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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화 |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이호영 창원대 총장이 말하는 ‘무기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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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에 법률 제정권 주자”

■“지역균형발전은 제도의 문제, 지방정부 권한 헌법에 명시해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은 수도권 집중 합리화 논리”

■“주민의 건강권, 생명권은 지자체와 지역 대학에서 보장해야”

■“경남 남해안 규제 풀어 카지노, 쇼핑몰 등 세계 명소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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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왼쪽) 경남도지사와 이호영 창원대 총장이 3월 7일 창원시 소재 경남도청에서 만나 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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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의 무기 수출액은 전년도에 견줘 140%나 증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7년까지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견인하겠다고 약속했다.”

3월 7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판 1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분이다. 이 신문은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모든 곳을 무장하고 있다(South Korea is arming everyone but Ukraine)’는 제하의 기사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급증한 글로벌 방위산업 수요의 최대 수혜국으로 한국을 꼽았다.

이 신문은 한반도 정세에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동맹국인 미국, 나아가 서방의 재래식 무기 수요를 충족하는 한국의 균형감각과 상술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은 항공모함, 핵잠수함, 항공기 등 전략 무기 생산에 치중하느라 대포와 전차, 자주포 등 중간 레벨 전술 무기까지 제조하거나 신속하게 공급할 여력이 달린다. 이에 전술 무기 관련 기술과 생산 인프라를 축적한 한국이 그 빈틈을 파고들어 폴란드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방산 무기를 공급한다는 게 뉴스의 골자였다. 특히 이날 [뉴욕타임스]에는 한국 방산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업 현장 사진이 실렸고, 덩달아 이 회사가 자리한 창원시도 대한민국 무기 생산의 허브로 주목받았다.

이날은 월간중앙 4월호 ‘구루와 목민관 대화’가 경남도청 지사 집무실이 있는 창원에서 열린 날이기도 하다. 대담에서도 이 기사가 화제에 올랐다. 대담에 참여한 박완수 경남지사와 이호영 국립창원대 총장은 한국 방위산업의 요람 격인 경남도와 창원이 가진 제조업 기반 경쟁력을 부각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국내 방위산업 생산액의 거의 절반을 경남이 차지하고 있다”며 방산에서 경남도가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했다. 이호영 창원대 총장은 “공학, 마케팅, 국제정치를 아우르는 방산 수출의 요람이 바로 경남”이라고 호응했다.

방산 특수(特需)로 활기를 띠는 경남이지만 다른 비수도권 지자체처럼 주민등록 인구 감소 시대로 접어들었다. 산업과 교육,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중앙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의 살림을 책임지는 두 CEO의 근심도 깊었다. 이날 대담에서 박 지사와 이 총장은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의 원인과 대안을 찾기에 앞서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특히 사람이 갖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누르거나 외면할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충족하는 방향으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한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방위산업 인프라의 요람, 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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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한국의 방위산업 역량을 주목하고 있다. 그 중심에 경남도와 창원시가 자리하는 듯하다.

박완수 경남도지사_ 사실 국내 방위산업 생산액의 거의 절반을 경남이 차지하고 있다. 경남도는 육상·해상·항공 등 육·해·공 방산 설비를 다 갖춘 지역이다. 전투기는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잠수함은 거제의 대우조선, K2전차와 K9자주포는 각각 창원의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진 뒤로는 K2전차, K9자주포가 유럽 폴란드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유럽과 중동의 국가들이 한국산 전차와 자주포를 특히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장점은 뭐든 신속하게 만드는 순발력, 기동력에 있다. 전술 무기 수출은 예전부터 독일이 강세였지만 주문에서 생산 라인 신설, 조업, 선적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 반면 한국은 바로 생산해서 오니까 많은 나라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호영 창원대 총장_ 무기라는 게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생산 탄력성이 굉장히 낮은 아이템이라 한국 방산이 경쟁력을 갖는다. 또 한국 무기는 가격 경쟁력과 성능도 월등하다. 가성비가 갑(甲)이다. 경남도는 방위산업 관련 연구 인프라가 탄탄한 지역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창원대학에다, 한국재료연구원·한국전기연구원(창원), 한국세라믹기술원(진주) 등 정부 출연 연구원이 3개나 포진해 있다. ‘K-방산’이 뜨기 전에는 이들 재료·전기·세라믹 등 연구 분야별로 각기 따로 갔다면, 요즘은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 방위산업에는 모든 공학이 다 들어간다. 이들 연구원뿐 아니라 대학과 기업이 함께 협업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생산과 수출에 공학적 요소와 마케팅, 국제정치까지 동원되는 게 요즘 방위산업의 달라진 모습이다.

