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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전국 ‘악성 미분양’ 1만7523채… 정부 통계의 2.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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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겉도는 미분양 통계]

161만채 공동주택 등기부 분석

“건설사 신고 의존… 통계 부실”

24일 충남 중소도시의 약 500채 규모의 A아파트 단지. 입주 4년이 지났는데도 단지는 물론 주변까지 썰렁했다. 단지 내 상가는 3실 중 1실이 비어 있었다. 초등학교 용지로 예정됐던 땅엔 공업사들만 가득했다.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자 인근 분양 일정이 밀렸고 학교 건립까지 흐지부지됐다.

A단지 미분양 규모는 정부 공식 통계에서 ‘비공개’로 되어 있다. 하지만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시행사가 여전히 70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준공 후 미분양인 소위 ‘악성 미분양’이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시행사가 미분양을 털어내려 가격을 시세보다 낮추고 수수료까지 주는 파격 조건으로 팔아 달라고 한다”고 했다.

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준공 후 미분양 통계와 실제 준공 후 미분양 물량 간의 괴리가 최소 2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 통계가 사업자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해 부동산 경기의 핵심 지표인 미분양 현황이 ‘깜깜이’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동아일보와 프롭테크 기업인 빅테크플러스가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3763개 단지 161만3344채 규모의 공동주택 등기부등본의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한 결과 올해 1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만7523채로 집계됐다. 이는 시행사와 시공사 등이 준공 후에도 보유 중인 물량으로 신탁사 물량(4096건)은 제외했다. 국토교통부의 1월 말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통계(7546채)와 비교하면 약 2.3배 규모로, 신탁사 물량까지 합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분양 2채 신고, 등본상엔 100채… “부실통계, 부실정책 이어져”

‘준공후 미분양’ 통계 부실
서울 1804채, 정부통계와 5배差… 업체들 ‘낙인효과’ 우려 축소 신고
“통계 정확해야 옳은 처방 나와”


인천 B아파트 단지는 최근 중도금 납부 기한을 한 달 연장했다. 입주 7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분양받은 사람들이 중도금을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등기부등본상 B단지는 시행사가 1월 말 기준 100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토부가 보고받은 미분양 물량은 2채에 그친다.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줘서 중도금과 잔금을 내려는 집주인이 많았는데 전세가 안 나가면서 계약을 중도 포기한 사람이 많다”며 “시행사가 미분양 물량의 새 주인을 못 찾을 게 뻔하니 일단 중도금 기한만 연장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남 여수 C아파트 단지도 사정이 비슷했다. 국토부는 이 단지의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1월 말 기준 8채라고 밝혔지만, 등본상으로는 98채가 시행사 보유로 남아 있었다. 지난해 10월 입주를 시작했지만 단지 내 상가 중 1곳만 중개업소로 영업 중이고 나머지는 모두 공실이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시행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축소 신고했을 것”이라고 했다.

● 건설사 신고에 의존하는 미분양 통계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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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빅테크플러스 분석 결과 지역별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추산되는 곳은 경기(3555채)였다. 국토부 통계(595채)와 비교하면 약 6배나 많은 규모다. 부산(1975채)이 뒤를 이었고 △서울 1804채 △경남 1589채 △대전 1523채 등의 순으로 많았다. 부산과 서울의 실제 준공 후 미분양 물량 역시 국토부 통계보다 각각 2.1배, 5.3배 많았다. 최근 3년여간 주택 수요가 높아 많이 지었지만 소규모 단지 위주로 미분양이 많이 발생한 곳으로 분석된다.

미분양 통계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은 정부가 분양 아파트 계약 현황이나 준공 후 미분양 물량 통계를 건설사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미분양 통계 담당자는 “매달 사업장에 미분양 통계를 전달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고 사업장에서 전달해준 수치를 취합한다”면서도 “이 수치가 실제와 맞는지 확인할 방법은 사업장에 전화로 물어보는 것 외에 마땅치 않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미분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정부 통계와의 괴리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부 집계에서 대구의 일반 미분양은 2월 기준 1만3000채가 넘지만 이번 분석에서 대구의 악성 미분양은 363채에 그친다. 이는 분양에서 준공까지 2∼3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구의 현재 일반 미분양이 준공 전까지 해소되지 않으면 고스란히 악성 미분양으로 남는다. 통계를 기존 방식대로 집계한다면 이런 상황이 통계에 반영되지 못하는 셈이다.

● 미분양 숨긴 채 매수 권유… 소비자 피해로

전문가들은 ‘깜깜이’ 미분양 통계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 충남 A단지의 중개사무소에 악성 미분양이 쌓여 있는 단지의 매매를 고민하고 있다고 묻자 “중개 수수료와 법무사 비용, 취득세까지 모두 부담해 주겠다”며 매수를 적극 권유했다. 미분양 물량이 많은 단지라는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팔면 매매가격의 3∼5% 정도를 분양대행사나 중개업소에 판매 수수료로 주는 게 관행”이라며 “미분양이 많은 단지를 모른 채 덜컥 매입하면 추후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매도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국토부에 미분양 신고 의무화를 요청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침체로 향후 미분양 주택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요자들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라도 국토부에 미분양 신고제 도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 “미분양 급증 속 부실 통계는 부실 정책 낳아”

건설업계는 미분양 정보 공개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신고 의무화에 반대하고 있다. 시행사 관계자는 “미분양 정보가 공개되면 ‘낙인효과’로 입지가 좋은데 시장 상황 때문에 잠깐 미분양이 발생한 단지조차 장기 미분양의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정부도 미분양 정보를 일종의 ‘영업 비밀’로 인정하고 건설사 신고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현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법인 등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분양 신고 의무화가 자칫 부동산 시장의 왜곡된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며 “건설업계는 물론이고 미분양 단지나 주변 단지 주민까지 정보 공개를 반대한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미분양 통계 공개의 낙인효과를 고려한다 해도 정부가 발표하는 미분양 통계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분양 통계가 부실하면 제대로 된 시장 진단과 정책적 처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정부는 미분양 규모가 아직 심각하지 않다고 하지만, 정책 설계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어서는 안 된다”며 “지자체마다 준공된 아파트의 미분양 물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언제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뿐만 아니라 시장 개별 주체인 민간에서도 정확한 미분양 정보를 모르면, 부동산 시장 진입 시기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준공 후 미분양
입주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주택. 선(先)분양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 착공에 들어갈 때 대부분 분양에 나서는데, 이때 계약되지 않은 물량은 ‘일반 미분양’으로 분류되고, 완공 후에도 입주자가 없어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으면 ‘준공 후 미분양’이 된다. 시공사나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받지 못한 채 물건을 떠안아야 해 ‘악성 미분양’으로도 불린다.

천안=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여수=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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