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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멕시코 이민자 수용시설 화재의 비극…고조되는 국경의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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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멕시코 이민 수용시설 화재로 사람들이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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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멕시코 이민자 수용시설 화재 참사 당시 직원들이 출입문을 잠근 채 현장을 벗어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 유족들은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지만, 멕시코 정부는 “이민자의 방화”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자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에게 국경을 걸어잠그면서 멕시코 이민자 시설에 사람들이 몰려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멕시코뿐 아니라 미국의 이민 정책에 대한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멕시코 매체 엘우니베르살 등에 따르면 미국으로 향하는 관문인 멕시코 국경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의 이민자 수용시설에서 전날 화재가 발생해 최소 38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멕시코 이민청(INM)은 애초 사망자 수를 40명이라고 집계했지만, 이후 38명으로 수정했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들 역시 위독한 상태다.

이민청은 화재 당시 수용 시설 안에 과테말라,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출신 이민 남성 68명이 수용돼 있었다고 밝혔다.

화재가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것은 참사 당시 직원들이 출입문을 잠근 채 시설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 매체가 확보한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에는 이민청 직원 2명이 쇠창살 너머 화염을 뒤로한 채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내부에서 출입문을 발로 걷어차는 이민자도 보인다.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가 막히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가족과 친지들은 이날 참사 현장 앞에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위를 벌였고, 야당 의원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시민운동 소속 호르헤 알바레스 마이네스 하원 의원은 “정부와 이민청 과실로 이민자들이 희생된 것”이라며 “그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문을 잠근 게 가장 큰 화근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민자의 방화”가 원인이라며 책임을 축소하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민자들이 (본국으로) 추방될 것을 알고,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매트리스에 불을 질러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집권당인 국가재건운동 소속 의원들도 “(이민자를 본국으로 추방하는) 현재의 이민법은 야당 주도로 가결돼 시행됐다”며 비극을 정쟁으로 끌고 가지 말라고 반박했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놓고 미국 정부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현재 멕시코 국경에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민자 강제 추방 제도인 ‘타이틀42’ 를 해제해 줄 것이라 기대하며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이 밀려오고 있다. 타이틀42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명목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도입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시 트럼프 시절 도입된 국경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타이틀42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에 기대를 걸고 온 이민자들은 국경을 넘지 못한 채 멕시코의 여러 이민자 수용시설에 과밀해 있는 상태다. 멕시코 인권위원회에 따르면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현재 수만명의 이민자들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 쪽 국경의 수용시설 내 이민자 수는 크게 감소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멕시코는 수만명의 이민자들에게 주거지과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고, 인권단체들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열악해지고 있는 수용 시설의 환경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다.

유엔 국제이주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시우다드 후아레스의 이민자 수는 1만2000명으로 급증해 도시의 수용 능력을 훨씬 초과했다. 이민자들은 교회나 거리에서 잠을 자며 지내고 있다. 이들 중 수백명은 이달 초에도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로 건너가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우다드후아레스에 살고있는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민은 “이 비극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며 “이곳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전혀 없다. 감옥이다”라고 말했다. 국제난민기구의 중남미 선임 고문인 레이첼 슈미트케는 “멕시코 정부와 함께 미국은 이번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일어난 일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 미국 망명 신청 역대 최다…‘트럼프 이민자 추방정책’ 폐지 여부 논란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212280901001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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