박 지사_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방위 산업은 수요가 일정치 않다. 물량이 넘칠 때는 생산라인을 신설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감이 떨어지면 거의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놓이기도 한다. 비수기 때는 정부가 지원해줘야 버틸 수 있는 게 방위산업의 현주소다. 또 부품 국산화 등 기술 개발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기업이 그걸 혼자 하기는 벅찬 게 사실이다. 정부가 같이 연구에 참여해주면 기업 입장에서는 큰 힘이 된다.

이 총장_ 그 일을 대학이 함께할 수 있다. 창원대는 방산업체들과 호흡을 같이한다. 창원대는 K-방산이 뜨기 전부터 창원시 내 방산 업체들과 협력을 추진해왔고, 2021년도에는 첨단방위산업 클러스터 사업에도 선정됐다. 특히 창원대는 국방기술품질원과 방산 인재 육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은데 이어, 방위사업청이 지원하는 방위산업전문인력양성사업에 선정된 첨단방위공학대학원은 방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공급하고 있다.

박 지사_ 방산업체에서 생산하는 전차 등 제품의 품질을 검증하는 데는 아주 고가의 장비가 투입된다. 생산 설비뿐만 아니라 테스트 설비까지 갖추는 건 기업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소량 다품종을 생산하는 기업의 고통은 극심하다. 국책연구기관이나 정부 쪽에서 검증 설비를 갖춰 기업들이 테스트받고 싶을 때 받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청년과 인재가 정착하는 선순환 구조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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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기반의 기술 경쟁력이 갖춘 경남도가 넘어야 할 허들을 든다면?

박 지사_ 노동력의 원활한 공급이 관건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일손을 못 구해 공장을 돌리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농촌에서도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농번기에는 아예 발을 동동 구른다. 급한 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투입하지만,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기업이 있으면 밤새 짐을 싸서 사라지기도 한다. 경남의 경우 제조업이나 농업이나 인력 운용이 가장 큰 숙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총장_ 산업현장에서는 저출산 여파를 벌써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에서 아직 피부로 못 느끼는 것 같다. 제 개인적으론 5년 안에 엄청난 인구 절벽이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오리라 우려된다. 교육, 복지, 문화, 도시개발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거대한 충격파가 덮쳐올 것 같다. 인구 감소는 우리의 모든 것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듯하다.

결국 모든 게 사람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어떤 대응책이 필요할까?

박 지사_ 지방에서 인재를 육성할 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그 인재가 잘 받아들여질 사회적 기반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립 창원대·부산대를 나오면 서울의 연·고대 못지않은 인정을 받고, 지역의 촉망 받는 첨단 IT기업에 채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안되니 모두가 서울로 가는 것이다. 청년들은 IT기업과 같은 미래산업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IT 기업이 경남에 포진해 있으면 지역 출신 인재들이 경남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런 기업은 아예 지역에 안 내려오는 게 문제다. 연구 인력도 그렇다. 기술 관련 국책기관장 말로는 지방에 국책기관을 이전한들 기술 인력이 순차적으로 빠질 거라고 걱정한다. 예컨대 수도권 판교로 대덕연구단지 인력이 유출되고, 그 빈자리를 지방의 기술 인력이 채우는 식으로 연쇄 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방이 훌륭한 국책연구원을 신설하거나 유치한다고 해도 뛰어난 인재나 기술자들이 지방을 외면한다는 건 현실의 문제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미래도 이처럼 엄중하다.

이 총장_ 현실을 직시하자.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단순히 그냥 가는 게 아니다. 청년들은 생각보다 똑똑하고 합리적이다. 저도 처음에는 고향을 등지는 청년들을 보면서 ‘왜 저럴까’ 의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그게 그들의‘ 레이셔널한 초이스(rational choice)’였음을 알게 되더라. 나름 합리적 선택이다. 요즘 청년 중에는 심지어 공무원도 마다하는 이들이 있다. 비록 소득은 공무원보다 적어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자기 계발이 가능한 직종을 찾는 청년들이 증가한다고 한다.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인데, 청년들이 여기서 꿈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그런 경남이 되었으면 한다. 그게 단순한 정책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선순환 구조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들이 여기서 공부해도 좋은 직장을 얻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기르고, 좋은 교육을 받은 뒤에는 또 여기서 취업하는 시스템 말이다.



“지방 공공의대 졸업생 10년 이상 지방근무 법제화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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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시 현대로템에서 거행된 K2 전차 폴란드 출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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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십수 년간 지역균형발전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나라의 정책 운용에 어떤 문제라도 있나?

