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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SPO ISSUE]변방 한국 출신 중앙 수비수라는 짐을 진 김민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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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현 울산 현대 감독)은 사석에서 선수 관리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일이 있다.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기로 유명한 홍 감독이 선수 관리가 어렵다니, 이해되지 않아 물어보니 세대가 변하고 대표팀에서 유럽파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되는 고민이었다. K리그나 일본, 중국 리그는 춘추제지만, 유럽이나 중동 리그는 추춘제로 운영되기에 상호 호환이 이뤄지기 쉽지 않았다. 선수들의 몸 관리부터 배워오는 문화 자체가 달라 자율성 부여까지 하나하나 예민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홍 감독만의 것은 아니었다. 대표팀을 맡은 국내 감독이라면 또는 K리그를 경험한 감독이라면 충분히 겪는 문제다. 대표팀 중심 선수가 유럽파고 그들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면 더 그렇다.

반대로 유럽은 다른 문제로 대표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스페인은 2010년대 최강팀으로 올라섰지만, 이전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양대 구도로 팀 융화가 쉽지 않았다. 특히 분리독립을 원하는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의 특수성까지 더해져 더욱 어려웠다.

독일은 또 어떤가. 한때 분데스리가 최강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대표팀을 거의 휩쓸면서 뮌헨 대 비뮌헨 구도가 명확해 역시 시너지 내기가 쉽지 않은 팀이었다. 전차군단으로 톱니바퀴처럼 굴러갔지만, 그 안에서 치열한 노선 투쟁이 이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재 대표팀은 다양한 상황이 섞여 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의 능력치가 크게 향상되고 1~2명이 아니라 다수가 활약하면서 이들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리그를 소화하면서 더 좋은 리그로 발전해 나가며 자신의 능력치를 키워가는 것도 그렇다. 자극받아 유럽행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대표팀 은퇴 가능성을 내비친 김민재(나폴리)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 김민재는 이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박지성(은퇴)이나 현재 유럽파의 핵심이자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토트넘 홋스퍼)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유럽 5대 리그 진입 첫 시즌만에 겪고 있다.

나폴리는 올 시즌 세리에A 우승 후보로 꼽히지 않았다. 핵심 수비수 칼리두 쿨리발리가 첼시로 떠나는 등 재정비 시즌이었다. 그러나 최전방의 빅터 오시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가 연일 골을 넣어주고 김민재가 초반 불안을 딛고 '철기둥'으로 굳건하게 수비를 해주면서 압도적인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까지 올라 AC밀란(이탈리아)을 이긴다면 4강 진출도 가능하다.

역대 최고 한국인 빅리거 계보를 잇는 박지성, 손흥민도 5대 리그 첫 시즌에는 이런 성적을 내지 못했거나 팀이 냈어도 기여도를 따지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김민재는 단 한 시즌 만에 유럽 중급리그는 튀르키예 슈페르리가 명문 페네르바체에서 나폴리로 점프했다

동양인으로 경기마다 검증받는 부담에 대표팀에서는 핵심으로 뛰면서 여러 심리적 압박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카타르 월드컵 당시 선수단 파악에 능통했던 관계자는 "김민재는 유럽 유일 중앙 수비수다. 지금은 박지수(포르티모넨세)가 있으나 공격, 미드필더와 달리 유럽에서 뛰는 수비수는 적으니까 자신이 잘해서 생존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겉으로는 늘 웃고 당당하게 지냈고 분위기메이커였지만, 속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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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월드컵 기간 김민재는 우루과이전에서 다르윈 누녜스(리버풀)를 막다가 종아리 부상을 당했고 압박 붕대를 감고 가나전을 뛰는 희생을 감수했다. 당시 대표팀 관계자가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가나전에 내세우면 16강에 가도 활용하기 어렵다"라며 결장을 원했고 이를 수긍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민재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승선 직전 낙마했던 기억이 있어 카타르에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뛰겠다며 출전 강행을 벤투 감독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의학적 상황으로 출전이 어려웠던 것을 모르지 않았던 벤투 감독이 경기 전날 김민재의 상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던 이유다. 결국 우루과이전 출전을 하지 못했고 16강에 가면서 자신을 던져서라도 브라질전에 나서겠다는 출사표가 나왔다.

현재 대표팀에서 김민재는 중간층이 됐다. 위의 선참인 김영권(울산 현대)이나 주장 손흥민은 박지성, 이영표 등 과거 수동적인 축구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선배들과 축구했던 사실상 마지막 세대다. 반면, 김민재를 비롯해 황희찬(울버햄턴), 황인범(올림피아코스) 등은 자율 속 규율을 이어간다. 그 아래 이강인(마요르카), 오현규(셀틱) 등은 선배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성장하는 세대다.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세대의 중심이자 축구 중에도 상대적으로 덜 빛나는 수비수라는 점에서 김민재가 갖는 부담의 하중은 만만치 않다. 특히 나폴리 입성 한 시즌 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등 명문 구단 이적설이 밖에서야 좋아 보여도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소문이기 때문이다.

페네르바체에서 한 시즌만 뛰고 나폴리로 왔는데 또 한 시즌만 소화하고 움직이는 것은 김민재에게도 큰 부담이라 그렇다. 대표팀 소집 중 이적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이유다. 나폴리 경기를 생중계 하는 스포티비 나우(SPOTV NOW) 실시간 채팅만 봐도 무결점 수비로 승리를 이끌면 "우리 민재 꼭 맨유 가게 해주세요"라던가 "리버풀 빨간 유니폼 입자"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금 역대급 중앙 수비수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반응이다.

한국 대표팀은 분명 다른 국가 대표팀과 달리 장거리 이동이 많은 특수성이 있다. 일본처럼 유럽에 베이스캠프가 있어서 종종 관리받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A매치 차출이 아니라 일반 평가전에서는 상황과 시기에 따라 발굴이 필요한 포지션 유망주를 뽑아 실험하고 월드컵 예선 등 비중이 큰 경기에는 완전체로 구성하는 유연함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대표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도 비중이 떨어지는 A매치에는 빠진 사례도 있다.

유럽 각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구단의 중요 상품으로 프리시즌부터 장거리 이동을 하며 구단의 수익 극대화의 중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K리그도 똑같이 적용된다. 중동을 오가는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참가 등 일이 많다. 피로도로 선수 가치가 떨어지면 선수층이 두껍지 않은 대표팀에도 손해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고 32강부터 녹아웃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체력 안배와 더불어 다양한 선수 활용으로 극복하며 더 높은 곳으로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거운 짐을 진 선수를 무조건 차출해 활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김민재는 자신의 발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과문으로 진화했다. 고민을 털어 놓고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올린 사과문이다. '국가대표'라는 책임감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밖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국 사회 문화에서 용기가 필요하다. 속마음을 표현하며 고민을 공유한 김민재를 대한축구협회도 밀접 관리를 해야 한다.

동시에 클린스만 감독에게 짐을 다 지게 할 이유도 없다. 이번에도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유럽에 가서 면담하며 선수의 심리를 만질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심리상담사 한 명 고용하기가 그렇게 어려운지, 16강에 갔어도 한국 축구 행정은 여전히 선수 한 명 제대로 관리 못 해주는 험난한 수준이다. 소집마다 적어도 시원하게 비밀을 지키며 고해성사라도 할 심리 전문가가 있었다면 김민재의 돌발 발언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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