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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슈 로봇이 온다

"대화 나누거나 음악 들려주면 AI로봇 화가가 그림 그려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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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혜진 카네기멜런대 로봇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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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틱스는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는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분야입니다.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기술이므로 사람이 쓰는 언어, 의미, 선호도, 규율, 사회적 규범 (social norm) 등을 포함하는 고도의 지능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기술들이 함께 발전해야 사람에게 이로운 로봇을 만드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오혜진 카네기멜런대 로보틱스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함께 키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 교수는 최근 AI를 탑재해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려내는 로봇 '프리다' 개발에 성공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그림을 말이나 사진으로 설명하면 팔처럼 생긴 로봇이 아크릴물감으로 천천히, 대담한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려낸다. 오 교수는 프로젝트 책임연구자(PI)를 맡아 모든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새로운 기술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일념으로 펀딩도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리다는 실생활에서 쓰임새가 있는 AI로봇 상용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현지 로봇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프리다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다만 아직 실제 판매가격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오 교수는 "저렴한 로봇으로도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 그리고 다양한 일반 대중이 쓸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면서 "쉽게 설치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버전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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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프리다가 그린 그림. 카네기멜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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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프리다를 인간과 로봇이 가진 '창의성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정의했다. AI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제가 하는 프로젝트 중에는 '이런 일을 아직도 사람이 해야 하다니' 싶은 일들이 많다"며 "예를 들어 비행기 날개에 맨홀이 있고, 그 맨홀을 통해 좁은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서 화학약품으로 청소를 한다. 광산(mining)처럼 위험한 일도 있고, 노령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노인 케어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경험하게 될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기술이나 도구들은 물론 다른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 교수는 "어떤 도구이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달렸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카네기멜런대 로보틱스학과에서 11명의 박사과정 학생을 포함한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다. 오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는 판단이나 계획, 추측을 비롯한 로봇지능이다. 현재는 주행 (navigation)을 비롯해 비행 (aviation), 창의적 로보틱스 (Creative AI·Robotics) 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속한 카네기멜런대는 로봇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강자다. 이 대학 로보틱스학과는 전산대학 소속이고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융복합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오 교수는 "전산대학 안에 자연어학과, 머신러닝학과 등 7개의 세부학과가 있고 그 안에서 협업이 자유로이 이루어져서 공동연구 환경이 좋다"면서 "카네기멜런대 소속의 로봇인스티튜트(RI) 소속의 연구기술을 상업화로 이어주는 중간 역할을 하는 기관(NREC)이 있어 대규모 프로젝트를 담당해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직접 접하고 그 해결책을 찾을 기회가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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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프리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카네기멜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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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로봇학계에도 자극제가 됐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모든 분야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X가 되면'을 가정하고 하는 연구들이 많이 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GPT 같은 언어모델의 발전은 여러 분야의 봇물을 트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보틱스는 아직 남아있는 X들이 많지만 소프트웨어 쪽에서는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상용화 아이디어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성형 AI가 로봇에 가장 먼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를 묻자 그는 "자연어를 사용해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자연어를 통한 프로그래밍까지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가 개발한 프리다가 달리(DALL-E), 미드저니 등 시장에 나온 이미지 생성 AI와 차별화되는 점은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로봇이 물감을 쓰고 일일이 붓질을 하며 인간과 함께 작업한다. 오 교수는 "저희 연구팀은 프리다를 써서 AI와 로보틱스 연구를 하고, 사용자는 프리다를 써서 표현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서 "예술은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데 새로운 기술이나 도구가 나오면 그것을 써서 새로운 분야가 창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프리다가 사용자와의 공동작업을 지향하고 음성, 소리, 음악, 텍스트, 사진 등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와 로봇의 차이점에 대해 그는 "생성형 AI가 찍어내는 그림들은 프린트할 수는 있지만 페인트로 그릴 수는 없다"면서 "프리다와 생성형 AI의 차이는 마치 비대면 줌 미팅과 대면 미팅의 차이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간 로봇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대부분 그림을 그리는 것(창작)보다는 엔지니어링을 통해 주어진 이미지를 로봇으로 '찍어내는' 기술에 가까웠다. 프리다는 AI를 접목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오픈AI의 챗GPT와 유사한 방식의 AI모델을 활용해 로봇이 붓질을 통해 이미지를 그리는 방법을 시뮬레이션하고, 기계학습을 활용해 작업 진행률을 평가하는 식이다. 오 교수는 "프리다는 AI 분야 중 하나인 계획(Planning) 방식을 사용해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처음에는 조금 모호할 수도 있는 '생각'을 천천히 구현해낸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는 AI로봇 개발의 최대 난제는 가상과 현실 사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오 교수는 "프리다 시스템을 크게 시뮬레이션(상상)과 실제 작동(현실)으로 나눠보면, GPT와 같은 모델들을 사용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상상하고, 카메라를 통한 인식으로 붓의 움직임을 정하는 과정을 거친다"면서 "여기서 시뮬레이션 환경과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하는데 최근 프리다 로봇의 실제 데이터를 사용해 이 간격을 줄이는 데 큰 성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해당 연구성과를 5월 런던에서 열릴 국제로봇학회 'ICRA 2023'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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