이 총장_ 오래전 일이지만 수도권 규제를 너무 많이 풀어버렸다. 한때 수도권에 공장 증설, 대학 증원을 막아 수도권 과밀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뒀었다. 수도권 인허가가 묶이니 기업은 억지로라도 지방에 내려와야 했고, 대학 증원도 지방에서나 가능했다. 인위적이지만 기계적 균형을 국가가 잡아주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가 풀리더니 그 뒤로는 봇물 터지듯 악순환에 들어갔다. 지금 경남에 28개 대기업이 있지만, 지역 대학 출신을 뽑지 않아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다. 생산직만 지역 대학 출신을 뽑고 본사 인력은 모두 서울에서 데려온다. 그러니 경남의 청년들이 떠나는 것이다. 한시적으로라도 제도적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요즘 추세가 탈(脫) 규제 아닌가. 솔직히 참 곤혹스럽다.

박 지사_ 그렇다. 웬만한 수도권 규제는 다 풀리고 있다. 심지어 요즘 그린벨트 해제 얘기가 나오길래 제가 수도권은 절대 풀면 안 된다고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강하게 요구했다. 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이 소멸을 걱정하는 판국에 무슨 수도권 그린벨트를 푼다는 말이냐고 말렸다. 국토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개정 요구가 커지고 있어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할 것 같다. 수도권은 정부가 장기적으로 규제를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가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 도쿄의 집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일본보다 심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쏠린 상태다.



“인센티브 강화하면 독도에서도 근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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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열린 창원대 학위 수여식. 지방대 졸업생들이 지역에서 정착할 여건 조성이 시급하다. / 사진:창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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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가는 대신 지역 의료 기관에서 3년간 일하는 공중 보건의사가 부족해 의사 부족 사태를 겪는 지역 보건소가 많다고 한다.

이 총장_ 심각한 의료 복지 불균형의 현실을 말해주는 사례다. 농촌 지역 보건소에 의사가 없다. 연봉 4억원을 준다고 해도 누구도 오려 하지 않는다. 의대 증원, 의대 신설 문제도 겉돌고 있다. 의대 정원은 18년째 동결돼 있다. 이미 절대적으로 총정원이 부족하다고 모두가 얘기한다. 필수 의료 분야는 제도적 처우를 바꿔야 하는 게 맞지만 그 정도로는 양에 안 찬다. 그렇게 해서는 지역의 의료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 또 지역 의대 정원만 늘려놓으면 뭐 하나. 졸업하면 다 떠난다. 경남과 전남의 오지에 의사들이 안 가는 것이다. 의사들이 그렇게 어렵게 공부했는데 시골 가서 살겠나.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 생명권은 지역에서 보장해야 한다. 의사가 필요하면 지자체와 대학이 손잡고 의대를 만들고 병원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해당 지역 수요에 걸맞은 의사 인력양성 책임을 지자체와 대학이 짊어지면 된다. 창원대는 지난 30년 동안 330만 경남도민과 104만 창원시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켜주고자 국립창원대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 흔들림 없는 노력을 해왔다. 국립 공공의대 교육 모델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세워 경남도와 함께 의대 유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박 지사_ 공감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의대 정원에 관한 권한을 교육부가 갖고 있다는 게 문제다. 내 개인 생각을 얘기하자면 시장 논리에 따라 의대 정원을 풀어도 된다고 본다. 그 대신 매년 의사 자격시험 합격자 수를 묶자. 이렇게 하면 의사 면허 발급권을 중앙정부가 가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 의대의 정원도 자연히 줄어들게 될 것이고 자율 조정이 일어나게 된다. 또 지방 공공의과 대학을 졸업하면 10년 이상 농촌에서 근무하는 걸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이는 지방에 의대를 만들어도 허사다. 졸업하면 다 서울이나 도시로 가버릴 거다. 이런 것들은 시장의 원리에 맡기면 안 된다. 정부가 제도를 통해 농촌 의료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요즘 시끄럽다. 최근 기금운용 적자가 심화한 데다 인력도 부족해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총장_ 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 기금운용본부가 지방에 있어서 사상 최악의 손실이 나고 인재가 안 온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기금운용본부를 수도권에 둬야 우수 운용 인력을 쉽게 구하고, 운용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전제 아닌가. 이는 수도권 집중을 합리화·정당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세계의 주요 기업 중에 소도시나 시골에 있는 기업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큰 금융회사 중에는 섬에 본사를 둔 기업도 있다. 유능한 인력을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결국은 대우와 보상이 좌우한다. 인센티브 제도를 확립해 보상을 확실히 하면 아무리 지방이라도 찾아서 온다. 기금 운용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팍팍 주고 수십억, 수백억대 수입도 가능하게 만들어주면 기금운용본부를 독도에 둬도 올 사람은 온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박 지사_ 4월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전북지사가 그 얘기를 할 것 같다. 이 총장 얘기처럼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에 있어서 80조원 적자가 났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수도권에 금융기관과 투자 정보가 몰려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정보 유통에 공간과 거리가 무슨 상관인가. 멀리 있어서 정보를 늦게 접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 지구 반대편 정보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디지털혁명 시대에 공간, 거리를 탓하는 건 온당치 않다. 기금운용본부를 수도권으로 가져간다는 건 분권적 논리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교육부 대학 예산의 50% 지자체 집행에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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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바라본 다도해. 경남도는 남해안을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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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지자체와 대학의 행정과 인력 운용에 당장 시급한 개선책을 든다면?

