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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무인도에 표류하면 미키 마우스를 그려라...돌아온 밥의 결정은? [류현정의 아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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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우스는 콘텐츠 왕국의 뿌리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밥 아이거

스트리밍 사업 결정에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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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와 테크놀로지는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테크놀러지 전문 기자가 현대 스토리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짚어드립니다.

“내 모든 것이 꿈과 생쥐 한 마리로 시작했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

세계 최대 콘텐츠 왕국을 건설한 월트 디즈니가 1954년 10월 27일 디즈니랜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말입니다. 생쥐 한 마리는 1928년 월트 디즈니와 그의 형 로이 디즈니가 온갖 수고 끝에 탄생시킨 생쥐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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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컴퍼니의 창업자 월트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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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우스가 처음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증기선 윌리’가 극장에 상영된 첫 3주 동안 디즈니에는 3만여 통의 팬레터가 왔다고 합니다. 곧 인형, 칫솔 등 수백 가지 미키 마우스 상품이 쏟아져 미국은 어디 가나 미키 마우스 천지가 되었습니다.

1978년 미키 마우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정됐고 2018년엔 미키 마우스의 여자 친구 ‘미니 마우스’도 같은 거리에 입성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로 출발한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영화, 음악, 드라마, 뮤지컬, 스포츠,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시가총액 200조원이 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되었습니다. 과연 생쥐 한 마리에서 위대한 신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미국 저작권법 역시 이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키 마우스 첫 출연작(증기선 윌리)의 저작권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 디즈니는 어김없이 저작권법 개정을 위한 로비전에 나섰습니다. 디즈니의 빛나는 로비 덕분에 미국의 저작물 보호 기간이 최대 120년까지 늘어났고 미국 저작권법은 ‘미키 마우스 보호법’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미키 마우스 저작권과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디즈니+)’라는 다소 이질적인 소재를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세계 최대 콘텐츠 왕국의 뿌리인 미키 마우스를 알면 디즈니의 전략적 향배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무인도에 표류하면 미키 마우스를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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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4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제96회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서 미키 마우스가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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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무인도에 표류한 당신, 탈출 방법은?

답변 : 모래사장에 미키 마우스를 그려라. 디즈니가 당신이 어디 있든지 찾아서 끌고 갈 것이다.

디즈니의 저작권 관련 사건사고를 찾아보니,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말을 우스갯말로 치부할 수 없겠더라고요. 1989년 미국 플로리다의 한 보육원 교사가 보육원 담벼락에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구피 등의 디즈니 캐릭터들을 그렸는데, 디즈니가 한 달 안에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저작권 위반 벌금(fine) 통지서도 발부했습니다. 당시 디즈니 대변인은 “(캐릭터를 삭제하지 않으면) 해당 보육원이 디즈니의 후원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도 곤욕을 치렀습니다. 백설 공주 캐릭터가 등장해 다양한 영화를 패러디한 시상식의 오프닝 공연이 문제였습니다. 디즈니의 허락 없이 디즈니 캐릭터를 사용했다면, 제아무리 오스카 수상자를 결정하는 권력 집단이라도 디즈니는 소송을 불사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 아버지 모임은 조촐한 모금 행사를 열었다가 디즈니의 라이선스 대행사의 레이더망에 딱 걸렸습니다. 디즈니 영화 ‘라이온 킹’을 DVD로 같이 본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고작 800달러 모금 행사에 250달러의 벌금 통지서가 날아들었습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의 지독한 요금 징수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밥 아이거 CEO는 트위터를 통해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 최대 120년 동안 저작권 보호를 부여받기까지

미국 저작권법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미키 마우스가 세상에 나온 1928년만해도 미국 저작물은 최대 56년 동안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 미키 마우스 애니메이션(증기선 윌리) 저작권은 1984년에 만료될 예정이었지요. 하지만, 디즈니는 저작권 연장을 위한 로비에 착수했고 미 저작권법은 1976년 전면적으로 개정돼 저작권 보호 기간이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보호 기간도 2003년까지 연장됐습니다.

1998년엔 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저작자 사후 70년 또는 최대 120년으로 또 늘어납니다. 디즈니의 초기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2000년대 초반 잇따라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자, 디즈니가 다시 한번 로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1998년 개정된 저작권법의 별명이 ‘미키 마우스 보호법’입니다(정식 명칭은 ‘소니 보노 저작권 기간 연장법’).

