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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팀장 칼럼] 아르노 회장을 세계 1위 부자로 만든 79개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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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거느린 세계 1위 부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4년 만의 방한에 유통업계가 떠들썩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등이 직접 의전에 나서는가 하면, 함께 동행한 딸 델핀 아르노 크리스찬 디올 최고경영자(CEO)가 입은 옷이 얼마인지가 실시간으로 공유될 정도였다.

아르노 회장을 순자산 250조원의 부자로 만들어 준 건 79개 브랜드다. LVMH는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펜디, 불가리, 티파니 등 세계인이 선망하는 명품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은 ‘너무 비싸고, 없이 살아도 지장 없는 것들’이지만, 구매를 위해 줄서기도 불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화점들이 그가 가진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해 사활을 거는 이유다.

아르노 회장은 루이비통 가문의 자손도, 패션 전공자도 아니었다. 건설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부에 반발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로 인해 브랜드의 힘을 실감했다. “프랑스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는 질문에 택시 기사가 에펠탑이 아닌 “크리스찬 디올”이라고 답하면서다.

그 일화가 뇌리에 박힌 아르노 회장은 3년 후 파산 직전의 직물회사 부삭을 인수했다. 이어 이 회사가 소유한 크리스찬 디올과 프랑스 최초 백화점 봉 마르셰만 남기고 부삭을 매각한 후, 그 돈으로 루이비통과 주류 사업을 하는 LVMH의 지분을 사들였다. 이후 공격적인 인수 합병으로 ‘명품 제국의 황제’가 됐다.

많은 유통인이 ‘브랜드가 미래 경쟁력’이라는 데 공감한다. 최근 만난 이순섭 코웰패션 회장은 “당장의 손익이 줄어드는 것보다, 미래에 뭘 하고 살 건지가 중요해 영국 브랜드 슈퍼드라이의 아시아 지식재산권(IP) 사업권을 약 655억원에 취득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 제품을 팔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3 유통산업포럼’에서도 유통업계의 브랜드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Next Era: 브랜드가 주도하는 미래’를 주제로 한 포럼에서 연사들은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해선 “독자적인 가치를 오랜 시간 쌓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92권의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를 펴낸 조수용 ‘매거진 B’ 발행인은 “많은 브랜드를 다루면서 좋은 브랜드들은 극소수를 타깃으로 삼는다는 걸 알게 됐다”며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여정(旅程)”이라고 했다. 아르노 회장처럼 역사나 유산(헤리티지) 없이도 훌륭한 브랜드를 육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글로벌 명품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서울 안국동과 신사동 두 곳에 매장을 운영 중인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철저한 브랜딩으로 ‘줄 세우는 빵집’이 됐다. 2021년 9월 개점한 이 베이글 가게가 거두는 매출은 연간 200억원에 달한다.

매장을 기획한 이효정 최고브랜드책임자(CBO)는 유통산업포럼에서 “인종과 지역에 상관 없이 공들인 시간과 공간, 경험의 밀도(密度)에 공감한다”며 “공간의 구성원과 조명의 방향, 손님들이 내는 식기 소리 등 작은 디테일까지 고려해 런던베이글만의 밀도를 만들어 냈다”고 강조했다.

유행은 수용하되 본질은 지켜야 한다. 미츠코시이세탄홀딩스의 온라인 쇼핑을 이끄는 타츠야 키타가와 그룹장은 “디지털 전환보다 회사의 전환(Corporate transformation)에 초점을 뒀더니 이세탄백화점의 매출이 급증했다”며 “온라인 쇼핑 시대에도 백화점 고객이 원하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호텔 컨시어지처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자, 1년에 7~8회 방문하던 충성고객의 구매 횟수가 52회까지 올라갔다.

직접 브랜드를 개발하든, 괜찮은 브랜드를 사든 중요한 건 브랜드의 품질과 명성은 만드는 것(Making)이 아니라 쌓아가는(Building) 것이라는 거다.

‘명품계 포식자’라 불리는 아르노 회장도 20여 년 전 한 인터뷰에서 “브랜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소박한 정원도 보기 좋아지려면 10년 이상 가꿔야 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해 가는 유통인들의 여정을 응원한다.

[김은영 채널팀장]

김은영 기자(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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