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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강제’ 지워 가해의 역사 희석…독도는 ‘고유 영토’ 억지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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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교과서 149종 ‘통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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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 ”

일본 초등학생이 내년부터 사용할 사회 교과서에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억지 주장이 더욱 강화됐고, 조선인 강제동원 및 위안부 관련 문제에서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역사수정주의 입장이 유지됐다.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의 가해 역사는 희석시켰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검정심의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초등학교 교과서 149종의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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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기고 일본 정부가 28일 발표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됐다. 사진은 독도 설명에서 현행 “한국에 점거돼”라는 표현을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돼”로 바꾼 도쿄서적 지도 교과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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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초치하고 일본 정부가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로 초치된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대사대리가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징병 표현은 ‘병사로 참가’
끌려왔다 → 동원으로 수정
의도적으로 ‘강제성’ 누락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사회 과목에서는 일본 영토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화된다. ‘일본 영토’라는 표현만으로는 아동에게 오해를 줄 우려가 있으므로 영유권 주장에 관한 표현을 더욱 명확히 하라는 검정심의회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도쿄서적은 지도 교과서에서 “(독도가) 한국에 점거돼 일본은 항의를 하고 있다”는 부분을 “(독도가)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돼 일본은 항의를 하고 있다”로 수정했다. 사회 교과서에서도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문구를 “ ‘70년 정도 전부터’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로 바꿨다.

일본은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가해국으로서의 역사도 대폭 희석했다. 초등학교 3~6학년이 사용할 사회 교과서 12종과 3~6학년이 함께 보는 지도 교과서 2종에서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참여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점유율 1위인 도쿄서적은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됐다”는 기존의 표현을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에 병사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변경했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 설명도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에서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꿨다. 점유율 2위인 교육출판의 6학년 사회 교과서도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기술을 “일본군 병사로서 전쟁터에 내보냈다”로 교체해 ‘징병’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강제노동과 관련해서는 ‘강제성’을 희석한 내용이 추가됐지만, 내용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도쿄서적은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왔다”는 기존의 기술에서 ‘끌려왔다’를 ‘동원됐다’로 교체했다. 그나마 도쿄서적은 ‘강제’ ‘동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다른 교과서에는 그런 표현이 아예 없었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내용 아예 빼거나 대폭 축소

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올해 100주년이 되는 간토 대지진을 상세히 설명한 칼럼을 삭제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헛소문이 유포돼 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내용이 사라지고, 관련 내용도 대폭 줄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2008년부터 본격화했지만, 2014년 아베 신조 정권이 근현대사와 관련해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경우 그것에 근거해 기술한다”고 교과서 검정 기준을 바꾸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실제로 올해 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 검정 신청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적으면서 ‘일본의 영토’라는 기존 표현을 사용했으나 검정 과정에서 ‘아동이 일본 영토에 대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고 ‘일본의 고유 영토’로 고치고서야 검정을 통과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종군위안부’라는 말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위안부’라는 표현만 쓰게 했으며, 조선인을 강제로 노역시킨 것에 대해서도 ‘강제연행’ 또는 ‘연행’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며 ‘징용’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각의에서 결정한 바 있다.

정부의 입장과 다른 기술이 검정 과정을 통과할 리 없는 만큼 교과서 업체와 집필진은 아예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정부 입장을 반영해야 하는 교과서 검정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교과서 역사 왜곡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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