정치인이 디즈니에 으름장을 놓는 수단에도 곧잘 저작권 이슈가 포함됩니다. 2022년 공화당이 장악한 플로리다 주 의회에서 공립학교에서 동성애 등 성적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는데, 밥 체이펙 당시 디즈니 최고경영자(CEO)가 직원들의 요구에 못 이겨 해당 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정치 자금 기부도 중단하겠다는 디즈니의 방침에 격분한 플로리다 주의회 공화당 의원들은 디즈니 월드리조트에 대한 각종 세금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처리했습니다. 조시 호리(Josh Hawley) 상원 의원은 한술 더떠 저작권 보호 기간을 56년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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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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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는 스트리밍으로 돈을 얼마나 잃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디즈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난해 3분기 디즈니는 스트리밍 사업에서만 무려 15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지난해 11월 밥 체이콕 CEO가 실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2020년 퇴진한 밥 아이거가 전격 복귀한 이유입니다. 아이거는 픽사(2006년), 마블(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스타워즈 제작사), 21세기 폭스(2019년)를 차례로 인수하며 애니메이션 제작사였던 디즈니를 일약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뉴 밥’이 퇴진하고 ‘올드 밥’이 복귀한 후에도 디즈니의 스트리밍 사업부는 계속 고전 중입니다. 지난 3월 8일(현지 시간)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디즈니+ 구독자 수는 3분기보다 약 240만명이나 줄어든 1억6180만 명이었습니다. 구독자 수 자체가 감소한 것은 2019년 디즈니+ 출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디즈니가 인도 크리켓 프로 리그인 ‘인도 프리미어 리그(IPL)’의 스트리밍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가 지난해 12월 북미에서 광고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광고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월 구독료를 7.99달러에서 10.99달러로 올린 탓입니다. 디즈니는 2019년 11월 디즈니+를 출시한 이후 스트리밍 사업에서만 총 97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 중입니다. 출혈 경쟁 때문에 콘텐츠 생산에 드는 비용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미국 상위 8개 미디어 기업이 1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OTT 사업에 퍼부었지만, 인기 콘텐츠만 골라 보고 서비스를 해지하는 ‘메뚜기’ 구독자 탓에 남는 게 없다는 애널리스트들의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

◇ 3가지 중대 의사 결정에 모두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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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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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아이거는 디즈니 스트리밍 사업부의 대규모 손실을 해결할 구원 투수로 재등판했습니다.

디즈니 직원 7000명을 줄이는 구조조정이 끝나면 아이거는 3가지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첫째, 스트리밍 서비스용 콘텐츠 제작이나 중계권 확보를 위한 투자를 줄일 것인가? 둘째,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도 디즈니 오리지널 콘텐츠를 팔 것인가? 셋째, 디즈니가 보유한 또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훌루(Hulu)의 지분을 정리할 것인가? 입니다.

현재 밥 아이거의 답은 모두 ‘예스(Yes)’입니다. 자체 스트리밍 사업을 축소하려는 시그널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디즈니 사업부는 영화, TV, 스트리밍을 포괄하는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스포츠에 중점을 둔 ESPN사업부, 디즈니 파크 및 제품 등 3개 부문으로 재편됩니다. 기존에 별도 부문이었던 스트리밍 사업 부문이 영화,TV 부문과 합쳐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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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매장에서 픽사 애니메이션 '라이트이어(Lightyear)' 캐릭터 상품을 팔고 있다./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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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해 2월 디즈니는 독점 브랜드인 스타워즈, 마블, 픽사와 디즈니 등과 관련 없는 성인용 쇼와 일반 예능 콘텐츠 등 제작을 줄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콘텐츠 제작 예산도 30억 달러 이상 삭감했습니다. 디즈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3자에게 라이선싱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이거가 디즈니가 최대 주주로 있는 스트리밍 회사 훌루의 지분도 팔아버릴 수 있습니다. 훌루는 월트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21세기 폭스), 컴캐스트, 타임워너 등이 공동 투자한 스트리밍 회사인데, 현재는 디즈니가 지분 67%, 컴캐스트가 33%를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디즈니가 나머지 지분 33%도 매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았는데, 아이거는 오히려 67%를 컴캐스트 등에 넘길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아이거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은 테이블 위(on the table)에 있다”면서 훌루 지분 매각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 미키 마우스가 말해주는 디즈니 왕국의 본래 속성

디즈니는 세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대규모 캐릭터 사업을 벌인 업체일 것입니다. 1932년 디즈니는 월트 디즈니 엔터프라이즈라는 부서를 신설하고 캐릭터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는데, 이듬해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 판권으로 벌어들인 돈은 극장 개봉 수익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이같은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디즈니는 라이선스 상품 판매로만 연간 수십조원을 벌어들입니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2021년 디즈니는 전 세계에 562억 달러어치의 라이선스 상품을 판매해 라이선스 상품 판매 수익 1위 업체로 집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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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30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월트 디즈니 월드에서 열린 "환상의 축제" 에 사람들이 매직 킹덤 테마파크에 모이고 있다./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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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테마파크 사업도 처음 개척했습니다. 1955년 개장한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를 필두로 플로리다 올랜도의 ‘월트 디즈니 월드’, 일본의 ‘도쿄 디즈니랜드’, 프랑스의 ‘디즈니랜드 파리’, 홍콩의 ‘홍콩 디즈니 랜드’, 중국의 ‘상하이 디즈니 랜드’ 등 6개의 테마파크를 운영 중입니다. 디즈니랜드야말로 저작권 사업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즈니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만든 환상의 세계에 푹 빠지도록 건물부터 놀이 프로그램 및 상품 판매까지 정교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이후 테마파크는 디즈니 실적을 떠받치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보면, 테마파크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6%나 늘어난 87.4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스트리밍 사업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아이거의 속내는 결국 디즈니 왕국의 본래 속성과 맞닿아 있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디즈니는 본래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한 회사이고 이 때문에 저작권 보호에 목숨을 건 회사가 되었습니다. IP 가치 극대화에 집중하고 다른 사업은 경영 여건에 따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아온 밥(밥 아이거)’이 떠날 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증기선 윌리에 나오는 미키 마우스는 2024년 독점 저작권이 만료됩니다. (아직 디즈니의 강력한 저작권 연장 로비 소식이 들리지 않네요!) 유튜브에 올라온 증기선 윌리를 감상하시면서 공공 자산이 될 미키 마우스 활용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셔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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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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