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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마미 헬프 어스 외쳤는데"…'안산 참변' 부모, 4남매 영정사진보고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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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꿈꾼 아나스타샤, 개구쟁이 케네디…천국가서 고통없이 살기를"

영정 앞에는 친구들이 가져온 캐릭터 인형과 초코파이

뉴스1

안산 다세대주택 화마로 4남매를 잃은 가족의 단란한 한 때. (5남매 아버지 제공) /뉴스1 ⓒ News1 배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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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뉴스1) 배수아 기자 = 지난 27일 화마로 4남매를 잃은 부부는 네 자녀의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한채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고, 눈을 감은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29일 오후 5시20분쯤 화마로 숨진 4남매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시 군자 장례식장.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사진 네 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양발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붕대를 감은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네 자녀를 보러왔다. 허리 골절상을 입은 어머니도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집안 화재 때 5남매 중 2살배기 막내와 가까스로 탈출한 부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가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았다. 부부는 말 없이 침통하게 빈소를 지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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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군자장례식장. 2023.3.29/뉴스1 ⓒ News1 배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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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다녔던 학교 선생님들이 이들 부부를 안아주며 위로하자 어머니는 그제서야 터져나오는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는 "불났을 때 첫째가 방 안에서 '마미 헬프 어스', '헬프 어스' 계속 외쳤는데 아이들을 구하지 못해 가슴이 찢어진다"며 선생님을 붙잡고 오열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굿바이 아나스타샤, 굿바이 케네디. 아프지 말고 학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놀러와"라며 눈물의 인사를 나눴다.

5남매 중 첫째 아나스타샤 양(11)과 셋째 케네디 군(5)은 안산시의 한 다문화 외국인 대안학교에 다녔다.

아나스타샤를 네 살때부터 봐왔다는 학교 선생님 이지니씨(55)는 "아나스타샤는 패션디자이너가 꿈인 소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생들이 많다보니 밑에 동생이 아프면 학교에 못오고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의젓하고 착한 아이였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지난주 금요일에 숙제를 다 해오면 빼빼로를 주겠다고 약속해서 월요일에 빼빼로를 가져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이 미처 전해주지 못한 빼빼로는 결국 영정사진 앞에 놓여졌다.

학교 선생님들은 케네디를 개구진 친구였다고 전했다. 한 선생님은 "3년전 케네디가 학교에 처음 왔을 땐 말을 잘 못했는데 지금은 말도 잘하고 활발한 개구쟁이"라고 말했다.

최혁수 교장선생님은 "이들 가족은 화목했고 아버지도 성실히 사셨던 분"이라면서 "천국가서 고통없이 살라"며 아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조문 온 친구들은 아나스타샤가 평소 좋아한 캐릭터 인형과 케네디가 좋아한 초코파이를 사들고 영정 앞에 내려놓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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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군자장례식장. 4남매 영정사진 앞에 평소 남매가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과 과자 등이 놓여져 있다. 2023.3.29/뉴스1 ⓒ News1 배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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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5시35분쯤 이민근 안산시장도 빈소를 찾아 이들 가족을 위로했다. 이 시장은 이들 부부에게 "시가 할 수 있는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오후 4시쯤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다문화위원장인 윤영덕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다문화위원장인 장윤정 도의원도 빈소를 찾아 4남매가 가는 마지막 길을 위로했다. 이날 오전엔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과 이정용 안산소방서장도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쳤다.

일면식이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먼 길을 달려온 시민도 있었다. 서울 노원구에서 찾아왔다는 김정숙(67)씨는 "나도 9남매로 자라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걸 못봤는데 아침에 뉴스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물어물어 장례식장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5남매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장례식장측은 빈소를 무상으로 제공했고 안산시에서 장례비용 일체를 부담하기로 했다. 시는 또 이들 가족에게 주거비와 생계비 등의 긴급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부모와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구한 2살 막내는 현재 아동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돌봄을 제공받는 중이다. 안산시는 사단법인 안산희망재단을 공식 모금 창구로 지정하고 후원금을 받고 있다.

지난 27일 오전 3시28분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다세대주택에서 난 불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4남매가 숨졌다.

이들 가족은 부모와 5남매로 화마로 목숨을 잃은 4남매는 11살 여아 아나스타샤와 7세·5세 남아 갓슨·케네디, 3세 여아 미쉘이다. 막내 2살 여아 엔젤은 화재 당시 부모와 탈출해 목숨을 구했다.

이들 가족은 2년 전에도 선부동의 집에서 화재 피해를 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소방에 따르면 이들 가족은 2021년 1월8일 오후 12시37분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집에서 불이 나 당시 둘째 아이 갓슨이 3도 화상을 입었다.

4남매의 발인은 31일 오전 11시에 진행되고, 장지는 함백산 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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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군자장례식장. 남매의 부모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23.3.29/뉴스1 ⓒ News1 배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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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alu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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