보수집 등에 기여했던 민간인들의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관련법을 제정한 바 있다.

나라 위해 온몸 던진 李씨 5형제
이들 가운데에는 한 집안 5형제가 모두 비정규군으로 활동하며 6·25전쟁의 물줄기를 바꿨던 이영걸 씨 가족의 사례도 있었다.

이 씨 형제들은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미군 8240부대 예하 울팩부대에 입대했다. 이 부대는 강화도 교동도에 사령부를 두고 옹진반도 동·남쪽에서 한강 어귀와 인천 앞바다를 관할했다.

형제들은 비군인 신분으로 적 지역인 황해도 일대에서 비정규전을 수행했다. 첫째인 고 이영일 씨는 작전관으로, 차남인 고 이영이 씨는 대대장으로, 셋째인 이영걸 씨는 통역 및 유격대원으로 각각 복무했다. 넷째인 고 이영우 씨와 막내인 이영익 씨도 유격대원으로 개성 수복에 몸을 던졌다.

특히 둘째인 고 이영이 씨는 울팩1부대 대대장을 맡아 1951년 개성탈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는 등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정식 육군 장교로 임관해 국가 방위에 앞장섰다.

셋째인 이영걸 씨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형님들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조국을 위해 수많은 유격전을 펼치고 고향을 수복하고자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먼저 고인이 되신 형님과 동생이 자랑스럽고 그립다”며 감회를 밝혔다.

‘인천으로 가는 등대’ 밝힌 부부 첩보원
이날 국방부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실제 모델인 켈로부대원 부부의 사례도 밝혔다. 6·25전쟁의 분수령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팔미도 탈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남편 고 이철 씨와 아내 고 최상렬 씨의 애국정신도 재평가됐다.

팔미도 탈환작전은 연합상륙부대가 인천항으로 들어오기 위해 길목인 팔미도를 되찾고 등대에 불을 밝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남편인 이철 씨는 팔미도 탈환작전의 핵심요원으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등장한 켈로부대원 서진철(배우 정준호 분)의 모티프가 됐다. 그는 6·25전쟁 초기 서울과 인천 지역의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서울에 잡입해 훗날 부부의 연을 맺은 최상렬 씨의 집 지하실에 첩보기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들은 인민군이나 피난민 부부로 위장해 서울 일대 북한군 사령부 동향과 병력 배치 등 중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또 1951년 11월 결혼해 첩보원 부부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포로로 잡힌 첩보원 어머니따라 전선에 선 아들
적진 한복판에서 활약한 모자(母子) 전투대원의 희생도 보상심의위 활동을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 켈로부대원이었던 고 박정숙 씨는 6·25전쟁이 나기 전부터 첩보원으로 활동했고, 주로 피난민이나 행상 등으로 위장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닷새 전에 적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갖고 있던 북한군 첩보 보고서가 발각돼 포로로 잡혔고, 이후 생사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박 씨의 아들인 고 윤종상 씨는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어머니의 길을 따라 미 8240부대 예하 울팩 2부대에 입대했다. 윤 씨는 황해도 연백군 봉화리 전투와 경원선 철로 파괴 등 다수의 유격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윤 씨의 아들인 윤철 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 소식을 들으셨으면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와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고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보상심의위는 지난 1년 간 14차례에 걸친 심의를 통해 1792명을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로 인정하고 본인과 유족에게 총 176억 원의 공로금 지급을 결정했다.

국방부는 법률상 비정규군 공로금 신청 기한이 오는 10월 16일로 끝나는 만큼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치며 공로자들을 찾아 나섰다. 임천영 보상심의위원장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헌신한 비정규군 공로자들을 한 분이라도 더 찾고 공로를 인정받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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