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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일흔 노인 보는 앞에서 손주부터 하나씩…” 6.25때 학살된 교인 131명 추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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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진실화해위, 6·25 종교인 희생…

박명수 교수팀 2차 조사보고서

조선일보

논산=김기철기자 논산 병촌교회 마당에 세운 '66인 순교기념비'(왼쪽).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9월27일과 28일, 지방 좌익들에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등으로 학살당한 신자 66명 명단을 새겼다. 이중엔 영유아 9명과 주일학교생 22명 등 어린이가 31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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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성동면 우곤감리교회는 올해 창립 105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교회다. 이 교회 원로 장로 김상옥(89)씨는 73년 전 그날의 비명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김씨는 1950년 9월 말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같은 교회 신자이자 동네 주민인 ‘바라구’ 김씨 일가 32명이 학살당하는 현장 근처에 있었다. 좌익 동태가 수상하다는 친척 귀띔을 받고 집에 문을 잠근 채, 숨어있던 중이었다. 그는 “일흔 전후의 김씨 어른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주부터 차례로 때려죽였다는데, 밤새도록 울리는 비명을 들으며 이것이 지옥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라구’ 김씨는 이 마을에서 자수성가한 농부로 ‘논밭이 바라구(한해살이풀)처럼 늘어났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김씨 일가는 아들 5명과 딸 2명에 손주까지 30 명이 넘는 대가족으로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조선일보

◇'바라구’김씨 일가 32명 몰살당해

6.25 당시 인민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남한에서 학살한 기독교인만 최소 1157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팀이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의뢰를 받아 지난달 말 제출한 ‘6.25전쟁 전후 적대 세력에 의한 기독교 등 종교인 희생 사건 조사’다. 본지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박 교수팀이 2022년 초 제출한 1차 조사 때 밝힌 기독교인 희생자 1026명(천주교인 119명 포함 총 1145명)에 131명이 추가됐다. 이번 조사는 충남 논산과 전북 일부 지역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6.25 당시 희생된 기독교인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 대부분은 좌익이 휘두른 삽과 죽창, 몽둥이, 괭이에 맞아 죽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6.25 당시 기독교인 집단 학살은 주로 9월 27일~28일 이뤄졌다. 박 교수팀은 북한 정권이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9월 26일 하달한 ‘반동 세력 제거 후 퇴각하라’는 명령과 관계가 있다고 봤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논산 성동면 우곤감리교회 신자 73명이 집단 학살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바라구’ 김씨 일가를 비롯, 이 교회 장로로 피택된 김근택 집안 10여 명과 이 지역 최대 부자인 박승주 집안 등 집단 희생당한 가족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가해자는 지역 좌익이었다.

조선일보

논산=김기철기자 논산 병촌교회 카페 지하에 조성한 순교기념관. 66명의 이름과 인적사항을 적었다. 가운데는 1957년 세운 순교기념비. 병촌교회는 답사팀이 매주 찾아오는 기독교 순교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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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단이 도끼로 죽여’ 신문 보도

이 사건은 당시 조선·동아일보에도 눈에 띄게 보도됐다. ‘합동수사본부’가 1950년 11월 18일 성동면 우곤리 출신 이상태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는 발표였다. ‘1950년 9월 28일 우익 진영 군경 가족 암살단을 조직하여 동월 30일 오전 3시를 기하여 경찰관 박병구씨외 39명과 도합 72명을 끌어내 산모퉁이에서 차례차례 도끼로 뒷머리를 때려 즉사케 한 뒤 구덩이에 파묻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회는 6.25 당시 신자 66명이 학살당한 같은 면 병촌성결교회와 직선 거리로 1㎞ 남짓 떨어져 있다. 성동면은 일제 때부터 좌익 세력이 강했던 곳으로, 이 지역 기독교인들은 우익 집단이자 반공(反共) 세력으로 간주돼 학살당했다는 것이다.

◇화해 위해 가해 집안과 결혼한 피해자

병촌교회 마당에는 희생자 명단을 새긴 ‘66인 순교기념탑’이 우뚝 서있다. 한편에는 유해 발굴을 통해 수습한 순교자 7명의 묘가 있어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박명수 교수팀은 2021년 조사한 병촌교회 사건 내막도 재조사했다. 이 사건에는 같은 동네 김씨 집안과 좌익 계열 정씨 집안의 해묵은 갈등이 작용했다. 이 교회 신자인 김주옥은 인민군 치하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탈출, 40여 일간 도피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직후 좌익에게 어머니와 아내, 둘째 아들과 딸, 조카 2명 등 6명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정씨 집안이었다.

