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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조민 집 초인종 눌렀다 기소된 기자들…"정당행위" 1심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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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2019년 ‘조국 사태’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32)씨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방송 기자와 PD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3단독 이근수 부장판사는 29일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TV조선 정모 기자, 이모 PD에 대한 1심 선고기일을 열고 “공동주택 공동현관에 들어선 순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만,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 및 PD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한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행위(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취재행위의 정당성으로 인해 위법성이 조각(阻却·물리침)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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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32)씨는 2019년 9월 자신의 집에 취재 목적으로 방문해 초인종을 누른 혐의로 2020년 8월 TV조선 기자와 PD를 고소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3단독 이근수 부장판사는 이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조씨의 모습.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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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취재진은 조씨의 입시 관련 의혹 취재를 위해 2019년 9월 5, 6일 두 차례에 걸쳐 조씨가 거주하던 경남 양산시의 한 오피스텔을 무단 침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1층 공동현관 인터폰으로 연락했으나 응답이 없자, 입주민을 따라 들어간 뒤 7층 조씨의 거주지 현관문 앞까지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현관 손잡이를 강하게 잡아당겼다는 것이다. 조씨는 지난해 12월 9일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공동현관이 있는 데도 문을 분명히 두드렸고 손잡이도 덜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작은 소리에 깰 정도로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TV조선 취재진은 지난달 10일 결심공판에서 “우리의 방문으로 조씨가 피해를 봤다면 사과를 전한다”면서도 “취재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 및 반론 청취를 위해 찾아갔지만, 문을 두드리거나 손잡이를 흔드는 강압 행위는 없었다”고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취재진의 변호인은 “단순히 반론을 듣기 위해 초인종을 두어 차례 누른 것이 범죄가 된다면 앞으로 언론 활동에 얼마나 큰 구속이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당행위로 평가할 필요성이 매우 높은 사건”이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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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2020년 8월 10일 페이스북에 "제 딸은 X기자 및 성명 불상 기자를 주거침입죄 및 폭행치상죄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캡처


이와 관련, 재판부는 이날 조씨의 경찰 진술 및 고소장 기재 내용이 법정 진술과 다르거나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TV조선 취재진이 조씨 집 앞 초인종을 누른 행위만 인정했다. 조씨가 경찰에 진술하거나 고소장에 기재한 범행 시각과 사실관계를 법정에서 번복한 반면, TV조선 취재진의 반박은 증거로 제출된 당시 촬영 영상 및 녹취록 내용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이 사건 발생 사흘 전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딸아이 혼자 사는 오피스텔 문을 두드린다, 남성기자 2명이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한다”고 발언한 점에 비춰 “조씨가 다른 기자들의 행위와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취재진의 행위가 ▶당시 이슈였던 조씨의 학사비리 의혹에 대한 취재 및 반론기회 부여 목적이었던 점 ▶이미 공개된 조 전 장관의 재산등록 내역을 보고 조씨의 주소를 알게 됐지만 휴대전화번호는 몰랐던 점 ▶집 내부를 촬영하거나 내밀한 사적 영역을 취재하려고 한 건 아닌 점 ▶낮에 방문해 최대 30~50분만 머무른 점 ▶건물 진입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누군가를 속인 사실이 없는 점을 들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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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재판부는 “설령 현관문을 두드리고 손잡이를 돌린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그러한 행위는 취재에 응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조씨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 이후라서 조씨에게 추가적인 법익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취재진이 침입한 장소는 다수의 사람이 사용하는 공동주택 복도로 공용부분에 해당하고, 잠금장치가 돼 있는 전유(專有·홀로 차지)부분까지 침입한 건 아니어서 보호의 필요성 내지 법익 침해의 정도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수사 중인 유튜브 언론 채널 ‘더탐사’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택 방문 사건과 유사하다. 더탐사 강진구·최영민 공동대표 등은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도곡동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자택 현관문까지 접근해 초인종을 누르고 한 장관을 수차례 부른 혐의로 고발됐다. 지난해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에서 기각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취재 목적으로 ▶열려 있는 공동현관을 통해 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경찰은 이들이 진입 전 “경찰 수사관들이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한 기자들의 마음이 어떤 건지를 한 장관도 공감해보라는 차원”이라고 발언한 것, 공동현관뿐 아니라 엘리베이터도 출입카드로만 작동하는 등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구조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정당행위가 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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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침입한 혐의를 받는 유튜브 언론 채널 '더탐사'의 강진구, 최영민 대표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고, 경찰은 아직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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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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