박 지사_ 왜 모두 수도권으로 가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의사결정 권한이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제도를 바꿔 국회 같은 경우, 기존 국회는 상원 역할만 하고 지역민들에 영향을 주는 실질적 법률 제정권은 지방의회에 줘야 한다. 지금은 국회가 만든 법률의 범위 안에서 지방의회는 조례를 만들 뿐이다. 법률 제정권을 지방의회에 줘야 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 기관들이 지방에 분산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또 중앙정부의 권한과 지방정부의 권한을 지방자치법이 아닌,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 총장_ 대학도 지방정부와 같은 입장이다. 학과 하나 증설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걸 교육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서류 양식도 정해져 있다. 대학 총장이라고 해서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 재정권이 거의 없다. 대학 내 6급에서 5급으로 가는 사무관 승진 인사도 대학이 못 한다. 전국 권역별로 사무관 승진 티오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재정, 행정 처리의 모든 걸 교육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학은 지자체보다 더 자율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간다. 다만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에 자율을 많이 주고, 재정과 권한도 지자체에 주고자 한다. 교육부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의 50%를 지자체가 집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양하기로 했다. 이른바 ‘지역 혁신 중심 대학지원 체계(RISE)’ 사업이다. 중앙부처가 주도하던 지원 방식을 지자체가 주도하는 방식인데, 지자체와 지방대학이 힘을 모아 지역발전에 이바지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정말 필요한 인력 수요는 지자체가 더 잘 아는 법이다. 지자체와 대학이 협업함으로써 지역과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교육과 연구를 하는 환경을 만들어갈 것이다. 기업이 지역 대학 졸업생들을 채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지역인재를 채용하게 강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돈이 되면 지역 대학에 찾아와서 인재를 양성해달라고 한다. 관건은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기업과 지자체, 대학이 실질적으로 협력하는 계기를 이 RISE 사업에서 찾아 나갔으면 한다.



“경남도 남해안 개발 과감하게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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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청 내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박완수(왼쪽) 경남도지사와 이호영 창원대 총장. 두 사람은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이 지역 회생의 핵심 변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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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 본사를 둔 김홍국 하림 회장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는 법인세는 물론 상속세를 대폭 감면하거나 서울과의 거리에 따라 아예 면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총장_ 필요하다. 그건 조세 형평이나 조세법정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보편적 원리다. 남을 위해 희생하면 보상을 받아야 한다. 수도권 집중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리지만 합계 출산율은 가장 낮다. 일자리는 많지만, 막상 살아보면 비용이 많이 든다. 인구가 많이 몰려 있는데 애는 덜 낳는다? 그건 지옥이라는 말이다. 분산 정책은 망국적 현상을 해결한다는 각오로 추진해야 한다. 그저 법인세 조금 감면하고 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에 주는 혜택도 파격적이어야 한다. 법인세 감면 혜택보다 수도권에 있는 혜택이 더 크면 기업이 안 움직인다.

경남도는 동해와 남해를 아우르는 수려한 경관, 풍부한 해양자원으로도 촉망받는다.

박 지사_ 누가 대한민국은 국토 크기에 비해 해안선 강국이라고 하더라. 한반도 해안선 길이는 중국 해안선 길이의 거의 50%에 달한다. 더구나 미래는 해양에 있지 않나. 그 연장선에서 지사 취임 후 계속 강조하는 게 남해안 관광 개발이다. 경남 입장에서 수도권이 못 가진 게 바다이다. 여태껏 남해안 절경은 자연경관 그대로 보존할 대상이었지 일자리를 만들거나 국가 산업으로서 어떤 기여를 할 여건을 갖지 못했다. 남해안에 가보라. 변변한 호텔이나 놀이 시설 하나 없다. 동남아는 어떤가. 세계적 관광지를 개발해 지구촌에서 쏟아지는 관광객들이 현지인들을 먹여 살리도록 한다. 우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관광 수요를 옆에 두고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남해안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카지노, 쇼핑몰도 만들었으면 한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께 두 번에 걸쳐 남해안 개발 방안을 설명했다. 경남 남해안은 박물관도 아닌데 보존에만 급급하다. 보존할 곳은 보존해야겠지만 개발할 곳은 과감하게 개발했으면 한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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