김주옥과 같은 경주 김씨 집안인 김기환은 부모, 형, 형수, 조카 등 16명이 살해당했다. 김기환은 그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생겨 1966년 고향을 떠났다고 한다. 병촌교회 희생자 66명 중 경주김씨 집안이 35명으로 전체 절반이 넘었다. 이성영 병촌교회 담임목사는 “세 살 미만 아기만 9명이고, 주일학교생 22명까지 합치면 66명 중 절반 가까운 31명이 어린이였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젖먹이를 가슴에 안고 죽은 산부도 있었다’고 썼다.

수복 이후 김씨의 피비린내 나는 보복이 예상됐다. 이때 김주옥이 나섰다. 가해자인 정씨 집안 딸과 재혼한 것이다. 김주옥은 보복을 막고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김주옥의 아들 김흥호(69)씨는 ‘아버지가 정씨 집안의 신원 보증을 서주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기독교인, 우익 희생자 구분 어려워’

연구팀은 전북 35곳에서 발생한 기독교인 희생 사건을 조사해 군산 신관교회(15명)·정읍 산외교회(6명), 익산 이리제일교회(5명), 신황등교회(4명) 완주 서두교회(4명) 희생자도 추가로 밝혀냈다. 보고서는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면서 ‘기독교 희생자와 우익 희생자의 구분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썼다. 병촌교회나 우곤교회 사례에서 보듯, ‘집단 희생당한 교회는 가해자들에게 대부분 복수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정리했다. 한편 ‘한 교회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 후손이 함께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남겼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6.25전쟁 전후 기독교인을 비롯한 종교인 희생은 위원회가 직권조사를 결정한 사건”이라면서 “77명이 희생된 영광 염산교회와 이번에 새로 밝혀진 우곤교회 집단 희생 사건을 포함해 6.25 전후 종교인이 희생된 사건 전모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악질종교’ 처단지시가 기독교인 집단 학살 불러”

조선일보

박명수 서울신학대 명예교수


“6·25 당시 기독교인 학살은 인천상륙작전 직후 퇴각을 앞둔 북한 당국의 공식 지시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지방 좌익들이 행동대원으로 나섰기 때문에 인민군이나 김일성 정권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살은 철저히 이들의 계획 아래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명수(69·사진) 서울신학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진실화해위원회에 ‘6·25 전후 적대세력에 의한 종교인 희생 사건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 2021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박 교수는 인천상륙작전 직후 인민군 퇴각 과정에서 거의 동시에 기독교인 집단 학살이 이뤄진 점을 주목한다. 김일성은 1950년 7월 중순 ‘전직 전과 불량자, 악질종교 등’을 처단할 것을 명령했는데, 박 교수는 김일성이 말한 ‘악질 종교’에 기독교가 포함된다고 봤다. 북한 정권이 이북에서 수많은 교계 인사들을 체포하고, 목사와 교인들이 탄압을 피해 월남한 사실을 떠올리면 ‘악질종교=기독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50년 9월 하순 인민군은 “반동 세력 제거 후 퇴각하라”는 지시를 각 도당(道黨)에 하달했다. 이에 따라 각 도당은 9월 26일 음력 추석날 반동 세력 제거에 나서 기독교인, 우익 인사 학살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기독교인 학살을 단순히 집안 간 갈등이나 개인적 감정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원인을 축소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박 교수는 6·25 직후 발생한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좌익 가족들이 기독교인과 우익 진영에 복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논산 성동면의 경우, 좌익 중 보도연맹에 가입한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고, 희생자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은 6·25 이전에 일어난 가장 충격적 사건으로 좌익이 김병택을 살해한 일을 기억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지역 명망가였던 김병택은 좌익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녁에 대나무밭에서 칼로 살해당했다.

박 교수는 서울신학대 한국현대기독교연구소장을 지낸 교회사연구자로 해방 직후 기독교와 현대사 연구에 앞장서 왔다. 이번 달부터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임기 1년)을 맡고 있다.

/논산=김기철 기자

[논산=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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