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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막으려는 자" vs "알리려는 자"…'조현범 구속' 얼룩진 한국타이어 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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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국타이어 정기 주주총회 개최
한국타이어지회, 주총서 경영진 사퇴 요구
한국타이어 측, 노조 주총 출입 제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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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지회 조합원들이 2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한국타이어 본사에서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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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분당구=이성락 기자]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 주주총회(주총)가 고성으로 얼룩졌다. 당초 민감한 안건이 없어 '무난한 주총'이 예상됐으나, 그룹 총수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의 구속과 대전공장 화재 등 최근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경영진을 규탄하는 노조 측과 이를 방어하려는 회사 측의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팽팽한 신경전은 주총 시작 전부터 벌어졌다. 회사 측은 정문을 걸어 잠그고 노조원들의 주총 출입을 제한하려고 애썼고, 노조 측은 "주주권을 보장하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30일 타이어 업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전날 오전 9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본사에서 정기 주총을 열고 이사 보수 한도 승인(50억 원에서 70억 원), 재무제표 승인 안건을 다뤘다. 이날 주총 안건은 변수 없이 모두 원안대로 가결됐다.

안건 통과 여부와 관계 없이 주총장 안팎은 뒤숭숭했다. 그룹 경영을 책임지는 조현범 회장이 지난 27일 기소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주주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현범 회장은 현재 구속 상태로, 한국타이어는 조 회장이 지난 2019년 12월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후 약 3년 4개월 만에 재차 '오너 경영 공백'을 겪고 있다.

조현범 회장은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의 타이어몰드를 경쟁사보다 비싸게 사주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한국타이어가 MKT에 몰아준 이익이 배당금 등의 형태로 조현범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 흘러 들어갔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조현범 회장은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경영이 부실한 것을 알면서도 지인의 회사에 50억 원의 회삿돈을 빌려주고, 집을 수리하거나 5억 원대 페라리 488피스타 등 외제차를 사는데 회삿돈을 사용한 혐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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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직원이 출입을 제지하자 노조원들이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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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 노조 측이 조현범 회장의 범죄 사실과 관련해 이수일 대표 등 한국타이어 경영진의 책임을 묻고 나서면서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한국타이어지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조현범 회장 구속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경영진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노조는 대전공장 화재 발생에 대해서도 경영진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설비 노후화에도 시설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점, 생산 중심 운영으로 화재 사전 예방·대책이 취약했던 점,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 경영의 문제가 있었던 점 등이 이번 화재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김용성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장은 "조현범 회장의 횡령·배임 총액은 200억 원에 달한다. 직원들의 노력으로 거둔 성과를 노동자들과 현장 안정화에 써야 하지만, 조현범 회장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도대체 자신의 집 가구, 페라리를 회삿돈으로 왜 사야 하는 것인가. 왜 아내 운전기사를 회삿돈으로 고용한 것인가.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성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오너 일가의 반복된 범죄 행위와 기업의 사유화로 인해 경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며 "최근 발생한 대전공장의 화재는 예견된 재난으로, 오너 리스크와 무책임 경영이 구조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노조 측과 회사 측은 주총 시작 전부터 충돌했다. 한국타이어 주식을 보유하고 있거나, 의결권 위임을 받은 일부 조합원이 주총에 참석하려 했으나, 회사 측이 이를 제지했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는 "주총장 자리가 부족하다"며 "조합원 5명만 들어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최소한의 주주권도 보장하지 않는, 상식을 초월하는 황당한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한국타이어는 내부 논의 끝에 주총 시작 10분 전인 오전 8시 50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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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직원이 노조 조합원들로 구성된 주주의 출입을 막기 위해 회전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이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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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장 안에서도 긴장감은 유지됐다. 노조 측은 주주 발언을 통해 공식적으로 조현범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는 조현범 회장의 유죄가 확정되지 않아 법적 판단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성규 부위원장은 "주총장에서 조현범 회장의 범죄 사실, 대전공장 화재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 등과 관련해 질의했으나,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이사진들은 주총장에서 말할 사안이 아니라며 추후 서류 형태로 질의에 대한 답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주총은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됐다. 처리 안건이 많지 않았으나, 주주들의 질의가 이어진 영향이다. 노조는 이날 통과된 이사 보수 한도를 50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늘리는 안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조현범 회장 구속, 대전공장 화재 등 악재가 쌓인 시점에 이사 보수 한도를 증액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다. 노조는 "구속돼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조현범 회장에게 급여가 계속 지급돼야 하는 것인지 자체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측과 회사 측의 갈등은 주총이 끝난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 이사진이 노조 측 질의에 대해 서류 형태로 답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에 대해 노조 측이 재차 문의했고, 이에 회사 측이 "제출할 의무가 없다"고 말을 바꿔 양측간 말다툼이 벌어졌다.

노조 측과 회사 측의 대립 양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노조는 경영진 사퇴를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성규 부위원장은 "조현범 회장의 범죄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한국타이어는 오너 일가의 범죄 행위로 인해 기업의 가치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어 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당장 정해진 투쟁 계획은 아직 없지만, 문제를 지속 제기해 총수 1명이 회사 전체를 지배하는 제왕적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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